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적 경제 구조 대신 잠재력 발휘해야 할 때”

케이트 레이웍스-성장 대신 번영하는 경제 설계
인류 진화와 유사한 ‘도넛 경제’
‘재생적 경제 모델’ 곳곳서 등장
“번영·균형에 집중해야 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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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성장 대신 번영하는 건전한 경제를 설계합시다'를 주제로 하는 테드(TED) 강연을 하고 있다. TED 제공 주정화 기자 jeonghwa.joo@jnilbo.com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성장 대신 번영하는 건전한 경제를 설계합시다'를 주제로 하는 테드(TED) 강연을 하고 있다. TED 제공 주정화 기자 [email protected]

‘경제’와 ‘도넛’은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릴 지 모르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는 ‘도넛 경제 모델’은 인류에게 매우 유익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도넛처럼 중심에 뚫린 구멍은 기초적 필수 요소의 박탈 상황을 의미한다. 존엄하고 기회가 있는 삶을 위해 필요한 식량, 보건, 교육, 정치 발언권, 주거공간 등이 결여된 상태다. 모두가 구멍에서 벗어나 튼튼한 사회적 기초 위에서 도넛의 녹색 영역으로 진입하기를 원해서다. 의존적인 경제 구조 대신 잠재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케이트 레이워스가 말하는 이런 주장은 ‘성장 대신 번영하는 건전한 경제를 설계합시다’를 주제로 하는 테드(TED) 강연을 통해 일깨워준다. 그녀는 삶의 기본 요소를 영위하지 못해 구멍에 빠진 국가와 사람들, 지구의 생태한계 안에서 재생과 분배를 지향하는 경제 모델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려 한다.

○인류의 진화와 유사한 경제발전

갓난 아이가 땅바닥을 기어가는 모습은 부모에겐 경이로운 광경이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발달 자세다. 인류의 진화도 마찬가지.

그래서일까. 우리는 당연하게 경제발전도 인류의 진화와 유사한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향 성장 곡선을 기대한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구조는 번영과는 무관하게 성장을 추구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부유한 국가의 경우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경제다. 말 장난 같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번영하고 싶다면 반드시 달성해야 할 변화다.

오늘 날에도 세계 강국의 정부 조차 경제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더 많은 성장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착륙할 수 없는 비행기로 비유할 수 있다. 1960대 경제학자 윌터 로우스터의 저서 ‘경제 성장의 단계:비공산당 성명’에서 실질소득 증가 자체의 매력이 사라지는 시기가 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라고 질문한다.

우리는 여전히 반세기가 넘도록 무한한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요구하며 의존하고 있다. 금융·정치·사회에 걸쳐 성장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현재 금융 시스템은 최대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성장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며 “그 결과 상장기업은 매출·수익·시장 점유율에 걸쳐 성장에 대한 꾸준한 압박을 받았다. 은행은 대출 서비스를 통해 금리를 부여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믿기 힘들 정도로 분열돼 있고, 부(富)의 심각한 쏠림 현상으로 전세계 상위 1%에게만 집중돼 있다. 경제는 퇴화 중이며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는 급속하게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다. 현 사태를 파악한 정치인들은 새로운 성장을 제시한다. 녹색 성장, 포용 성장, 스마트, 탄력, 균형 성장 등 성장만 들어간다면 어떤 미래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재생적 경제 모델’ 속속 등장

케이트 레이워스는 “지금 우리만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20세기 경제학에서 보면 ‘만약 성장으로 불균등이 발생하면 재분배하지 마라. 더 많은 성장으로 균등을 되찾을 수 있다. 성장으로 오염이 발생해도 규제하지 말라. 더 많은 성장으로 오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경제발전을 하는 데 성장이 해결해 준 것은 없다. 과부족 현상을 한번에 해결 가능한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구 사이클과 함께 가는 경제를 창조해야 하고 자원은 완전히 소모하지 않고 계속 재사용 해 햇빛으로 돌아가는 경제로 폐기물이 자원이 되는 경제다. 곳곳에서 이같은 ‘재생적 경제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 100여 곳의 도시에서 태양·바람·파도에서 전력의 70%를 생산하고 있다. 런던·글래스고·암스테르담은 순환도시를 선도하며 도시에서 나온 폐기물이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재생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분배’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사물 인터넷, 재료과학까지 현재의 기술을 활용해 분배의 경제 모델을 설계할 수 있다면 보건·교육·재무·에너지 등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케이트 레이웍스는 “이런 관점이 낯설다는 건 이해한다. 쉽게 설명하면 인류의 진화에서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성장을 멈추고 성숙하게 된다. 이 과정은 인류가 오랜기간 번영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경제만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영원히 성장하기를 바랄까”라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 성장 대신 번영하는 건전한 경제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금융·정치·사회적 혁신을 통해 성장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즉시 극복해야 한다. 다만, 번영과 균형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회·생태적 도넛의 동심원 안에서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주정화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