“재선하셔야죠”던진 미끼… 물었지만 “선거와는 절대 무관”

윤장현 전 광주시장 소환
'권양숙 여사' '혼외자 양육자' 2여12건 통화
민주당 경선 치열한 시기에 268건 문자 주고 받아
검찰 입장은 "정자법 위반" 대가성 여부 수사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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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반·업무방해·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10일 광주지방검찰청에 출석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나건호 기자 gunho.na@jnilbo.com
공직선거법 위반·업무방해·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10일 광주지방검찰청에 출석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나건호 기자 gunho.na@jnilbo.com

“재선하셔야죠. 당 대표에게 신경 쓰라고 당부했습니다. (당시 광주시장 입지자) 이용섭 씨는 주저 앉혔습니다. 대통령 생신 때 조우해 얘기해뒀습니다. 힘이 돼 드리겠습니다.”

권양숙 여사를 사칭해 윤장현 전 광주시장으로부터 4억5000만원을 받은 사기꾼 김모(49·여)씨. 그는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치열하던 시기인 1월께 윤 전 시장에게 공천에 영향을 줄 것 같은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보냈다. 김씨는 당시 윤 전 시장은 현역 이었지만, 재선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상황을 교묘히 이용했다. 이같은 사실은 윤 전 시장이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10일 광주지검에 따르면 이날 윤 전 광주시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 업무방해 혐의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이날 검찰에 출석한 윤장현 전 광주시장은 조사에 앞서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전 시장은 공천 대가를 바라고 돈을 건넨 의혹에 대해선 “선거와 관련해 김 씨와 특별히 주고받은 이야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김씨의 사기극의 출발점을 지난해 12월21일 윤 전 시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부터로 잡고 있다. 당시 김씨는 ‘권양숙입니다. 딸 사업 문제로 5억원이 급하게 필요하게 됐다. 빌려주면 곧 갚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윤 전 시장에게 보냈다. 다음날 김씨는 권 여사의 흉내를 내며 윤 전 시장와 첫 통화를 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김 씨와 윤 전 시장은 12번의 통화가 이뤄졌다. 이 중 2번은 김씨가 권 여사로 행세하며 통화했고 10번은 김씨의 본명을 그대로 사용한 채, 노무현 전 대통령 혼외자 양육자 역할을 했다. 윤 전 시장과 문자메시지도 268건이나 주고 받았다.

권 여사 행세를 하던 김씨는 자신을 믿게 된 윤 전 시장에게 날로 대범한 사기행각을 펼쳤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치열하던 시기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 같은 내용을 보냈다. 김 씨는 “경선이 다가오고 있다.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조직관리 자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듯한 내용을 보냈다. 또 “(당시 광주시장 입지자) 이용섭씨와 통화해 선거 출마를 만류했고, 알아들은 것 같다. 큰 산을 넘었다”고 보내 공천에 도움을 줄 것처럼 속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씨는 “대통령 생신 때 조우해 얘기했다. 힘내시고 시정에만 신경 쓰시라”며 기대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김 씨는 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녀의 취업 부탁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을 대통령 혼외자로 속여 취업을 부탁했다. 그런데 실제 광주시 산하기관에 취업이 되자, 1월 말께 뒤늦게 “대통령 혼외자 아들의 친누나가 있는 것 같다”며 딸의 취업을 부탁했고, 딸은 광주 한 사립중 기간제 교사로 취업됐다.

이 같은 문자메시지와 통화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12월22일부터 올해 1월까지 4억5000만원의 돈이 오갔다.

윤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26일 2억원을 첫 번째로 입금했고 29일에는 1억원을 지인으로부터 빌린 후 비서에게 지시해 비서의 이름으로 무통장 송금했다. 이어 지난 1월5일 1억원, 31일 5000만원을 대출받아 계좌이체 시켰다. 이렇게 윤 전 시장이 보낸 돈은 모두 김씨 어머니 계좌로 흘러갔다. 검찰은 윤 전 시장이 지인에게 빌린 돈이라고 밝힌 1억원의 출처도 조사 중에 있다.

윤 전 시장으로부터 4억5000만원을 받은 김씨는 자동차를 사는가 하면, 올 초 결혼한 딸의 신혼집 마련 비용에 사용했다. 만약 윤 전 시장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경우 김 씨가 부당이득을 취한 자동차와 신혼집 마련비용에 대해 환수가 가능하고, 국가에 추징된다.

이 밖에 윤 전 시장은 지난 4월4일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한 이후 김 씨에게 “사정이 힘드니 빌려준 돈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도 검찰 조사 결과 확인 됐다.

현재 검찰 관계자가 밝힌 윤 전 시장 관련 수사의 쟁점은 ‘민주당 공천을 앞둔 시기에 김씨에게 거액을 빌려주고 채용 청탁을 들어준 점이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인지 여부다. 검찰은 실질적으로 정치적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도 영향을 끼칠 것 처럼 느끼게 해 돈을 건넬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윤 전 시장이 선거 불출마 선언 직전에 김 씨에게 자문을 구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일 사기와 사기미수·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아울러 6·13 지방선거 사범 공소시효(12월 13일) 이전까지 윤 전 시장 관련 수사 결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박수진 기자 suji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