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예술의 걸림돌일까, 디딤돌일까

미술에서의 이것과 저것 4 청년의 예술과 노년의 예술 이연식의 미술이야기 학문.예술 나이들수록 역량 향상 청년의 예술

92

●요절한 천재냐 장수한 거장이냐

어느 분야나 가장 잘 맞는 연령대가 있다. 스포츠는 대개 나이가 적은 이들이 가장 강하다. 격투기는 아무리 잘 봐 줘도 마흔 넘어가면 어렵다.

전성기는 종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0대 초중반이 가장 강하다. 축구는 서른 넘어가면 힘이 급격히 떨어지고, 야구는 30대 중반 넘어가면 어렵다.

하지만 학문과 예술은, 물론 이 또한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역량이 향상된다.

젊은이의 예술과 나이든 이의 예술.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예술에는 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전제로 하면, 젊은이의 예술과 나이든 이의 예술은 애초에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나이 들수록 예술도 더 나아질 테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슈베르트는 31세에 죽었고, 모차르트는 35세에, 비제는 36세에 죽었다.

음악에서는 요절한 천재가 30대 초반과 중반에 촘촘하다. 미술에서는 좀 다르다. 20대나 30대 초반에 죽은 미술가가 ‘아까운 천재’ 소리를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초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예술가 마사초(Masaccio, 1401-1428) 정도를 꼽을 수 있다. 27세에 죽었지만 엄청난 작품들을 남겼다. 하지만 마사초는 매우 드문 예외이다.

미술계에서 ‘아깝다’ 소리를 들으려면 적어도 30대 후반까지는 살아 있어야 한다. 음악에 비하면 요절이라고 하기가 좀 그렇다. 라파엘로는 한참 힘을 쓸 나이인 37세에 죽었다. 반 고흐도 똑같이 37세에 죽었다. <진주 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페르메이르는 44세에 죽었는데, 작품이 점점 딱딱해지는 양상을 보였기에, 이런 흐름이 계속되었다면 작품이 더 좋아졌으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페르메이르는 30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은 것으로 본다.

미술가가 전성기를 맞는 시기는, 특히 20세기 이후로는 더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대개는 마흔 전후에야 자기 스타일이 나오기 때문이다.

20대 초부터 작업을 했을 경우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년이고, 대체로 20년 정도는 이리저리 모색을 하며 미숙한 작업을 거듭해야 겨우 자기 스타일을 갖추는 것이다.

●젊은 예술가와 나이든 예술가의 특징

젊은 예술가는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커다란 약점이 있다. 젊어서는 돈이 없기에 작업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직접 마련하거나 만들어서 써야 한다.

아주 간단한 예로, 젊은 화가들은 캔버스 틀을 직접 만들고 캔버스를 직접 씌우고는 밑칠을 한다. 이렇게 한참을 준비한 뒤에야 붓질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든 화가들은 조수를 시켜서 이미 틀에 씌워지고 밑칠까지 된 캔버스를 앞에 놓고는 곧바로 붓질을 시작한다. 또, 젊어서는 이래저래 경험이 부족해서 시행착오를 하느라고 시간과 자원, 에너지를 많이 낭비한다. 요컨대 가진 것도 많지만 흘리는 것도 많다.

그렇다면 젊어서부터 에너지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면 유리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젊은이들도 몇몇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기이하게도, 불가사의하게도, 젊었을 적부터 효율이 좋았던 이들은 나이를 조금만 먹으면 뭔가 시들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젊은 시절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정열과 에너지이다. 그런 정열과 에너지를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건, 거꾸로 말해 정열과 에너지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 정열과 큰 에너지를 지닌 이는 그것을 제어하는 방법을 스스로 갖추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제어하지 못하고 파멸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런 시기를 지나서 노년에 접어든 예술가는 조수를 고용해서 작업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또한 나이 들었을 때 어느 정도 갖춘 게 있어야 가능하다. 돈이 없어서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면, 체력이 달리기 때문에 상황이 훨씬 나빠진다.

그래도 일단 노년의 예술가는 작업을 더 많이 한다. 젊은 예술가는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곁눈질을 하면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노년의 예술가는 그런 게 다 부질없다는 걸 알기에 목표를 단순하고 분명하게 잡는다. 젊은 예술가는 놀고 취하고 마시고 사랑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노년에는 체력이 딸려서 그렇게 움직이지 못한다. 이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밤새 놀 만한 체력은 되지 않으니까 집과 작업실만 오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꾸준히 작업을 하게 된다. 일찍 피곤해 지니까 규칙적으로 수면과 휴식을 취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몸은 밸런스가 잡힌다. 게다가 노년 특유의 경험과 통찰로 작업 속도도 빠르다.

