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유연한 광주를 원한다

김기봉 디지털뉴스국 국장·논설위원
광주는 사소한 자극에서 몸을 닫고 날을 세우는 고슴도치와 같은 경직된 곳….
이제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신뢰를 얻어 교착상태의 광주형일자리 성공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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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봉 기자 gbkim@jnilbo.com
김기봉 기자 [email protected]

2018년 한해도 광주지역 사회는 다사다난했다. 여느 때처럼 뜨거운 쟁점이 지역 사회를 휘감았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일부 쟁점은 해결됐고 광주형일자리처럼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한 사안도 있다. 그런데 광주지역 사회는 원숙하게 대처하면서 해법을 찾아가고 있을까. 평가는 엇갈린다.

민선 7기 출범 직후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 여부를 둘러싼 찬반양론으로 광주지역 사회는 뜨겁게 달궈졌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허니문’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격한 논쟁의 중심에 서야 했다. 다행히 이 문제는 시민참여 숙의형 공론화를 통해 2호선 건설을 하는 쪽으로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공론화 이후 지역 갈등을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 해법을 모색하는 생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다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다. 2호선 건설 예산의 상당 부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는 지난 16년 동안 건설 찬성과 반대를 시계추처럼 오간 광주지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

광주형 일자리는 당면한 지역 최대 현안이다. 타결 직전에 꼬여버려 안타깝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 이용섭 시장도 지난 9일 결연한 자세로 재협상에 직접 나서겠다고 밝혔다. 광주형 일자리는 직장이 없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청년들에게 그나마 자족할 수 있는 삶을 제공하겠다는 ‘상상’에서 시작됐다. 단순히 일자리 창출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 현실화된다면 광주의 도시 이미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지역 사회가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선 광주지역 사회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사실 광주는 경직된 지역이다. 사소한 자극이나 아득한 위협에도 몸을 꼭 닫고 날을 세우는 고슴도치와도 같은 고장이다. 광주는 구한말 탐관오리 착취에 맞서 봉기했고 1980년 5월 신군부에 저항했지만, 차별과 홀대를 받았다. 불의에 맞선 정의가 탄압을 당했으니 상대와 조금만 다르면 경계하고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오랜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문제와 위험을 바깥에서 찾는 습성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조선대 공진성교수). 그나마 광주는 ‘함께 하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을 가진 이들의 지원이 힘이 됐다.

이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 30~40대 가운데 5·18 당시 광주시민의 항쟁 정신을 떠올리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더욱이 ‘586세대’마저 한때 가졌던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문을 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시점에 직면해 있다.

광주가 ‘합목적적 유연함’을 가졌으면 한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박사가 자주 언급하는 이 말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법조인이나 시민운동가와 달리, 선거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과 동침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정치인과 군인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는 광주의 자존심을 거론하며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동네 깡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한신의 결정을 비난하는 사가(史家)는 없다.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고 자신의 목숨을 보전한 한신의 판단을 합목적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신이 자존심을 버렸을까.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한신이 기기 전에 “건달의 얼굴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봤다”고 기술돼 있다. 사마천은 한신이 결코 비굴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을 그렇게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광주지역 지도자는 한신처럼 모두를 위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과하지욕(胯下之辱·가랑이 사이를 기어가야 치욕)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합목적적 유연함을 갖추려면 포용과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광주형일자리도 마찬가지이다. 광주지역 노동계는 협상 전권을 광주시에 위임했지만, 현대차가 요구한 임·단협 5년 유예 조항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 투자가 없으면 광주형일자리는 물 건너간다. 광주형일자리가 사회통합적이고 연대지향적인 모델이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의미 없다. 기업은 이슬을 먹고 사는 기관이 아니라 이윤을 창출해 생존하는 경제주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주사위는 던져졌다. 광주지역 사회가 합목적적 유연함으로 슬기로운 결정을 했으면 한다.

김기봉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