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표 ‘물과 숲의 현장’ 경양방죽 되살릴 수 없나

전라도 재발견-5.18항쟁 계승, 아시아문화 체험, 경양방죽 힐링 상생발전으로 묶어내자 견훤 리더십.세종 리더십 서린 경양방죽 문화적 가치 대단 일제 강점기.개발 독재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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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항쟁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민족자주, 대한민국의 민주인권평화를 실현해가고자 하고 있기에 5.18 원형복원은 그런 항쟁계승의 장으로 복원해야 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을 실현해가고자 하고 있기에 아시아문화전당과 5대지구는 그런 상생발전의 장으로 조성해가야 한다.

5.18항쟁계승은 한반도 민족자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험계승으로 실현해가고,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은 아시아 교류.융합 체험발전으로 실현가면서 상생발전의 관계를 구축하고 조성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갈 필요가 있다.

5.18항쟁계승과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은 현재는 커다란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광주가 다른 광역도시와 달리 시내 중심부에 물과 숲이 없는 메말라서 사시사철 자연생태의 힐링공간이 부재하기 때문에 5.18 원형복원 항쟁계승과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을 상호 유기적으로 묶어간다고 해도 커다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5.18 원형복원 항쟁계승과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을 상호 유기적으로 묶어서 극대화해가려면 ‘5.18 원형 현장’과 ‘아시아문화전당 현장’과 유기적으로 묶어갈 ‘물과 숲의 현장’을 조성해야 한다.

‘5.18 원형 현장’과 ‘아시아문화전당 현장’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독립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상호 유기적으로 묶어 상생발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5.18 원형 현장’과 ‘아시아문화전당 현장’처럼 시내권에 위치하면서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물과 숲의 현장’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물과 숲의 현장’은 아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옛날에 있었던 바로 경양방죽이라는 ‘물과 숲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이 바로 ‘물과 숲의 현장’을 조성하는 것이 된다. 사라진 광주의 ‘물과 숲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이 ‘5.18 원형 현장’과 ‘아시아문화전당 현장’을 살리고 드높히는 것이다.

경양방죽은 일제 강점기 1937년에 축소되고 박정희 개발독재 정권기 1968년에 아예 없어졌지만 그 이전에는 남도를 대표하는 ‘물과 숲의 현장’이었다. “장차 광주가 대도시로 발전할 때를 대비해서 경관이 수려한 풍치지구로 보전되어야 한다”고 하여 지역민들이 일제 강점기나 박정희 개발독재 정권기나 경양방죽 매립에 분명하게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와 박정희 개발독재 정권은 그런 반대정서와 반대논리를 깡그리 묵살하고 경양방죽을 아예 역사와 지도 속에서 지워버렸다.

지역민 반대에도 소중한 전통유산을 없앤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인데 경양방죽을 없앤 다음에 경양방죽을 대신할 다른 풍치지구를 조성하지 않은 잘못까지 범했다. 경양방죽이 없어진 다음에 광주시가 이러한 풍치지구 조성에 전혀 나서지 않았던 결과로 현재 5대 광역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시내권에 물도 숲도 없는 메마름과 갈증의 도시로 변해 있다는 것이다. 보전해야 할 물의 현장을 없애버린 이런 개발독재의 폐해는 다른 데서도 심각하다. 5대 광역도시 가운데 아파트 비율이 2위와 상당히 차이를 보인 채 가장 높은 도시로 전락해 있다.

5대 광역도시 가운데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은데다가 시내 중심부에 ‘물과 숲의 현장’이 없기 때문에 5.18 원형복원 항쟁계승도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도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흡인력이 많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양방죽 복원은 광주에 ‘물과 숲의 현장’을 복원조성 해서 5.18 항쟁계승 원형복원에도 한국적 고유성과 아시아적 교류.융합성의 상생발전에도 생명과 건강의 힐링을 불어넣어줄 유일한 대안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경양방죽 복원은 생명과 건강의 힐링을 불어넣어줄 유일한 대안이면서도 그런 대안 이상으로 중요한 다른 커다란 역사적 가치가 있다. 즉, 경양방죽을 복원하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후백제 견훤 리더십과 조선 세종 리더십이라는 놀라운 것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경양방죽에 대해서는 고대 신축 기록이 있고 견훤 축조 전설이 있는데 여기에다가 전북, 충남, 충북 소재의 몇몇 저수지에 대한 견훤 축조 전설을 묶은 다음에, 세종시대 기록사료에 경양방죽 축조기사 자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세종 신축 기록은 특정가문의 구전에 불과하다는 것까지 합해서 경양방죽 축조자를 추정하자면 견훤이 신축자, 세종이 개축자라고 할 수 있겠다.

경양방죽의 신축자 ‘후백제 견훤’과 경양방죽의 개축자 ‘조선 세종’이라는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을 되살려내면 광주를 그런 역사적 인물의 리더십을 구현하는 새롭지만 오래 된 역사문화도시로 만들어갈 수 있다.

후백제 견훤 리더십에는 오늘날 호남인들이 이어받으려고 하는 ‘홍익인간’, ‘마한-백제-후백제의 국가계승’이 있다. 후백제를 홍익인간을 구현하는 나라로, 마한과 백제를 계승하는 국가로 내세워 정통성을 역설한 견훤 리더십이 오늘날 호남인의 ‘홍익인간, 호남 역사복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견훤은 이같이 후백제의 정통성을 역설하면서도 후백제 영토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농업생산을 위해 저수지 신축이나 개축을 하였다. 오늘날 견훤의 전설과 관계되는 저수지는 광주전남에만 있지 않고 전북에도 충남에도 충북에도 있는데, 이런 저수지는 그런 신축이나 개축의 저수지 가운데 일부이었던 것 같다.

파묻혀 있는 경양방죽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 견훤의 리더십만 올라오는게 아니라 세종시대의 과학기술과 세종의 리더십도 함께 올라오기 때문에 경양방죽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세종시대 경양방죽 개축을 보여주는 당대의 과학기술이 그대로 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세종시대 과학기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세종시대 과학기술만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학기술 발전을 만들어낸 세종의 리더십까지 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광주를 세종의 과학기술, 세종 리더십을 이어받고 구현하는 오래 된 역사문화도시로 조성해갈 수 있다.

조성식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정책위원장

경양방죽의 원래규모와 축소된 규모는 위의 지도에 잘 나와 있다. 일제에 의해 1937년 원래의 크기에 비해 3분의 1로 축소된 경양방죽은 파란색의 반달모양이다. 경양방죽의 원래규모는 파란색 반달모양 밖으로 표시된 점선 크기다.

경양방죽으로 흘러들어오는 두 갈래의 수원과 물길도 잘 표시되어 있다. 한편에서 장원봉이라는 수원과 그 물길이, 다른 한편에서 조탄보 광주천이라는 수원과 그 물길이 잘 나타나 있다. 일제 강점기 이래 광주의 시가지는 많이 확장됐다. 경양방죽과 시가지의 거리는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시가지의 확장으로 인하여 이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경양방죽 만수와 뱃놀이 사진을 보면 사라진 경양방죽의 풍경을 되살리려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 갖고 있는 것일까?

전라도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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