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생-선.루벤스-색 논쟁… ‘프랑스的 회화’ 정립

이연식의 미술이야기- 선이냐 색이냐 문화적 유럽 중심국가 ‘프랑스’ 푸생 파(선)와 루벤스 파(색) 루이14세 재위 때 미술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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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생 파와 루벤스 파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출 무렵부터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국가가 되었고 문화적으로도 유럽의 중심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 미술이라고 하면 얼른 생각날 만한 게 없다. 건축에서는 베르사유 궁전을 비롯한 바로크 건축의 웅대함이 자랑이지만, 회화에서는 흔히 ‘프랑스적인’ 것이 아직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 14세 재위 동안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흥미로운 논쟁이 진행되었다. ‘푸생 파’와 ‘루벤스 파’의 논쟁이었다.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과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이 시점에서는 둘 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는데, 요컨대 이들 중 어느 쪽의 작품이 더 뛰어난지, 어느 쪽의 작품을 미술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인지, 나아가 미술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푸생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품을 모범으로 삼아 단단하고 균형 잡힌 그림을 그렸다.

반면 루벤스는 경쾌한 구도와 화려한 색채로 온갖 주제를 그리며 유럽 전체에 이름을 날렸다. 푸생의 그림은 간단히 말하자면 조각에 색을 칠한 것 같았다. 색은 보조적인 역할을 했고, 어디까지나 선이 중요했다. 루벤스는 반대였다. 루벤스의 그림에서는 선은 잘 보이지 않았고, 역동적인 색채가 화면을 휘감았다. 그러니까 ‘푸생 파’는 ‘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고, ‘루벤스 파’는 ‘색’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 논쟁의 몇 가지 가닥이 이리저리 뻗어갔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앞선 시대의 그림을 예로 들면서 주장을 이어갔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파엘로와 티치아노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더 좋은 그림인지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라파엘로는 단정하게 윤곽선을 그어 놓고는 그 윤곽선에 맞춰 차분하게 색을 칠했다. 반면 티치아노의 그림은 붓질이 어지럽지만 공간 속에 인물이 떠오르는 분위기를 절묘하게 연출했다. 선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라파엘로를 높이 사고, 색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티치아노가 더 뛰어나다고 했다.

출발은 선으로부터

그림을 그리려면 ‘데생(dessin)’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을 그어서 형상을 만드는 행위를 데생이라고 한다. 데생이 다 되면 그 위에, 혹은 그걸 바탕으로 만든 다른 화면에 칠을 한다. 그러니까 색이 화면에 자리를 잘 잡으려면 데생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림을 배울 때는 데생부터 시작한다. 사실, 배울 필요가 없는 독특한 천재라면야 어떤 식으로 그려도 상관없겠지만, 아직 잠재력이 드러나지 않은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려면 데생부터 시작하게 해야 한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일단 선배 예술가의 공방에 들어가 데생 연습을 하고 색칠법을 배웠다. 데생은 선으로 이루어진 작업이지만, 선으로 그저 인물과 사물의 윤곽만을 잡는 게 아니라 주로 빗금을 그어서 밝고 어두운 부분을 표시했고, 이로써 입체감과 사실적인 느낌을 냈다. 완성된 작품과 비교하면 데생은 밑그림일 뿐이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 대가들의 데생은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여전히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기 위한 세밀한 밑그림,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재빠르게 메모하듯이 그린 그림, 식물의 모양과 풍경, 자연 현상을 관찰하며 그린 그림, 얼핏 떠오른 착상을 서둘러 그린 그림, 인물화를 그릴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연습한 그림 등. 이들의 데생은 창작의 역동적인 과정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기에 더욱 아름답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데생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데생을 보면서 연구한 독일인 화가 뒤러는 데생을 독립된 작품으로 여겼다. 데생은 곧바로 판화로 제작될 수 있었기에 온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데생은 단순히 밑그림이라거나 묘사라는 점을 넘어서, 계획, 지시를 의미한다. 회화의 밑그림뿐 아니라 건축의 설계도 등에도 쓰인다. 프랑스어로 된 책의 제목에 ‘데생’이 들어 있으면 미술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 것인 경우가 많다. ‘데생’은 ‘데시네(dessiner)’라는 동사에서 왔다. ‘데시네’는 ‘설계하다, 계획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데지그나레(Designare)에서 왔다. 데지그나레는 프랑스에서 ‘데시네’, ‘데생’이 되었고, 이탈리아어로는 ‘디세뇨(disegno)’가 되었다. ‘디세뇨’는 영어로 가서는 ‘디자인(design)’이 되었다. 1562년에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설립된 미술학교는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이다. 소묘의 기초를 가르치는 곳이고, 나아가 조형적인 법칙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의미다. 선은 회화의 출발점이면서 회화의 구성적인 측면, 회화를 넘어 조형 활동 전방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라는 의미까지 지녔다.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의 본을 따서 1648년에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아카데미는 우수한 학생들을 지도하고 국가 전체를 향하여 예술의 모범을 제시하는 기관이다. 그런 아카데미에서는 데생을 기초로 삼아 전통적인 미술의 규범을 계승하려 했다. 이런 와중에 푸생 파와 루벤스 파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돌고 도는 이야기