●노년의 예술가의 특성

물론 노년에는 몸이 말을 잘 듣지 않게 된다.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을 앓았고, 드가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귀가 들리지 않더라도 음악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미술품을 만들 수는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촉각적인’ 작업을 할 수는 있다. 나이든 화가들은 조각을 만들기도 하고, 뚜렷하고 화려한 그림이 아니라 뭔가 손으로 더듬어야 할 것 같은 뿌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르누아르가 말년에 그린 그림들에서 붓질은 냉철하지 않고, 마치 물감을 손가락으로 화면에 비벼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노년의 작품은 윤곽선이 뭉개지고 어둠 속에 흐릿하게 잠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 손이 떨려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꼭 선명하게 그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50대 이후로 화가들의 그림은 뭉개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화가가 그린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대충 비벼 그린 것 같은데, 떨어져서 보면 신기하게도 잘 짜여져 있다. 가까이서 본 느낌과 좀 떨어져서 본 느낌이 크게 달라서, 한 작품이 신비롭고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이렇게 그리게 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화가들이 나이 50을 전후해서 ‘원시(遠視)’가 되기 때문이다! 화가는 자기 그림도 멀리 떨어져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시력을 교정하는 장치나 의료 기술이 대단치 않았던 과거의 화가들의 그림이 특히 이런 양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90년경-1576)가 말년에 그린 그림이 대표적이다. 모네는 백내장을 앓았다. 70대가 되면서부터 주위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단 수술을 하면 눈에 보이는 바깥세상이 확 달라져 버릴까 무서워 버티고 버텼다. 결국 80대 초반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수술의 후유증으로 황시증과 청시증이 생겼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을 가득 채운 모네의 ‘수련’ 연작에는 이처럼 말년에 궤도를 벗어난 시각으로 붙잡은 보라색과 짙은 청색이 담겨 있다.

●눈을 뜨고 정리하는 노년

노년의 예술가는 고집이 세 보인다. 하지만 고집이라는 건, 확신을 두려움 없이 밀어붙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노년에 갑자기 새로운 스타일을 내놓아서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예술가도 적지 않다. 나이 들어서 몸의 상태도 달라지고 마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가는 새로운 것에 눈을 뜨기도 한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모두 접고는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내려가서 그곳 풍경을 집요하게 그렸다. 그러고는 지인에게 “내가 이제 뭔가를 좀 알게 된 것 같네.”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게 뭔지를 전달하는 건 쉽지 않다. 세잔은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고, 눈 밝은 몇몇 후배 예술가들이 세잔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회화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브라크와 피카소가 창안했던 ‘입체주의’이다. 노년의 예술가는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한다.

그런데 이는 바꿔 말하면 과거를 합리화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이 들수록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시간도 길어지다 보니, 과거를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과 재구성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할 방법을 찾는다. 노년의 예술가 중에서는 작품집을 열심히 만드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작품집을 만들어 놓으면 연구자들은 그 예술가에 대해 언급할 때 이 작품집에 의지하게 된다.

즉, 노년의 예술가는 과거에 개입하여 미래를 결정하려 든다. 젊은이는 노년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년이 뭘 느끼는지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 젊은이는 스스로의 몸이 조금씩 말을 듣지 않게 되어서야 노년에 대해 생각한다. 바꿔 말해 노년이 되어야 노년에 생각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결코 우리보다 나이 많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 젊은이는 미숙하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치고, 노년은 경험을 했으니까 원리상으로는 젊은이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년은 젊은이들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화를 내기만 한다. 노년은 젊은이가 미숙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미숙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젊은이는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고, 노년은 시간에 떠밀려 잊어버린다. 노년의 예술가가 보여주는 작업은 젊은이와 노년의 간극을 메워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품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깊이 생각할 때만 그렇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연식 미술사가.미술 관련 저술, 번역, 강의 이연식의 미술이야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졸업

저서: ‘불안의 미술관’,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번역: ‘무서운 그림’ 시리즈,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 ‘다케시의 낙서 입문’,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레미제라블 106장면’ 등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