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들 보란듯 쏟아내는데… 잊혀져가는 왕국

교과서에 서술된 마한사의 한계와 서술 방향 전라도 재발견 콘텐츠화, 스토리텔링화, 디지털화… 환황해권 문화관광 메카로 4세기 백제 복속 기존 통설

162

주지하다시피 역사는 정체성을 이해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하다. 특히 역사는 특정한 정치, 사회적 체제의 산물로 현재성을 반영하고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서술하려 한다. 인조 정권이 광해군 정권에서 기술된 선조실록을 수정하여 서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친의 유신 독재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려 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역사 서술은 ‘述而不作(술이부작)’ 정신에 입각하여 객관적인 기술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밝혀 진리를 찾는 것이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역사 교육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마한에서 신라와 가야의 원형인 진한과 변한이 갈라져 나왔고 백제 역시 마한에서 땅을 얻어 세워진 나라라고 하는 사실은 기록에 나와 있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마한은, 백제는 물론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부에 있는 고대 국가들의 뿌리인 셈이다. 마한사가 한국 고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백제사의 일부로 인식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가야사와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우리 지역에서조차 ‘전라도 정도 1000년’을 기념하는 사업에 치중할 뿐, ‘마한의 심장, 전라도’와 같은 보다 큰 주제에 대한 관심은 미약한 현실이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 인식은, 고스란히 현재 고등학교 검인정 모든 교과서에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전남지역이 백제에 복속되었다고 지도와 함께 서술되어 있고, 학생들의 역사 인식에 큰 영향을 주는 역사부도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지도가 그려져 있을 뿐 우리 지역에 있었던 마한 남부 연맹의 강국 ‘침미다례’와 같은 연맹왕국의 존재는 아예 언급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주장은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 기록을 바탕으로 이병도 선생이 1950년대 말에 주장한 것이 교과서에 서술되어 마치 정설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우리 지역이 백제 지역으로 편입되었다고 하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 대 들어와 1980년 이후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된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영산강 유역에 대형 옹관묘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였고, 백제의 대표적 묘제라고 믿어지는 석실분이 근초고왕 때보다 100여 년 훨씬 늦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유입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통설이 부정되고 있거나 기존 견해에 다수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국정교과서는 물론이고 현재 모든 검인정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학설은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 통설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2019년도 고3 EBS 한국사 부교재에 백제 근초고왕이 마한을 복속하였다는 문항이 다수 출제되어 있다.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논란이 있으면 출제를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상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출제진 대부분은 이러한 논란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시험이든 공무원 시험이든, 국가가 주관한 시험에서 평가 문항으로 제작되어 버리면, 적어도 수 년 동안 많은 학생들이 그것을 공부하게 되고, 객관성 여부를 떠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필자가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해 영산강 유역이 6세기 중엽까지도 백제의 지배와 독자적 마한 연맹체를 유지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기존 벽을 넘기에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음을 새삼 인식한다.

반면 가야사는, 1990년대 들어 정부의 가야사 복원 계획에 힘입어 대대적인 발굴조사 사업과 함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학계가 유기적으로 노력하여 4세기까지의 금관가야 중심의 가야 연맹체가 5세기에 들어 고령의 대가야 중심의 연맹국가로 발전을 하였다는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여 그것이 교과서에 한 쪽 분량이나 차지할 정도로 서술되었고, 나아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시대 대신 가야까지 포함하여 ‘4국 시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새로운 연구와 더불어 그것을 교과서에 기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필자도 교과서 검정심의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지만 교과서에는 학계의 공통된 의견과 객관적 사실보다 집필자 개인의 의견 내지는 집필진이 속한 학맥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실제 교과서 집필에 있어 집필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역사교과서 편찬을 총괄하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대강 원칙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서술은 전적으로 집필자에 맡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어떤 집필자가 서술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왕인박사에 대한 교과서 서술에서도 확인된다. 박사왕인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건너가 일본의 고대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왕인박사가 도왜 사실에 대해 대한제국기의 한국이나 메이지 유신 시대의 일본 교과서에서 언급이 된 이래 해방 후에도 교과서에 기술되었고, 특히 1973년 교과서가 국정이 된 이후 30년 동안 왕인박사의 도왜 사실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은 왕인박사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2000년대 들어 왕인 박사 도일 사실이 국정이건 검인정이건 누락되어 가는 경향이 빈번해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14년 현재 검인정 교과서 8종 출판사 가운데 5종만 박사의 도일을 기술하였다.(표 참조)

이렇듯 최근에 이르러 국사 교과서에 왕인 관련 서술이 수록 여부를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것은 우리 지역 학계 일각을 비롯하여 일부 학자들이 왕인박사의 실존을 부정하는 기류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사 교과가 사회 과목으로 통합되고 전근대 부분 서술 분량이 축소된 데다, 마침 왕인 박사 도일 사실을 부정하려는 국내 학자들의 연구 등이 교과서 집필자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백제 무왕 때 일본에 기악을 전해준 충청도 출신 ‘미마지’ 이야기가 교과서 한 쪽을 거의 차지하는 분량으로 새롭게 기술되고 있다. 더구나 왕인박사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는 충청북도 교육청에서 발행한 인정도서를 우리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인박사에 대한 우리 지역의 관심의 소홀함은 이를 더욱 부채질하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왕인박사가 우리 지역 영암출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도 많은데, 굳이 막연한 의심을 가지고, 그리고 일제의 식민사관에 이용되었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려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도일하였을 시기가 마한시대였으므로 ‘백제인 왕인’이 아니라 ‘마한인 왕인’으로 살펴야 옳을 것이다.

