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중심이 돼 미ㆍ일ㆍ중ㆍ러 균형추 돼야 해"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 중용철학의 동서양 거두 아리스토텔레스 vs 자사 한반도 평화철학은 \'중용\' 중용외교ㆍ정치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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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북미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반도 외교라인을 볼턴, 폼페이오, 헤일리라고 하는 소위 슈퍼매파라는 대북강경론파로 교체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하겠다고 평화적인 메시지를 보내는데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사:그 사람 특기가 오버인것 같아. 공자님이 이런 꼴을 본다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을 것 같네. 어느 날 제자인 자공이 공자님께 “선생님, 자장과 자하(공자의 두 제자) 중 어느 쪽이 어집(仁)니까”라고 물었지. 공자님은 “자장은 재주가 과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자 다시 자공이 물었어. “그렇다면 자장이 낫다는 말씀입니까” 공자님은 “그렇지 않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마찬가지다”고 했지. 과유불급이니 중간이 적당하다는 말이지. 매파로 북미회담에서 북한 압박하려나본데 그런데 흔들릴 북도 아니고, 평화협상만 어렵게 할 뿐이지.

필자:지나치거나 부족한 것 다 문제다 그거죠. 그렇다면 그 중간이 중용입니까. 오버하지 말라는 것이 선생님이 말하는 중용(中庸)입니까.

자사:그렇지. 중(中)이라는 것은 편향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아 지나침(過)와 미치지 않음(不及)이 없는 평상시의 이치라 했어. 공자님은 중(中)이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 줬고,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그 중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라 하셨지. 더구나 군자의 중용이라는 것은 지나치거나 치우침이 없어 때와 상황에 적절하게(時中) 덕행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네. 중용연구를 한 후학 다산 정약용이 시중지의(時中之義)란 말을 했다는데 특히 시중이란게 중요해. 때에 맞는 정의가 중용이란거지. 의에 맞으면 실천하고 의에 맞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거야.

아리스토텔레스:자사님 반갑습니다. 선생은 공자의 제자 증자에게 공부를 배운 공자의 손자로 중용을 쓰고 후에 맹자를 가르친 정통 공자학파라죠.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고대 그리스에서도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플라톤이 있고 저는 플라톤 선생에게 배운 정통 소크라테스학파라할 수 있죠. 나는 형이상학, 논리학 등 이론적인 학문에서부터 실천적인 윤리학까지 광범위한 연구를 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서양철학에서 중용론을 정립했지요.

필자:지금으로부터 2300~2500년 전 동서양 철학사조가 비슷했다는게 놀라울 뿐입니다. 저는 공자대 소크라테스, 플라톤대 맹자의 대화를 소개했고 오늘 자사와 아리스토텔레스 두 거두를 모셔 동서양철학에 흐르는 중용사상을 돌아보고 오늘의 시대에 지혜를 얻으려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님은 덕론(德論)을 쓰셨죠. 그 덕론에서 말한 중용이란게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나의 스승 플라톤께서 정의(正義)가 중용이라고 했지. 나 역시 정의가 중용이고 법이라고 했다네.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라고 보네. 그런데 그 행복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나는 “행복은 완전한 덕에 따르는 어떤 종류의 영혼의 활동이므로 우리는 덕에 관하여 검토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것이 행복에 관하여 우리가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고 쓰면서 덕(德 혹은 道德)을 중시했다네. 그 덕은 본성적으로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봤네. 훌륭한 품성의 덕은 습관이란 것을 통해 얻어지는 거지. 사람은 모두가 올바른 사람이 되지는 않쟎는가. 어떤 사람은 올바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지.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도 되고 어떤 사람은 비겁하게 되지. 애국자가 있고 매국노가 있는 것처럼. 습관이 품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중용이야말로 이 품성의 덕이 다른 품성과 다르게 나타나는 종차(種差 개념종류의 차이)를 발견했다네.

자사:아르스토텔레스 선생이 말하는 중용과 공자의 중용론이 같소. 나는 중용 1장 첫머리에서 “하늘이 명해 준 것을 성(性)이라고 이르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이르고, 그 도를 닦아 수양하는 일을 교라고 한다(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이오 솔성지위도 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 修道之謂敎니라)”고 했소. 착한 품성을 하늘이 주었으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도를 누가 보지 않을 때도 경계하고 신중하며 그가 하는 말을 누가 듣지 않을 때도 두려워하며(계신공구 戒愼恐懼)” 실천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덕에 이르는 습관을 강조한 철학과 같지요. 사람이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희노애락 喜怒哀樂)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밖으로 드러났으나 다 절도에 알맞으면 이것을 ‘화(和)’라고 하지. 결국 ‘중’이라는 것은 천하에 큰 근본(性)이고 ‘화’는 천하에 통달한 도(情)라 하네. 이렇게 ‘중화’가 이뤄지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게 되며 만물이 잘 육성된다”는 것이 내 중용철학의 핵심이라오.

필자 : 이거 두 분 말씀이 점점 어려워지는군요. 이러면 여기서부터 독자들이 안 읽을지 몰라요. 다시 제가 정리하면 성(性)=행복추구, 도(道)를 배우는 것=습관, 이를 가르는 기준이 너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것(過와 不及)이 중용이라는 거죠? 중용이란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말해 주시면 쉬울 것 같습니다. 요즘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서요.

