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선 기차는 10시 33분에 광주송정역을 출발했다

박상수 주필
태백산맥·꼬막정식 벌교 여행 가는 길 기차는 느릿느릿 전라도 속살 보여준다 80년 전 그대로 '단선 비전철'인 경전선 언제 전철화돼 신나게 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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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주필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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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무궁화호 경전선 열차는 10시 33분에 광주송정역을 출발했다. 달랑 3량을 달고 달리는 열차의 객석은 한산하다. 휴일인데도 광주송정역에서 탄 사람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초겨울의 광주 시가지 모습이 낯설지 않다. 기차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얼마 만에 타보는 무궁화호 열차인가.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이 기차는 목포와 부산(부전역)을 잇는 유일한 열차다. 목포에서 1시간에 걸쳐 호남선을 타고 올라와 광주송정역에서 손님을 태우고 순천을 거쳐 부산으로 간다. 무려 6시간 30분을 달린다. KTX라면 광주-서울을 몇 차례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열차는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다. 코레일은 지난 2014년 12월 말로 이 열차의 목포-순천 구간을 폐지한다고 각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다. 적자 노선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역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없던 일이 됐다. 목포 임성리-보성간에는 지금 한창 철도가 건설 중이다. 이 철도가 완공되면 무궁화호는 광주송정역을 우회하지 않고 보성-순천을 거쳐 바로 부산으로 갈 수 있다.

이번 여행은 벌교에 가서 제철 음식인 꼬막정식을 먹고 개관 10년이 된 ‘태백산맥문학관’을 둘러보고 오는 것이 목적이다.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홀로 떠나는 여행도 좋다. 승용차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느리게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차 여행을 선택한 것은 경전선의 실태를 파악해 보기 위한 것도 없지 않다. 최근 광주·전남 출신 국회의원과 단체장들, 지역 시민단체가 잇따라 경전선 문제를 제기했다. 경전선의 광주송정-순천 구간(116.5㎞)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건설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단선 비전철 철로다. 같은 경전선이라도 경상남도 구간은 이미 복선 전철화가 이뤄져 있다. 경전선은 호남 차별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경전선 기차를 타고 광주-순천을 오간 적이 없다. 고향 순천을 오갈 때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1993년 승용차를 구입한 이후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느림보 기차를 탈 이유가 더욱 없었다. 지금도 하루 4회 왕복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순천을 가려면 2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요금이 7700원이다. 한 시간 남짓 걸리고 7000원이면 이용할 수 있는 고속버스에 비해 가성비가 낮다. 이런 상태에서 주민들이 경전선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경전선 광주-순천간 전철화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했으나 0.01점이 부족해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다. 호남선 KTX도 당초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건설을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주말이면 표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서광주-효천 역에서 잠깐 멈춰 선 기차는 남평역을 지나고 있다. 남평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중의 하나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의 모델이 된 역이다. 지금은 다른 경전선 간이역과 함께 무인역이 되고 열차가 서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광주로 통학을 하고, 남광주시장으로 농산물을 팔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차가 서지 않는 썰렁한 남평역의 모습이 경전선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기차는 느릿느릿 달리면서 추수를 끝낸 빈 들녘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시집을 꺼내 시 한 편을 읽어본다.

‘기차에 오르며/멀리 흰 종이꽃 눈물처럼 달고 가는/아침 상여를 보았다./아직 길 떠나기에는 이른 새벽,/서둘러 길을 나선 저 설운 생애는/또 무엇이 되려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강물처럼 출렁이는 기차,/기차처럼 흔들리는 강물에/늦가을 마른 풀잎 같은 나를 싣고 예당 가는 길/남평, 앵남, 능주 그리고 석정, 이양 …/들꽃 이름을 닮은 마을들을 스쳐/덩치 큰 미루나무 줄지어 선 보성을 지나/예당에 이르면/빗장 풀린 그리움들 확 쏟아져/흐린 안개 되어 길을 막는다.…'(이수인의 ‘예당 기행’ 일부. 199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 시는 시인이 광주에서 경전선 기차를 타고 보성군 예당역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것이다. 시인은 당시에 광주역을 출발해 지금은 폐선이 돼 푸른길로 변한 남광주역을 거쳐 남평으로 갔을 것이다. 조숙한 시인은 기차에서 아침 상여를 보면서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맡았던 조태일 선생은 불과 2년 후(1999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수인 씨도 그 뒤로 만난 적이 없다. 그때 나는 문학 담당 기자였다. 풋풋한 미혼이었던 시인은 벌써 50대에 접어들었을 나이다.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세월은 쏜살처럼 빠른데 기차는 느리다. 기차는 버스보다 느린 시속 60~70km의 속도로 들꽃 이름을 닮은 마을들을 느릿느릿 지나가면서 전라도 농촌의 속살을 보여준다. 기차의 속도는 보성역 못 미쳐 고갯길에서는 시속 30~40km로 떨어진다. 80여 년 전에 건설된 철도는 산을 에둘러 가고 가파른 고개를 넘기도 한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다큐 3일’에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경전선’이 나온 적이 있다. 이 프로를 본 사람들은 낭만적으로 그려진 TV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느리게 달리는 기차도 하나쯤은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초스피드 시대에 느리게 달리는 기차를 타고 관광을 한다면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차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기차는 보성-예당-조성을 지나 두 시간이 다 돼서야 벌교에 도착했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배꼽 시계가 여지없이 꼬르륵 소리를 낸다.

남북이 지난달 30일부터 경의선과 금강산-두만강을 잇는 동해선 철도에 대한 공동 조사를 벌이고 있다. 연내에 남북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철도 연결 착공식을 갖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지역의 부실한 철도 실태를 파악하고, 통일에 대비해 철도를 연결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에도 북한 철도를 닮은 ‘단선 비전철’의 경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역민들의 간절한 숙원인 경전선 광주-순천 구간의 전철화 사업을 위한 기본·실시 설계비 145억 원이 내년 정부 예산에 반드시 반영돼야 할 것이다. 국회 예산안이 다행히(?) 법정시한인 2일을 넘기고도 여전히 심의 중이라니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본다.

박상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