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사람도 죽는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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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

그래서는 안되지만 대뜸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다.

‘돌려 막는다’는 표현은 주로 카드빚에나 쓰는 말이 아니었나. 설마 응급환자의 생명이 달린 필수 구급품이 그럴 줄이야. 농담인줄 알았으나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다.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낯빛이 무거운게 예삿일이 아니었나 보다. 전남지역 한 119구급대원이 털어놓은 일선 현장의 실태는 그간 생각해왔던 소방에 대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단돈 9만원짜리 자동제세동기 패치에서 비롯된 취재였다. 한 사람의 목숨값치고는 거저 아닌가. 하지만 전남의 몇몇 구급대에는 이 패치가 없어서 일선 대원들이 여분이 있는 119안전센터에 구걸하러 다니는 실정이었다.<본보 2018년 11월7일자 1면>

열악한 사정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할지는 넓은데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는 큰 병원은 턱 없이 모자랐다. 병원에서 멀어질수록 이송시간은 지체됐고 자연히 환자의 생존률도 낮아졌다. 이를 메꿀 인력도 모자랐다. 취재 당시만 해도 전체 구급대의 3분의 2 이상이 운전자를 제외하면 ‘1인 구급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우리는 곧잘 비유하지만, 매일같이 그 경계에서 곧 죽을지 모를 사람들을 마주하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무게로 다가올까. 응급환자를 구급차에 싣고 종합병원으로 내달리며 몇번이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그들이 매일 느끼는 그 엄청난 무게감 말이다.

그저 골든타임을 지키기엔 병원이 너무 적고 멀어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도와줄 손이 모자라서, 그 찰나의 순간 삶의 경계를 넘어 주검이 돼버린 누군가를, 의료진이 대기 중인 병원 대신 영안실로 인도해야하는 허탈함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따름.

그 대원은 대화 중에 결국 ‘살 사람도 죽는 전남’이라고 말했다. 끝내 살려내지 못한 누군가를 싣고 경로를 고쳐 가까운 영안실로 향해야 했던 여러 날. ’10분만 더, 아니 1분이라도 더 빨랐더라면’ 하고 스스로를 책망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현실을 털어놓으며 가느다랗게 떨리던 목소리. 제세동기 패치의 사례는 전남 119구급대의 한 단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요즘 이국종 교수의 회고록 ‘골든 아워’가 세간의 화제다. 그 책의 한 대목이다.

‘고위층의 자리에서 지원에 대해 흘러나오는 좋은 말들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없는 것이 되었다. (중략) 웃는 얼굴들이 좋은 옷을 입고 맛난 것을 먹으며 화려한 말의 향연을 벌일 때, 현장에서는 비행복 한 벌 신발 한 짝이 없어 몸을 떨었다’.

자조 섞인 일선 소방대원의 깊은 탄식이 겹친다.

김정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