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졌을까, 더 나빠졌을까? 상상하는 미완성은 아름답다

이연식의 미술이야기 미술에서의 이것과 저것 2 미완성은 치명적인 숙명 예술가는 노년으로 갈수록 시간.체력 줄어 미완성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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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를 위한 미술 실기 시험에서 미완성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미술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실기 작품을 전체적으로 진행하도록 가르친다.

시간이 좀 부족하더라도 작품이 전체적으로 고르게 진행되어 있으면 미완성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작품의 어떤 부분이 휑하니 비어 있으면 미완성으로 간주되어 아예 처음부터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시험이라는 장치 속에서 미완성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은 늘 여러 구석에서 미완성이다.

유명한 예술가들도 적잖은 미완성 작품을 남겼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미완성 작품을 많이 남긴 것은 유명하다.

또,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레오나르도의 경쟁자였던 미켈란젤로도 미완성 작품을 많이 남겼다.

미켈란젤로는 규모가 큰 작업을 여럿 떠맡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체력, 주변 상황을 주먹구구로 가늠하고는 욕심껏 이것저것 맡다 보니 끝내지 못한 작업이 많았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업에 찬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어디까지나 돌덩어리 속에 애초부터 들어 있던 형상을 끄집어낸 것뿐이라고, 겸손인지 오만인지 모를 말을 했다.

이는 자신의 천재성을 의식한 태도이며, 한편으로는 창작 활동이 하느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드러낸 표현이다.

하지만 중년 이후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돌덩어리 속에서 형상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형상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는지, 미켈란젤로는 주저하며 우왕좌왕하다가 덜 깎은 돌덩어리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회의와 신앙에 대한 회의에 사로잡혔다.

● 끝낼 곳, 끝낼 때

예술가는 노년으로 갈수록 미완성 작품이 많아진다. 시간과 체력이 줄어들기에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는 뒤에 남기게 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중년 이후로 작품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는 인물이든 풍경이든 건축이든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는데 소홀해졌다. 근본적인 색과 형태에 몰두하게 되었다.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 꼬박꼬박 출품을 했는데, 해가 갈수록 그의 그림은 점점 더 미완성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전시회가 개막하기 전날, 화가들이 벽에 걸린 자기 작품을 마지막으로 손질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 함께 걸린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겸사겸사 비평가나 동료 예술가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작업을 했다.

터너도 전시장에서 자기 그림을 손질했다.

그런데 터너는 갈수록 마지막 손질을 더 많이 했다. 전시장에는 거의 밑칠만 된 그림을 보내 놓고는 전시 전날에 뚝딱뚝딱 완성을 하고는 했다.

이러다 보니 터너가 죽은 뒤에 그의 작업실에서 발견된 그림들은 대부분 흐릿한 허깨비 같은 모습이어서, 이걸 완성작이라고 해야 할지, 화가의 의도는 어디까지였던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의 그림은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했다.

하지만 뒷날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회화가 등장하면서, 구체적인 장면보다는 빛과 대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풍경화가 유행하게 되었다. 나아가 20세기 들어서는 추상미술이 등장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터너는 인상주의를 선도하고 추상미술을 예고한 예술가로 재평가되었다.

터너가 70세 때 그린 <노햄 성, 일출>은 몇몇 붓질과 아련한 덩어리로만 된 그림이다.

당대의 관객들은 당혹스러워하며 보았겠지만 오늘날의 예술가와 관객들은 이 그림에 찬탄을 보낸다.

● 서명의 문제

어디까지가 미완성이고 어디서부터가 완성일까? 완성과 미완성을 가르는 기준은 얼핏 분명해 보인다.

조각은 나올 게 다 나온 데다 표면이 말끔하면 완성일 테고, 회화는 일단 화면을 전부 물감으로 칠해 놓으면 완성일 것이다. 화면에 고르게 손길이 미쳐 있어야 한다. 비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의 서화에서는 이런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예술가의 의도와 결과 사이의 거리가 작품에 드러나 있으면 미완성이고, 거리가 느껴지지 않으면 완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서양의 회화는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여러 겹으로 물감을 얹는다. 그런즉 밑그림 상태이거나 물감이 충분히 얹혀 있지 않으면 미완성이다.

