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영구 귀국 …“내년 50주년, 못다한 노래 부르고파”

<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55·끝 광주 통기타 쇠락기 기러기아빠 신세 벗고 이민行 10여년 美생활 청산후 광주로 열린음악회 광주편 출연 열창 2007년 문예회관서 기념 공연 부르고 싶었던 노래 40곡 열창 통기타 음악세상,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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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의 기록적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니 엊그제는 태풍, 폭우가 쏟아져 시내 저지대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피해가 컸다. 그래도 아침, 저녁 제법 서늘한 건 분명 가을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는 증거다. 아! 이제 가을은 오는 것인가.
 
 
새벽5시 버스를 타보라! 가난하다고 누린 것들, 개뿔이다.
 
1990년 초 가족을 미국으로 이민을 보내고 필자는 미국을 오가며 소위 ‘기러기 아빠’ 신세가 돼 직장도 그만두고 홀로 생활을 하던 때다. 삶 자체가 버겁고 힘든 시기였다. 나의 주체란 걸 거부했고 내 삶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설움과 고통, 절망이 내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5시에 버스를 탔다. 늙은 노부부가 보자기 짐을 지고 버스에 올라타 보자기엔 호박, 가지, 상추 등의 채소가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짜증스럽게 얘기한 말 중에 “이것 모조리 팔아도 만 이천(1만2000)원 밖에 안 남는데 내가 시방 뭐하는 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어”라며 투덜댔다. 순간 ‘내가 가난하다고 누린 것들, 죄다 개뿔이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하더라도 가족이 있는 미국에서 뭐든 하리라. 곧바로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 이민 생활이 시작됐다.
 
 
국소남 KBS 열린 음악회에서 Exodus 열창하다. 1994
 
KBS TV 음악프로그램인 ‘열린 음악회’는 1993년 5월 9일 제1회 공개녹화방송이 첫 삽을 뜨는 해였다. 국내 최고 수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던 ‘열린 음악회’는 당시 KBS의 사장이 이 프로그램명을 지어주고 국내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으로 녹화, 제작 탄생하게 된다.
 
초창기엔 KBS 공개홀에서 시작됐다. 방청객을 채우기 위해 서울 시내 구청, 동사무소의 협조 요청으로 방청객을 버스로 모시기에 바빴다. 회당 1500 명이 동원됐다.(1인당 참가협조비용 오천 원 지급) 프로그램에는 국내 최고의 성악가, 가수들에 국한되고 검증되지 않은 가수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KBS 경음악단은 풀 오케스트라로 코러스단과 함께 짜여졌다.
 
‘열린 음악회’가 최고의 음악회로 자리 잡기까지는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매주 월요일 초저녁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워낙 매머드 급이어서인지 담당프로듀서가 2명에 모든 스탭도 두 그룹으로 짜여졌다. 한 팀이 프로그램을 제작 완성단계에 돌입하기 전, 다른 한 팀이 차기 제작에 들어가곤 했다. 높은 시청률과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인 1994년부터는 대도시를 돌아가며 제작, 방송되었다. 미국에서 필자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KBS ‘열린 음악회’의 AD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때의 프로그램 담당 PD가 이곳 광주 출신 후배 방송인인 (고)장찬정 PD였다. 장찬정 PD의 말은 이랬다. ‘열린 음악회’가 국내 지방도시 순회 방송 제작중인데 다음 주 광주 편을 제작하러 온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 외에 풀 오케스트라에 걸맞게 노랠 할 수 있는 가수가 딱히 없더라는 것이었다. 부를 곡은 ‘I Can’t Stop Loving You’. 톰 존스 버전으로 편곡을 부탁했다. 광주 제작공연은 알고 보니 광주문화예술회관 개관 기념과 맞물려 공연이 성사된 것. 영원한 나의 단짝 듀엣 (고)이장순이 KBS에 구성작가로 둥지를 틀고 열린 음악회 일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녹화방송 3일전에 급전이 왔다. 필자가 부르기로 한 노래(I Cant Stop Loving You)를 가수 김국환(꽃순이를 아시나요·타타타 등 부른 가수)이 부르겠다고 우겨서 어쩔 수 없이 전화로 곡목 변경을 요청해 온 것.
 
장찬정 PD의 말은 오히려 잘 됐다는 것이다. “형은 노래의 소화력이 강하니 광주의 정서가 깃든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생각 끝에 ‘Till’과 ‘Exodus’를 얘기했더니 ‘Exodus’가 좋을 것 같다고 해 노래를 결정했다. 이 노래는 TV 프로그램의 ‘주말의 명화’의 시그널로 사용됐던 유명한 노래다. 구약성서 출애굽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영화 ‘영광의 탈출’ 주제가로도 알려져 있다. 오리지널은 팻 분(Pat Boone)의 Exodus Song으로 Dm(라단조) 곡인데 필자는 온음을 올려 Em(마단조)로 편곡해 불렀다.
 
