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회화'로 형식미학의 창조… 시대의 트렌드 관통

장경화의 아리송 ART데이트-서정민 작가 현대회화 갑갑함 느껴 유화 접고 드로잉 지속 캔버스에 한지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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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반기는 서정민 작가 부부의 눈빛은 한없이 선하고 맑아 보였다.

생활공간은 경기도 일산과 파주의 경계선에 있는 가구단지에 위치해 있었다.

작업실은 다양한 크기의 대형 캔버스, 기계와 각종 공구, 한지 두루말이 박스들이 쌓여 말끔하게 정리정돈 돼 있었다. 서 작가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고향을 떠나 경기도 파주를 활동거점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국가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작품을 요청받으면서 혼신을 다해 작품생활을 하는 서정민은 지역 출신의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만학도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도전

서정민의 학력과 회화수업의 이력은 흥미롭다고 말하기 보다는 어쩌면 그의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의 흔적과 열정의 시간이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장흥 시골의 가난한 집의 출생으로 장흥에서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으나 그 꿈을 가슴 한구석에 담아두고 24세에 여수 한전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직장생활 중에 틈틈이 그림을 그렸으나 예술론과 현대회화에 대한 이론과 형식미의 한계에 갑갑함을 느꼈다. 해소를 위한 각별한 각오가 필요했다.

결국 흡족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참을 수 없는 목마름에 만학도의 길을 선택했다. 동시에 오랜시간 그려왔던 아카데믹 화풍의 유화를 접고 드로잉만을 수년간 지속했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야간근무로 전환하고 광주의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으로 편입했다. 이른 아침에는 광주로 올라와 미술수업을 하고 오후는 여수에 내려가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해야했다. 부족한 잠은 광주와 여수를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보충했다.

대학시절은 회화에 대한 이론과 실기의 기본기를 연마하면서 아카데믹한 회화의 개념에서부터 현대미술까지를 접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어 수원의 경기대학교 대학원 미술과에 입학해 여수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학업을 마쳤다. 수도권 소재 대학원 과정은 서울 지역 미술인과의 인맥 폭을 넓히는 기회를 스스로 마련한 셈이다.

이와함께 현대미술이라는 높은 산을 넘는 자극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가 됐다. 이시기 ‘한지’라는 재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만학도 서정민의 예술과 자기미학을 향한 열정과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지를 통한 ‘입체회화’ 창조

한지는 ‘자기미학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서 작가에게 각별한 소재였다. 물론 그의 진정한 예술의 출발점은 풍성하고 고즈넉한 장흥 바닷가였다. 남도적 투박한 정서와 서정미학은 오늘의 한지회화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캔버스에 오일페인팅 양식을 과감히 버리고 한지라는 재료를 선택한 것은 대학과 대학원과정을 통해 얻어낸 예술개념의 확장과 현대미술에 대한 집요한 탐구정신에서 비롯됐다.

특히 직장을 뒤로하고 파주로 작업실을 이전한 것은 독창적 자기미학의 형식을 창조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파주시대’를 열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담론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과 선, 그리고 선의 움직임으로 면에 대한 탐구와 공간에 대한 개념의 확장, 동양적 개념과 의미ㆍ표현방식, 서구적 개념과의 차이, 자기미학으로 표현을 위한 물음 등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예술가로 치열한 탐구정신을 훈련했다.

서예를 하는 지인의 작업실 구석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예습작 파지들은 그의 작업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파지들을 끌어 모아 한지의 특성과 성질, 물과 먹의 관계, 영구보존관계 등에 관한 연구와 파지를 쌓아 단면을 잘라보고 측면을 잘라보는 실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한지라는 재료의 영구성과 조형실험을 위해서다.

그는 낙오된 한지를 새로운 오브제, 생명의 미학화, 이질적이거나 낯설지 않은 개념으로 재창조해 완성했다.

이렇게 그는 본격적인 한지 작업에 몰두한다.

파지 한지의 두루말이 단면에 글씨흔적이 나타나게 날카로운 면도날로 크기가 다른 한지 봉을 자르고 캔버스에 접착제로 쌓아 올리는 작업과정이다.

