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만행에 씻을 수 없는 상처 입은 여성들

극단적 선택에 승려되기도…정신적 고통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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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최소 17명이라는 정부 합동 조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군의 만행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여성들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31일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5·18 당시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발간한 책 ‘부서진 풍경’에 따르면, 1980년 5월19일 광주 한 여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A양은 귀가하지 않은 오빠를 찾아나섰다.

대학가 주변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힌 A양은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고, 트럭에 실려 숲 속으로 끌려갔다.

A양은 야간시간대 공수부대원들에게 집단 성폭행 당한 뒤 길에 버려졌다. A양은 육체적 고통, 공포, 수치심, 분노, 절망감 등으로 실신 상태에 이르렀다.

행인의 도움으로 A양은 5월20일 새벽시간대 집으로 돌아왔다. A양은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날의 상처로 비정상적인 언행을 반복했다. 두 손을 모은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군이 잡으러 온다”는 말을 해왔다.

A양은 결국 1985년 정신 분열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고, 이듬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다.

A양은 심리검사(문장완성)에서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으려면)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아들·딸 낳고 사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를 두고 5·18 유족회는 ‘평범한 소망을 안고 살았던 소녀에게 권력이 불행한 삶을 강요했다.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5월의 원한을 되새긴다’고 적었다.

5월19일 당시 광주 한 여고 1학년생이었던 B양도 귀가하던 중 북구 유동삼거리에서 폭행당한 뒤 군용차에 강제로 끌려갔다.

남구 백운동을 지나 야산에 이르렀고, B양은 교복 치마를 강제로 둘러쓴 채 다른 여성 2명과 함께 공수부대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B양도 정신병원 입원·치료를 반복했고, 1989년부터 승려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만 전 유족회장은 이 책 발간사에서 “불행한 역사의 재현을 막기 위한 노력은 그 불행했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며 “이들의 고통을 사회가 함께 보듬어주고, 근본적인 치료 대책이 강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로 꾸려진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최근 5개월간 조사한 결과, 5·18 때 군이 자행한 성폭행은 17건, 성추행·성가혹(고문)행위는 45건이다.

피해자 연령대는 10대에서 30대였으며 직업은 학생, 주부, 생업종사자 등 다양했다.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도 다수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 “치료에도 성폭행 당한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박은정 공동조사단 조사관(인권위)은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38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아픔을 용기 내 고백하기 위해선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