아리스토텔레스 : 하하! 사상이나 철학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 지금 한반도엔 4월말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북중 북일 남북미 남북미중러일등 다양한 관계의 만남이 예상된다 들었어. 참으로 쉽지 않은 퍼즐 같은 상황인데 이 복합적인 상황을 뚫고 한반도에 평화 혹은 정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나. 남북 지도자가 먼저 중용의 철학적 입장을 갖고 중용외교를 잘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상대에 대해 무모한 만용을 부리지 않고, 반대로 강대한 나라에 비겁하지도 않으면서 균형을 잡고 나가면 성공해. 상대도 그렇지만 우선 내가 과하거나 모자라면 실패하게 되지. 나는 인간생활의 여러 유형에 대해 이런 중용의 이치를 정리했다오. 만용과 비겁사이 중용은 진정한 용기이며 교만과 비굴사이에는 긍지, 굴복과 무시 사이에는 정의, 겸손과 허풍사이에 진실, 무뚝뚝함과 익살사이에 재치, 무감각과 방탕 사이에 절제, 돈쓰는데 인색과 낭비방탕사이에 관대함과 너그러움이라는 등의 수많은 중용의 있는 것이네. 중용을 아는 것은 사려 깊은 지혜고 실천하는 것은 성찰적 균형이지.

자사 : 내 생각을 먼저 말한 듯 하오이다. 논어에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며 “하늘의 운수가 그대에게 있으니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고 했다는데 그것이 윤집궐중(允執厥中)을 말하지. 진실로 성실히 중용의 도(중용지도 中庸之道)를 견지하라는 말일세. 동아시아에 평화가 실현되려면 다르나 같음을 찾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중화(中和)를 위한 질서와 그런 외교가 필요하다고 보네. 어찌 보면 동아시아와 세계평화가 지금 한반도에 달렸어. 약소국인 한반도가 사는 길은 양극단 사이에 중립외교와 중립지대를 만드는 것이고 그 균형추가 돼 거꾸로 미일과 중러 양단(兩端)을 균형 조화시키는 평화의 지렛대가 되는 셈이지. 그런 의미에서 중용은 사람다운 삶을 위한 실천의 도리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정치를 위한 철학의 기준이기도 하지 않겠나. 김정은 위원장은 생각보다 과한 데가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더 중용적인 성품이 있어. 문 대통령이 중용의 도로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네.

필자 : 동서양 중용철학의 거두인 두 분의 귀한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중용은 정의고 중용을 통해 참된 삶의 행복과 바른 정치와 평화의 시대를 이루자는 것이 오늘 대화의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자가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지 않다”고 비탄했는데 그것이 중용의 도였습니다. 쉽지 않지만 ‘중용을 실천해! 제발~’로 마무리합니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 꿈꾸지 말아야”

국민심서 6 ‘율기(律己)’

율기 6조, 칙궁(飭躬ㆍ수령의 몸가짐), 청심(淸心ㆍ청렴한 마음가짐), 제가(齊家ㆍ집안을 다스림), 병객(屛客ㆍ청탁을 물리침), 절용(節用ㆍ씀씀이를 절약함), 낙시(樂施ㆍ베풀기를 좋아함)

“다른 벼슬이야 하고 싶으니 임명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나, 목민관인 지방관만은 시켜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

목민심서 제1편 1조에 나온 말이다.

요즘 지방선거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후보들이 저마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정작 주민들은 후보들이 누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각 정당에서 공천 심사를 통해 후보의 적격을 따진다.

얼마 전 한 공무원노동조합에서 “각 정당은 6ㆍ13지방선거에서 청와대가 제시한 고위공직자 인사배제 7원칙에 어긋나는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후보자들이 공천 신청을 하고 있지만 각 정당이 자격심사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부실검증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얘기다. 그 기준으로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성범죄, 폭력범죄, 병역기피, 세금탈루, 음주운전,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친인척비리 등을 공천심사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사이 후보들의 자진사퇴나 심사에서 배제되는 소식이 들려온다. 성폭력이나 추행에 관련된 인사들이 가장 많고, 앞으로도 더 늘 것 같다. 각종 비리 연루혐의를 가진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음주운전에 해당됐는데 당에서 예외자로 봐 줬다며 항의소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데도 수사나 재판이 진행중이라 봐주는 문제가 있다는 성명도 나오고 있다.

이런 때 바로 목민심서 제1조에서 다산 정약용이 왜 목민관인 지방관만은 시켜달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목민관은 오늘날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해당된다. 이들이 청렴하지 못하고 부패하면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다. 이들이 일선 민원행정과 정치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시대 목민관인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부터 제대로 된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주민들이 투표하기 전 해당 정당에서 후보들을 사전에 충분히 심사ㆍ검증해 기준 미달자나 부적격자가 후보로 나오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지난 촛불국민들의 주권의식을 생각하면 오히려 과거보다 기준이 더 엄정하고 높아져야 한다.

다산은 자치 단체장의 백가지 업무의 기본으로 자기 규율에 해당하는 ‘율기(律己)’를 얘기하며 목민심서 2편에서 율기 6조를 제시한다. 칙궁(飭躬ㆍ수령의 몸가짐), 청심(淸心ㆍ청렴한 마음가짐), 제가(齊家ㆍ집안을 다스림), 병객(屛客ㆍ청탁을 물리침), 절용(節用ㆍ씀씀이를 절약함), 낙시(樂施ㆍ베풀기를 좋아함)가 그것.

어떤 능력을 가졌느냐에 앞서 기본이 된 사람이 목민관이 돼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조항이다. 최근 개헌안에 국민의견을 조사하는 데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제는 찬성여론이 91%였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지방자치 단체장에 대한 국민 불신이 얼마나 큰지 돌아봐야 된다.

“청렴하지 않고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불렴이능목자미지유야ㆍ不廉而能牧者未之有也)”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것만이라도 확실히 했으면 한다.

지역미래연구원 원장
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장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