1870년대 이후로 인상주의 회화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당황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붓질이 너무 굵고 투박해서 도대체가 성의가 없어 보였고 마무리가 안 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이후,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등 기상천외한 유파가 연달아 등장하면서 이제는 작품이 완성이냐, 미완성이냐를 가리기는커녕 이게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지느라 정신이 없게 되었다.

예술가 자신이 완성이라고 선언하면 완성일까? 서명은 예술가의 보증이자 해당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17세기 이후로 화가들은 화면에 서명을 습관적으로 넣게 되었다.

그러니까 화면에 서명이 있으면 완성작이고, 서명이 없으면 미완성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서명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다. 모네나 드가의 그림 중에서는 명백히 미완성인데도 서명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건 어디에서 나온 버릇일까? 이들은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자신의 그림이라며 표시를 해 놓은 것이다. 밑칠 단계에 서명을 해 두고, 그 위에 물감을 덮어서 완성을 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서명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작 완성되었다 싶은 그림에는 서명이 없는 경우도 있다.

모네는 젊어서 폐병으로 일찍 죽은 아내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 <죽은 카미유>라는 작품에는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 경황이 없었을 수도 있고, 완성되지 않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모네가 세상을 떠난 뒤, 모네의 아들은 모네의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이처럼 서명이 없는 작품들에 자신이 서명을 넣었다.

어떻게 했느냐면, 모네의 서명을 도장처럼 만들어서는 작품들에 ‘찍었다.’ 동양의 서화에서 행했던 ‘후낙관’과 같은 것이다.

모네의 <죽은 카미유> 오른편 아래쪽에도 모네의 서명이 ‘찍혀 있다.’

● 작품을 완성하는 이는 관객?

완성인지 미완성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의외로 많다. 작업 방식이 다채로워지고 예술에 대한 관념이 확장될수록 이런 경우는 많아진다.

예술가 스스로가 완성이라고 해도 미완성일 수 있고, 예술가 스스로는 미완성이라고 여겼지만 완성작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마르셀 뒤샹은 멋들어지게 말했다. ‘작품을 완성하는 이는 관객’이라고.

그렇다면 작품은 공개되기 전까지는, 관객의 반응을 받기 전까지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작품은 관객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떤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와, 보고 나서 한참 지난 뒤, 작품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관객의 감정과 판단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인상주의 회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관객이 이를 그림으로 여기지도 않았지만 10년 남짓 지나자 다들 편안하게 받아들였고, 오늘날 인상주의는 일반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유파가 되었다. 관객에게 심판할 권리를 준다는 건, 바꿔 말해 예측할 수 없는 변덕과 변화에 작품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도 감히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작품의 의미는 늘 숨을 쉰다. 작품이 자리 잡은 공간에서, 작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배치하는 이들의 손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느끼고 판단하는 관객 안에서. 작품은 언제일지 모를 완성을 향해 끝없이 움직인다.

● 미완성의 작품과 상상력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애초에 작가 자신이 구상했던 이야기의 프롤로그일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뒤에 더 많은 내용을 이어 쓸 생각이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미완성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이 소설이 드러나 있는 부분만으로도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이 소설이 작가의 의도대로 완성되었더라면 더 좋지 못했을 거라고까지 생각하는 이도 있다.

미완성작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드러낸다. 그러기에 예술가들은 미완성 작품을 치부처럼 여겨서 되도록 보이지 않으려 한다.

미완성 작품은 대개 예술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개된다. 하지만 미완성인 작품은 그 불완전성 때문에 계속 우리를 사로잡는다.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어떤 모습일까? 더 나아졌을까, 더 나빠졌을까? 미완성은 아름답다.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연식 미술사가.미술 관련 저술, 번역, 강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졸업

저서: ‘불안의 미술관’,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번역: ‘무서운 그림’ 시리즈,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 ‘다케시의 낙서 입문’,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레미제라블 106장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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