오늘의 작품들은 이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얻어졌다. 이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그의 작업실은 예술과 자기미학의 어법을 찾아가는 일종의 전쟁터였다. 그 속에는 그는 자신의 삶을 모두 투신하게 됐다.

한지의 단면에는 먹 글씨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배치돼 조형적으로 완성도와 밀도를 높여주었고 글의 내용은 읽을 수 없지만 상징인 의미 함축으로동양정신과 삶의 교훈이 재구성되어 새로운 ‘입체회화’ 양식을 창조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서정성과 함께 순백과 여백의 미학으로 시간과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그가 재료를 다루는 성숙함과 세련된 조형감각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된 결과이다.

음과 양, 오행 흐름에서 던지는 화두

그의 작품은 한지의 자그마한 두루말이 하나하나의 흔적들이 캔버스에 가로와 세로 흐름의 결을 이루고 있다.

그가 직접 곡물을 연구해 만들어낸 본드를 사용해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축조하듯 쌓아가면서 이미지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수차례의 드로잉으로 계산된 캔버스에 높고 낮음의 한지의 형상미를 갖추게 된다.

캔버스 위에 한지들은 크고 작은 둥근 원, 굵고 가는 선, 크고 작은 면과 자연을 함축하는 이미지로 작품 명제 또한 ‘함성’ ‘무심’ ‘선들의 여행’ ‘도(道)’ ‘와(瓦)’ 등으로 추상적이고 비형상적 명제에서 느낄 수 있듯 동양의 자연주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동양의 ‘음(陰)’과 ‘양(陽)’ 그리고 오행(水. 火. 木. 金. 土)의 자연의 기운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의 함성, 바람의 흐름, 자연의 이치, 인간의 도리로 추상적이고 비정형적 주제이다.

그의 작품에는 공통적인 구조와 마티에르가 있다. 작품마다 주제는 소리, 바람, 해와 달, 자연의 이치들로 차이가 있으면서도 전반적으로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자연이라는 대 주제에 아래 하나의 심상의 운율로 통일돼 읽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작품마다 다른 명제와 이미지의 차이점이 있더라도 캔버스 화면에 한지는 자연의 기운이라는 흐름을 담아내고 자는 자기 미학어법의 동일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캔버스에 달라 붙어있는 한지 두루말이 토막들은 하나의 물결을 이루며 자연의 높고 낮음의 기운과 흐름을 담아내 동양철학과 정신의 재해석하고 있다.

캔버스라는 평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작품은 이미지 확장의 시각적인 효과로 일정한 주변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작품은 색채나 형상이 결코 자극적이거나 물리적인 어떠한 작동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공간을 장악하는 시각적 효과는 도드라진 한지의 흐름이 주변 공간까지 확장되는 동적인 효과 때문이다. 그가 수년간 모험과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결과물이다.

지구는 천박한 자본,권력주의와 인류문명의 발전논리, 끊임없는 인간의 탐욕 등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현 시점에 지구의 대 자연은 인류에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서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그는 인류의 자본주의 식의 경제발전 논리에서 동양의 자연주의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서정민 주요 경력

ㆍ서정민(1961년 장흥생)

ㆍ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경기대 대학원 졸업

ㆍ여수한전(1985 – 2007)

ㆍ개인전 26회(광주, 서울, 뉴욕, 이스탄불, 바젤, 동경 등)

ㆍ초대전 2016 인도-한국현대미술교류전(서울, 발리), 2015 오페라갤러리(서울),
2013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이탈리아) 외 60여회

ㆍ수상 2016 올해의 미술상(한국미협 고양지부) / 2014 장리석 상(한국미술협회)
2012 골든어웨드상(오스텐미술관 특별전) / 스코페비엔날레최고상(종이부문) 외 다수

ㆍ작품소장처 서울시립미술관, 대만시립미술관, 한국전력공사,
트윈타워(미국), 동아일보, 종이나라박물관 외 다수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경화 현 조선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2회)
뉴욕 얼터네티브 미술관 파견
뉴욕 록펠러우 재단(ACC) 기금 수상

장경화의 아리송 ART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