하루 전 귀국해서 당일 문화예술회관 오전 리허설 때의 일이다. 필자가 처음 부르려고 했던 I Can\\‘t Stop Loving You를 리허설 때 김국환이 죽을 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TV 본 방송시 시청자였던 내 눈에는 김국환이 부른 ‘I Can’t Stop Loving You’는 볼 수가 없었다. 편집, 삭제해 버린 것이다.
 
필자의 노래 ‘Exodus Song’은 지방 신문마다 크게 보도되고 ‘광주를 빛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출연 가수로는 송창식, 고병희, 김국환, 이미키, 국소남, 해바라기, 이용, 성악가 정애련, 임해철 교수 등이다. 필자는 3월10일 음악 리허설은 참여 안했고 당일(3월15일) 리허설 1회에 OK 싸인이 나와 녹화를 마쳤다.
 
 
국소남 귀국 콘서트 2007
 
미국 이민 생활을 마치고, 영구 귀국한 뒤 2007년 6월25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데뷔 36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졌다. 정확히 1년 전(2006.6.25.) 콘서트 기획에 들어갔다. 미국 이민 시 그곳에서 두 번의 콘서트(NY 코로나 파크와 Queens 대학 강당)를 가지면서 엔젠가는 꼭 불러보고 싶었던 노래들이 무려 40곡 넘게 수첩에 적혀 있었다.
 
 
엔젠가는 꼭 무대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 40여 곡
 
선곡에 애를 먹었다. 부르고 싶은 노래는 많은데 부를 수 있는 곡은 한정되어 있고 내 인생에서 언제 다시 이런 큰 무대에서 노랠 할 수가 있으랴! 내 생애의 마지막 콘서트라고 생각했다. 선곡의 어려움을 이렇게 해결했다. 장르별로 곡목을 선정, 결론 지었다. 서석초교 5학년 때 학내 콩쿨에서 1등 했던 곡 △우리 동요-낮에 나온 반달 △ 신곡-자작곡 외 신곡 당신을 거기에 두고, 푸른 허공, 호숫가에서 △올드팝-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You are so beautiful, The way it used to be, Song sung blue △기독교 사상이 깃든 노래-Delilah, Exodus song △통기타 무대-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Wayfaring stranger, Mother △칸소네-물망초(Non ti scordar di me) △국내 가요-보고 싶은 얼굴, 향수. 7가지 장르에 총 16곡을 불렀다. 총기획은 AN‘T, 연출 한보리, 총감독 오영묵이 맡아줬고 악단으로는 Crossover Ensemble (허브), 광주 필 챔버 오케스트라, CNS 금관 5중주, 아니마 여성 앙상블(코러스) 등 40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800석을 다 채우고 입석 방청객이 400명이 넘었다.
 

아직도 못 다한 노래들
 
아직도 불러 보지 못한 노래들.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들이 너무도 많다. 데뷔 50주년이 내년(2019)으로 다가왔다. 좋은 가사에 멋진 노래를 만들어 불러볼 수 있을런지. 데뷔 50주년 콘서트라. 지금부터 계획하고 준비해서 불러야 하는데 아직도 못 다한 노래들을.
 

광주 포크 레전드 6(Six) 광주 사직공원에

광주 사직 통기타 거리 조성사업 일환으로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에 통기타 음악을 매개로 정체성과 브랜드 이미지 구축, 관광객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공공 디자인물의 제작, 설치가 필요할 즈음 스토리 텔링을 기반으로 아카이빙 조형물이 설치됐다. 광주 통기타 레전드 6명을 선정 (고 이장순·국소남·정용주·박문옥·한보리·김원중) 상반신 조형설치물이 크기(가로 110㎝·세로 78㎝)로 지난 7월 설치됐다. 광주 사직통기타거리 추진협의체가 주관했다. 광주를 빛낸 레전드가 6명이 아닌, 더많은 후배들이 사직거리 벽면을 채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Till the day comes)

작금의 현실, 한국 통기타는 무너졌다. 서울 통기타촌 미사리는 온데 간데 없고(60여 군데서 단2~3곳 현존) 가라오케, 노래방, 노래반주기에 맥 놓고 주저앉아 있던 모습들. 통기타 맨들의 현주소다. 광주의 통기타 맨들의 허기진 투쟁같은 생활은 애처러울 정도다. 언젠가는 통기타 바람이 다시 분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통기타와 피크를 손에서 놓지 말라! 반드시 그날은 온다.
 
필자는 소재의 빈약함과 자료정리 미숙 등이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광주 통기타 문화의 열악성에 최선을 다해 ‘통기타는 영원하다’를 써왔다 (2016.7.19~2018.9.5 총55회) 아직 필자의 기억 속에 남겨진 음악의 부스러기들이 음악이 되어 나를 깨울 때까지 미망, 광주의 통기타는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일일이 열거하지 못했던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끝까지 지켜보고 읽어주신 독자와 전남일보에 감사드린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