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000년의 역사연구 이제는 한단계 발전해야 한다

定道 천년 전라도의 재발견 고려시대 전라도 연구는 어떠했고 어떠할 것인가? - 전라도 천년 전라도 역사연구 발전 제언 학술 대회 통해 주기적 발표 연구성과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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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표는 연구자들 간의 키워드 가운데 반복되는 것을 빼고 압축했다. 전라도.전주.나주 등 전라도 대표 읍지에 대한 키워드나 후삼국통일 과정, 호족세력, 서남해안 지역, 삼별초, 조운제도에 대한 키워드도 공통적이다.

이와 별도로 지역 연구자들은 지역의 인물과 산신 그리고 나주 팔관회에 같은 행사 등에 대해 집약해서 관찰하고자 했다. 특히 나주 팔관회에 대한 관심을 키운 것이나 박영규.최지몽.은원충.탁광무.김구 등에 대한 발굴은 지역 연구자들의 역할이 컸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향후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고려사’ 세가와 열전 등에 보이는 전라도 지역 인물에 대한 관심이 더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호남을 대표한 인물조차도 더 이상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역의 특색을 밝히려는 작업도 더딘 것도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외지에서 새롭게 보충된 연구자들의 노력이 지역사에 관심을 보태면서 고려시대 전라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새롭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최근 서남해안에 대해 주목함으로써 고려시대 전라도의 위상은 내륙에서 바다로 넓혀져 가고 있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충원은 향후 희망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해양사 및 교통사에 대한 적극적인 부각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에 대한 관심 영역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다. 후삼국 통일 과정과 그 시즌을 거쳐 형성된 호족 세력 그리고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제외하면 지역사의 연구 성과는 허전할 뿐이다. 몇몇의 지역 관련 논문들도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지 않는 상태이며, 더 이상의 그 맥이 이어지리라고 장담을 못할 지경이다.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주제의 다양화와 집중화도 지금까지의 한계였음이 여실하다. 이는 학회 혹은 연구자들 간의 소통이 넉넉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지역사 연구 성과에 대한 축적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과연 연구자들이 전라도에서 전주.나주를 위시한 나머지 지역과 인물에 대한 연구에 얼마나 공을 들였나 하는 것은 위 표가 제한적으로나마 말해주고 있다.

918년 왕건은 고려를 건국했다. 따라서 2018년인 올해는 고려건국 1100주년이 된다.

또한 2018년은 전라도 탄생 1000주년이 되어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왕건은 해상세력으로서 궁예에게 귀부한 뒤, 서남해 해상에서 크게 활약하고 급기야 후백제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나주를 점령함으로써 후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왕건의 나주 경략은 거점도시로서의 향후 신라 지방행정 조직이었던 무주에서 나주로의 조정을 예고했다. 전주는 신라의 9주의 하나로서 후백제 수도이기도 했으며, 고려에 들어와서도 그 위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려 건국과 함께 전개되었던 지방 조직 개편에서 전라도가 탄생한 것도, 고려의 지방통치에 있어서 전주와 나주의 비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고려는 초기에, 크게 세 번에 걸친 지방행정 조직을 개편했다. 한번은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에 의해 940년(태조 23년)에 편성되었다. 이때는 다분히 신라의 지방행정 조직을 계승한 면이 강했다. 다음은 과도기적으로 성종대에 이루어졌다. 지금의 전라도는 성종 때에 강남도와 해양도로 나뉘었다. 그리고 현종 9년(1018)에 이르러 고려의 지방행정 단위의 틀이 잡혔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첫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광역 행정 단위인 셈이다. 이로써 이 지역의 정체성은 전라도라는 이름으로 10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이에 반해 호남(湖南)은 한 참 뒤 늦은 고려 말부터나 불러지고, 읽혀지고, 인식되었던 별칭으로서 또한 전라도를 대신했다. 일찍이 강남도가 금강 이남의 지역을 일컬었던 것처럼, 호남도 금강 남쪽의 땅을 지시하는 별칭이 되었으므로 호남은 강남의 뒤 이은 새로운 별칭이 되어 좀 더 넓은 지역 공동체를 아우르는 지역 대명사를 자처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지난달 10월 26일 전라도 천년을 맞이하여, 전북연구원 주관 아래 전라도 역사를 재정립하는 편찬 사업의 일환으로 전라도에 대한 연구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서 고려시대사를 연구하는 필자는 여러 학술지에 게재한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전라도 연구 논문을 취합해 그 동안의 성과를 정리하고 발표하는 일을 맡았다. ‘고려시대 속에서 전라도’, 혹은 ‘전라도 속에서 고려시대’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 필자의 작업은 전라도에 대한 연구 성과를 회고하고, 앞으로 연구자들이 나아갈 방안을 함께 모색하여 공유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연구논문을 모두 찾아내기란 또한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취합 정리하여 이를 한 편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과문한 필자의 의욕만으로 무모하기까지 했다.