논쟁은 루벤스 파에게 유리한 쪽으로 끝났다(이 논쟁에 대해서는 나중에 ‘예술가와 비평가’라는 주제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은 푸생 편이었지만 두 번째 원장은 루벤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 뒤로 프랑스 미술에서는 분방하고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 미술이 유행했다. 하지만 취향은 돌고 도는 법. 18세기 후반이 되면 로코코 미술에 대한 반발로 ‘신고전주의’ 미술이 득세했다. ‘신고전주의’ 미술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균형과 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고전주의 미술을 주도했던 다비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보면 미술에서 선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당시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그렸던 다비드는 우선 화면에 인물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중요한 인물들을 알몸으로 소묘한 다음에 그 위에 옷을 입히고 색을 칠했다. 조각가들이 인체의 구조와 움직임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먼저 알몸으로 모형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이처럼 선을 중시하는 입장은 조각을 깊이 의식하면서 그림을 그렸다(반면에 색을 중시하는 입장은 조각과 다른 회화만의 독자적인 언어가 색이라고 강조했다).

다비드는 당시에 정권을 잡았던 나폴레옹과 밀착하여 프랑스 미술계를 지배하다가,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국외로 망명을 떠났다. 신고전주의 미술의 전통은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가 이어받았다. 앵그르는 부르주아와 귀족을 그린 정교한 초상화로 유명하다. 앵그르가 활동하던 시기에 프랑스에는 들라크루아라는 반항아가 등장했다.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루아는 고전주의와 전혀 다른 예술 원리를 제시했다. 들라크루아는 역사와 신화 속에서 비극적이고 역동적인 주제를 골라서는 인물들이 격렬하게 날뛰는 그림으로 그려 발표했다. 들라크루아와 앵그르는 경쟁 관계였다. 앵그르는 선을 중시했고, 들라크루아는 색을 중시했다. 그러니까 지난날 푸생 파와 루벤스 파가 맞붙었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푸생의 후계자가 앵그르, 루벤스의 후계자가 들라크루아였다. 들라크루아는 루벤스를 자신의 예술적 스승으로 여겼다. 앵그르와 들라크루아가 같은 주제, 같은 인물을 그린 그림을 보면 이들의 입장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두 사람 모두, 19세기 초에 활약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가니니를 그렸다.

앵그르는 색을 넣어서 완성하지 못했지만 남아 있는 데생은 명료하고 단정하다. 반면 들라크루아가 그린 파가니니는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고, 얼굴색이나 복색도 대충 그린 것처럼 보인다. 춤추는 듯한 붓질에 실린 색이 요동친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인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옮기지는 않았지만, 묘하게도 파가니니의 음악에 담긴 격정, 파가니니의 신들린 듯한 연주가 오히려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들라크루아는 음악처럼 율동적인 색채를 구사하려 했고, 인물이 화면 안에서 약동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신고전주의 예술가들처럼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방식을 쓸 수는 없었다.

새로운 예술가들의 선과 색

아카데미의 화가들이 데생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것과는 달리, 새로이 등장하는 화가들은, 특히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다채로운 붓질을 리드미컬하게 겹치는 수법으로 사물의 윤곽선을 ‘암시’했다. 윤곽선 자체를 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연에는 윤곽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미술의 등장은 데생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하지만 인상주의에 뒤이어 등장한 예술가들은 오히려 선이 지닌 힘을 되살렸다.

고갱의 그림에서 선은 인물과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 자체가 목소리를 낸다. 반 고흐 역시 얼핏 투박해 보이지만 꿈틀거리는 선이 화면 전체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도록 그림을 그렸다. 고갱과 반 고흐의 그림은 선과 색이 모두, 나무랄 데 없이 강렬하다. 이제는 선과 색을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렸지만 결국 떨어져 나와서 독자적으로 자연을 관찰했던 폴 세잔(1839-1906)은 선과 색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순수한 데생은 추상일 뿐이며, 색으로 덮여 있는 자연에서 선과 색을 구별할 수는 없다.” “색을 칠한다는 것이 곧 선을 그리는 것이다. 색을 정확하게 표현할수록 대상은 그 빛과 형체를 드러내며, 색이 조화를 이룰수록 선은 분명해진다.”

이연식 미술사가.미술 관련 저술, 번역, 강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 졸업

저서: ‘불안의 미술관’,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번역: ‘무서운 그림’ 시리즈,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 ‘다케시의 낙서 입문’,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레미제라블 106장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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