4세기 후반 전라도 지역이 백제에 편입되었다는 통설은 더 이상 존립의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통설이 대세인 것처럼 이해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이 지역의 마한 제국(諸國)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를 밝히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강진 해남 지역의 ‘침미다례’, 영암 시종과 나주 반남 일대의 ‘내비리국’, 다시들 지역의 ‘불미국’, 보성강 중류지역의 ‘비리국’, 득량만 일대의 ‘초리국’, 낙안 지역의 ‘불사분사국’ 등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언급된 연맹왕국들의 실체를 찾아냈다.

마한 연맹체들은 각기 독립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마한 연맹체로서의 공통된 문화적 특질을 지니며 강고한 정치체를 유지하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연구가 심화되고, 그것이 교과서에 기술될 때 마한사가 진정으로 복원된다고 믿는다.

2018년 4월 26일, 전라남도의회에서 전라남도 영산강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영산강유역 마한문화 조례)를 제정했는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례라는 점에서 전라남도 서부권의 문화관과 낙후상태를 극복할 중요한 조례로 주목받았다. 나아가 영호남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도 영남의 마한사 프로젝트처럼 호남의 마한문화 프로젝트를 국가프로젝트로 격상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례로 부각되었다. 이처럼 ‘영산강유역 마한문화 조례’는 전남 동부권에 비해 낙후된 서부권의 문화관광 발전을 위해서도 영호남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조례이다.

‘영산강유역 마한문화 조례’가 이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해야 할 몇가지가 있어 조례제정의 기본방향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영산강유역 마한문화 조례’의 제1조(목적)는 연구, 조사, 발굴, 복원, 보존만 명시하고 있는데 이것 외에도 콘텐츠화, 스토리텔링화, 디지털화, 문화산업화, 체험힐링 등 진흥에다가 이러한 제반분야를 유기적으로 묶어 융복합 벨트화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진흥기획까지 추가할 필요가 있다. 또 제3조 기본계획의 사항에서는 ① 마한문화권 발전 방향과 목표 및 기본 정책 ② 연구.조사, 발굴.복원.보존 ③ 문화자원화.관광자원화 등 활용 ④ 기타 진흥으로 넓은 범위로 바꾸고 이에 따라서 도지사가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는 ‘① 연구.조사, 발굴.복원.보존 ② 문화자원화.관광자원화 등 활용 ③ 기타 진흥’에 관련된 기관, 단체 및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할 수 있다고 바꾸면 부여, 경주, 전주를 넘어서는 환황해권 문화관광 메카를 조성해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적과 기본계획의 수정, 보완에 걸맞게 나머지도 아래와 같이 바꾸면 금상첨화의 조례가 될 것이다. 주요한 부분만 예시로 들어보겠다. 제4조(마한역사문화 연구)를 제4조(마한역사문화 진흥)로, ‘관계 기관 및 전문가’를 ‘진흥관련 단체, 기관 및 전문가’로, 제5조(위원회의 설치) ‘마한문화권의 지정, 개발사업 및 주요사항을 자문하기 위하여’를 ‘마한문화권의 지정.개발 등 진흥사업 및 주요사항을 자문하기 위하여’로 바꾸는게 국가균형발전 실현과 부여.경주.전주를 넘어서는 환황해권 문화관광 메카를 조성하는데 필요할 것이다.

같은 취지의 조례개정은 아래의 몇 가지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할 것 같다. 제6조(위원회의 구성) ④ 위촉직 위원 구성에서 ‘문화재 관련 기관.단체의 임직원 또는 전문가’를 ‘문화재.문화교류융합.스토리콘텐츠화.문화산업화 분야 관련 기관.단체의 임직원 또는 전문가로, 제7조(위원회의 기능)도 ‘마한문화권 지정에 관한 사항’과 ‘마한문화권에 관한 주요 정책과 개발 방안에 관한 사항’을 하나로 묶어서 ‘마한문화권 지정.개발 등 진흥에 관한 사항’으로, ‘마한문화권 개발.운영에 관한 사항’을 ‘마한문화권 개발.운영 등 진흥에 관한 사항으로 바꾸면 영호남 국가균형발전에도 전남지역균형발전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식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 미래포럼 정책위원장

전라도 재발견

박해현 동신대 기초교양대 강사

 2014 개정 검인정 고교 한국사
‘왕인 도일 사실’ 기술 여부
출판사대표저자기술 여부
천재교육구난희
리베르스쿨윤영호
금성출판사여호규.임화영
미래앤한철호×
두산동아이인석×
교학사최희원
지학사김태식×
비상교육이희영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