다만 필자의 시도를 통해 그 동안 이 지역에 대한 시대별 혹은 분야별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학계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나아가 이 지역 공동체 사회에서 전라도와 호남이 갖은 의미를 곰곰이 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랬다.

필자는 발표를 준비하면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고려시대사를 전공한 박사학위 이상의 연구자들 중에서 전라도 지역의 대학 및 학술연구기관에 재직한 연구자들이 의외로 적다는 점을 확인했다. 좀 더 숨김없이 말하자면, 전라도 지역에서 연구하는 고려시대사 전공자들이 예상외로 극히 소수라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염려스럽다. 하나는 향후에도 이 지역에서 고려시대사 전공자들이 더 늘어난다고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연구자의 배출이 희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둘째는 이로써 기존 소수의 인원으로 전라도 연구의 양적 확보를 지속적으로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간의 고려시대사 연구자들의 전라도 연구 현황을 정리해 보면, 정치.인물.종교사회문화.지리 및 교통 분야 관련 연구가 두드러졌다. 정치 분야에서는 훈요 10조와 삼별초 항쟁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인물조는 지역의 새로운 인물 찾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불과 몇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종교 분야는 사찰과 산신 등에 대한 연구가 눈에 띄며, 사회문화 분야는 강진이나 부안의 청자 연구가 단연 앞섰다. 그리고 최근 들어 지리.교통사 분야는 괄목한 성과를 일구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연구 성과를 회고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향후 학회의 발전과 연구자들 간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지역민에 대한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제언 몇 가지를 덧붙였다. 물론 다음의 제언에 대해 좁게는 고려시대사 연구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넓게는 전 시대별 연구 풍토에 대한 담론으로 여겨도 좋다.

첫째, 전라도에 대한 연구 성과가 학술 대회를 통해 주기적으로 발표되었으면 한다. 정기적으로 연구 성과를 축적해 냄으로써 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전라도 지역의 학술 연구기관과 학회는 통합적인 차원의 학술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란다. 전라도에는 우수한 학회도 있으며, 또한 능력 있는 연구자를 보유한 학술연구기관이 많다. 이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전라도의 역사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다. 전라도사 혹은 호남사 연구에 크게 기여한 한 것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학회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둘째, 연구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대별 혹은 연구 분야별 연구자들을 관리하고 적소에 배치하고 발표케 하는 등 연구의 질적 향상을 기해야 한다.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 열정은 넘치고도 넘친다. 반면에 학회와 연구기관은 연구자들 간의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곰곰이 뒤돌아봐야한다. 전라도 지역에서 고려시대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는 10여 명 내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연구자들조차 교류의 노력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전남과 전북의 연구자들은 서로 간의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 분야에서도 전라도는 남.북으로 갈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개별 연구자들의 열정을 넘어, 연구자들 간의 공유의 장이 토대가 되었으면 한다.

셋째, 연구의 주제가 다양해졌으면 한다. 최근에 지리.교통사 연구는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교통사와 해양사 연구는 단연코 지역사에서 출발한 성과였다.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서남해의 루트, 고려 조운의 뱃길, 그리고 내륙 교통망은 고려시대 연구자들의 노력이 컸다. 여기에 더하여 보다 심층적이고 주제의 다양화에 대한 연구자들의 노력도 요구된다. 주제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몇몇 연구자들의 노력에만 의존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의 연구자들은 미시적으로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넷째,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에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여러 가지 가능한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회나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지단체도 이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우리 학회는 연구자들에게만 연구의 주제를 맡겼다. 그 결과 연구 주제는 편중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서는 개별 연구자들의 집요한 노력에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인물사 연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고려시대 전라도 지역의 그 많은 인물들 중에서 그 동안 연구로 보여준 성과는 몇 사람이 채 되지 않는다. 이것조차도 소수의 연구자들의 열정적인 관심이 뒤따라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물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 구축이 필요하다. ‘민.학.관’의 관심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다섯째, 젊은 연구자들을 양성하는 대안이 요구된다. 이미 학회는 노령화되었다. 지역 사회는 젊은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 아쉽게도 전라도 지역에서 젊은 고려시대사 연구자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젊은 연구자들이 지방에서 배출되어 지방사 연구에 더 많은 노력이 기울려진다면 지역사 연구는 계승될 것이며, 그 미래 또한 밝은 것이다.

서금석(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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