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Layer의 위태로운 미학

신호윤의 군도 장경화의 아리송 아트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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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윤 주요 경력

.1975년 서울출생(본, 순천)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졸업개인전 10회(광주, 서울, 방콕)·초대전, 2017 청주 공예비엔날레(청주), 2016 상해 국제종이전(상해현대미술관), 2015 Scope Art N.Y(뉴욕 파빌리온) 점화(Lazy Dragon, 북경) Paper Monologue(과학기술대미술관, 서울), 2014 북경창작스튜디오 ‘북경질주’(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What essence of I?(LWH 갤러리, 상해) 외 국내.외 100여회전속갤러리 : Asian Art Network Gallery(북경 798)

신호윤은 ‘광주시립미술관’ 레시던시프로그램(양산동 창작스튜디오, 북경스튜디오)을 통해 발굴. 육성되어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자기예술을 확장시킨 대표적인 광주의 젊은 작가이다.

20여년부터 시작된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광주 젊은 미술인 발굴과 육성의 결과가 서서히 성과를 일구어 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긍정적 결과는 국내를 넘어 국외까지 넓게 확산되어 ‘광주’가 국제사회에 문화적으로 더욱 두텁게 확산시켜 가게 될 것이며, 시간의 깊이에 따라 ‘광주시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의 공공성과 미래지향적 긴 호흡은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X세대의 어둡고 불안한 시절X세대는 1990년대 중.후반 IMF 고통과 후유증으로 불안한 현실 속에 그들의 미래는 어두운 미로 속으로 한없이 추락되어야 했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불안한 환경 속에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했고 최소함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와 기성세대에 도덕성과 공정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곤 한다. 그래서 어느 세대보다도 거친 현실에 잡초처럼 강하고 질기다. 마치 반항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호윤은 이러한 X세대의 기질과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나 기성세대에 반항아나 이상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냉혹한 현실에 적응하는 현실주의자로 반항아적 기질은 오히려 예술세계에 긍정적인 효과로 창조되고 있다.

이렇게 신호윤은 그의 가슴에 품은 날카로움은 새로운 예술양식의 창조로, 등 뒤에 숨겨둔 비수는 냉혹한 미술시장에 적응력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고등학생 신호윤은 어머님(미술대학 졸업)의 추천으로 여수에서 고)배동신선생의 사사를 받고 이후 미술전문학원의 그림수업으로 미술대학 입학, 조소를 전공하였다.

당시 신체적 심한 비염이 있었던 그는 분진이 많이 발생되는 전통적인 소조, 석조, 목조 작품을 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자연스럽게 설치작업에 전념하게 되었다.

대학졸업이후, IMF 후유증으로 집안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가고 작품 활동보다 가사 일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시기(2004-2006) 신호윤은 ‘광주시립미술관 양산동 창작스튜디오’(이하 양산동)에서 2년이라는 기간 삶을 의탁하고 가사일과 함께 소박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생계유지와 함께 젊은 그룹 ‘퓨전’을 5명의 젊은 작가들로 결성하여 5년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당시 그의 작품은 주로 개념적 성향의 설치작품으로 거친 형식과 주제의식의 불투명은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하였다. 그는 양산동시절 미술재료를 구입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 파지들을 모아 종이 작업을 주로 하였다.

●종이 Layer 형식미학, 내용을 지배하다.

2005년 양산동 시절에 신호윤에게는 각별하게 아끼던 사춘 여동생이 미국 유학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아픔이 찾아온다. 사촌지간이지만 각별하게 친했던 관계인지라 그는 스스로의 아픔을 달래면서 고인이 된 여동생에게 헌사의 마음으로 종이로 수의(壽衣)작품을 제작하여 그해 ‘설정-命’라는 명제로 발표를 한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이 그에게 첫 종이작품으로 발표되었다.

첫 종이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신호윤은 큰 희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이작업에는 종이의 물성과 특성의 한계가 있었다. 우선해서 종이크기의 한계이다. 단일 크기로 한계를 넘을 수 없어 작품의 대형화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재료의 영구성이다. 종이라는 재료가 그렇듯이 습기에 취약하고 영구적이질 못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가지의 취약한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제작방법과 대안의 재료를 찾아야만 했다. 작품의 대형화를 위해서는 종이를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컴퓨터 밑 드로잉 작업 시 보다 치밀한 계산으로 1차 제작된 종이를 이어붙이는 수작업을 통해 작품대형화를 극복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이의 물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름종이(트레싱지)와 코팅이라는 방법을 실험하여 습기의 한계는 다소 극복할 수는 있으나 영구적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현재도 종이라는 물성의 한계를 뛰어 넘기 꾸준하게 국내·외의 정보를 수집하고 뛰어 다니면서 새로운 종이재료를 확보하고 실험하고 있다.

최근 작품을 보면 작품의 영구성 문제에 대한 걱정스러움을 어느 정도 성과를 일구어 내었다. 특히 ‘불상시리즈’와 ‘피에타’ 등은 ‘우레탄 클리어’ 기법이 그것이다.

