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위한 아름다운 후원

이 진(소설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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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상용구다. 누가 그 말을 만들었는진 모르나 덥지도 춥지도 않아 생기는 신체적, 심리적 여유와 겨울 예감으로부터 오는 철학적 사색이 어울리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가을은 9월부터 11월 사이를 아우르는 기간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여름 무더위는 길게 이어지고 겨울 추위는 빠르게 다가와, 가을을 느끼기는 매우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그래선지 책을 읽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엊그제 만난 내 친구는 계절변화의 이런 추이를 꽤 재미나게 표현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4계절이 6계절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 초겨울, 한겨울, 늦겨울….
아하! 이내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하지만 그게 다만 말장난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계절 구분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웃자고 한 말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나?

지난 목요일은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이다. 대학입시를 목표로 달려온 수험생들에 대한 지필 평가인 만큼 대학에 가려는 이들만의 시험임에 분명한데도 온 나라가 나서서 떠들썩했다. 시험의 난이도와 변별력에 관한 분석이 각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다루어진 것은 물론이다. 수능 시험에서의 성공과 실패 여부에 따라 젊은 친구들의 낙관과 좌절이 널뛰기를 할 것이다. 수험생의 부모들 역시 발을 동동 구르며 살 맛과 죽을 맛의 경계를 오갈 것이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동안 나 또한 그러했으니….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수능시험 날을 경계로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대접이 확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금지가 해제되고 억압이 풀어지면서, 술 한 잔도 담배 한 모금도 그리고 야한 영상마저도 허락 목록으로 급부상한다. 물론 고교 졸업식 때까지는 어느 정도의 통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거의 유명무실하다.
이렇듯 수능시험은 성년식을 대체하는 전 국민적인 행사로 자리매김 된듯하다. 15세가 된 사회 구성원에게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관례(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의식, 남자)와 계례(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주는 의식, 여자)의 현대적 변용이랄까? 의도와 경위가 어찌 되었건 수능 시험은 ‘이 순간부터 너를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우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성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기성세대로부터 브리핑 받거나, 기존 사회체제로의 진입에 대한 환영사를 듣거나, 어른이 되었다는 해방감으로 들뜰 여유가 주어지거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현실이긴 하지만….

다시 계절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여섯으로 편성된 계절 속에는 봄과 가을이 없다. 그러니까 모든 생명이 자라나는 봄과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실종되어 버렸다. 계절의 실종은 수많은 단어들의 실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새싹, 꽃향기, 포근함, 희망 등등 봄을 상징하는 낱말들과 단풍, 낙엽, 갈무리, 기다림 같은 가을 색 짙은 낱말들 말이다.
억지스런 걱정일까? 하지만 그러한 낱말들의 실종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현재 진행 중이며 꽤 먼 미래까지 이어질 것 같다. 실제 단어 자체가 아니라 그 단어가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망에서 말이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짧게는 3년, 길게는 12년 이상을 내리 달려온 아이들에게 우린 얼마만큼의 봄을 허용했을까? 곱게 물든 낙엽으로 품위 있게 이별을 고하는 가을에 대해선 또 얼마만큼이나 얘기해주었을까?
성공하라는 말이 부자가 되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 지 오래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점점 더 뜨거워지는 세 개의 여름을 지난다. 우리 아이들의 성년식 역할을 하는 수능시험은, 그러니까 아이들이 초여름에서 한여름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여기서 실수하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점점 더 차가워지는 세 개의 겨울로 곧장 이행해 들어갈 수도 있다.
거기에는 중간 단계나 완충지역이 없다. 모색과 좌충우돌로 성장을 응원하는 봄도, 독서와 사색으로 성숙해질 가을도 없다. 정말이지 위세 막강한 여섯 계절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계절변화에 관한 우스갯소릴 그저 웃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해서 난 한반도 육계절 도래론을 강력히 거부하려 한다. 이상기후 현상은 더욱 길고 더운 여름과 더욱 길고 추운 겨울을 예고하지만, 난 끝끝내 한반도 사계절 존치론자로 남고 싶다. 봄과 가을을 배제한 채로는 성장도 성숙도 없겠기 때문이다.
11월이다. 우리 아이들의 올해 치 수능시험은 끝났고, 바람은 더욱 쌀쌀하고 차가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다. 그리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수능이 끝난 아이들과 함께 책 한 권을 읽는 것, 가을이 추방당하지 않도록 하는 아름다운 후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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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