한편 이러한 그의 작품을 미술평단의 일각에서 작품제작에 장인정신의 노동집약과 이미지의 모방(불상시리즈)이라는 이유로 공예장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그의 예술을 양식적 측면(표피적 측면)에서 보는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 예술에 있어 장르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그의 예술이 시대정신과 담론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 어떻게 우리시대를 증언하고 있는가? 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동시에 글로벌 보편성을 어떻게 확보해가고 있는가? 이다.

현대 시각예술의 경우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가는 양식과 재료에 관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경쟁력 또한 확보되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동시에 갖는다.

즉, 미술작품의 우수성은 내용과 형식의 문제로 집약되며 내용보다 형식적 측면이 우선 강조되어 작품이동을 위한 신속성과 편의성 그리고 영구성과 크기의 한계성 등 미술가에게는 매우 주요한 덕목이기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추어 볼 때 신호윤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로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이 높은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공간을 장악하는 ‘군도’와 ‘빅 브라더’그의 초대전인 ‘피에타의 섬’을 주목해 본다. 이 전시는 신호윤과 ‘광주하정웅미술관’이 공들여 준비했으며, 전시에는 많은 작품이 출품되었지만 특히 1전시장에 설치 된 ‘군도’는 신호윤의 대표작으로 집중적인 분석을 하고자 한다.

전시장 입구 1전시실에 천정에 설치되어진 작품 ‘군도’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우선 시각적으로 붉은 색 종이로 제작된 대형 인간형상으로 시선은 전시장 바닥을 향하게 종이 Layer 설치되어 큰 전시장 전체의 공간을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장악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입 바람도 날리는 종이 Layer는 육중한 무게감으로 변신하여 전시장 천정에서 곧이라도 쏟아 질 것 같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의 소름이 돋는다. 왜 신호윤은 이러한 작품을 제작하였고 그것도 첫 전시장에 설치하였을까? 의문이 생긴다. X세대가 그렇듯이 부당한 사회와 기득세력에 대한 불만과 공평하지 못함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 역시 X세대이다. 그래서 인가? 그의 전시작품 다수는 현대사회에 대한 발언을 담아내고자 있다. 그의 작품 ‘군도’ 역시 그러한 연장선에 제작되어진 대표작이다.

예술가는 당대의 역사와 시대의 증언을 자기 미학 속에 구현되는 형상성을 통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는다.

신호윤 역시 역사와 시대 앞에 당당하고 자는 소명의식이 깊은 X세대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 ‘군도’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거대한 현대사회 공동체에 개인이 갖는 나약한 존재감을 회화적이고 문학적 어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품을 구성하는 한장 한장의 종이 Layers는 나약한 현대인으로 은유적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공동체 사회를 움직이는 ‘빅 브라더’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천장 속에 감추어져 진채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청정 속에 숨어있는 ‘빅 브라더’가 관심을 놓아 버리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붉은 칼라의 불안감을 전시장에 연출시킨 것이다. 신호윤의 현대사회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공동체 사회로 눈에 보이지 않는 ‘빅 브라더’에 의해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다. 그 ‘빅 브라더’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글로벌자본, 팽배한 국가주의, 제국주의 부활, 신자유주의 수구세력… 모를 일이다. 그는 작품 ‘군도’를 통해 관람객에게 던지는 화두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불안감과 냉혹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학습의 예제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매달린 종이는 복잡한 선으로 내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 또한 그에게 내제된 복잡하게 얽힌 이미지로 관람객에게 오류의 이미지, 미지의 이미지로 역 발상의 교육을 유도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군도’를 통한 그의 메시지는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우리공동체 현실인식과 종이 Layer의 반복을 통해 관람객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미지 왜곡을 시키는 효과를 통해 관람객의 둔해진 기억과 정체성을 위태로운 공포로 각성과 고발을 하고자 하였다.

그는 관람객에게 수많은 Layer를 다각도의 움직이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우리사회 또한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논 높이로 본질을 찾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북경 798활동과 글로벌 확장현재 신호윤은 북경의 798지역의 주요 갤러리와 전속계약하고 광주와 북경을 오가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9월, 북경에서 798 지역의 갤러리에서 초대전 준비를 위해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토대는 물론 ‘양산동 창작스튜디오’(2년)에 이어 ‘북경스튜디오’(1년)이 큰 도움이 되었음은 따로 말 할여지가 없으며, 그 역시 ‘광주시’와 ‘시립미술관’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신호윤은 ‘아나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포함한 세대이다. 그러면서 그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디지로그’의 신용어 세대이기도 하다. 그는 4차 산업시대에 새롭게 구상하는 작품은 설치에 영상, 음향을 더하는 콜라보를 계획하고 있다.

장경화 현 조선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2회)

뉴욕 얼터네티브 미술관 파견

뉴욕 록펠러우 재단(ACC) 기금 수상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장경화의 아리송 아트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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