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에 엿보이는 '수묵화 희망의 메시지'

설박 수묵화가 장경화의 아리송 ART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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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수묵화가 ‘설박’의 부친은 문인화가 ‘시원 박태후’다. 나주에 살면서 광주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문인화가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고 절제된 화풍과 힘있고 맑은 필력으로 지역사회에 존중받고 있다. 시원은 오래전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고향의 전원에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집을 짓고 자연정원을 가꾸면서 수련하는 선비적 삶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아마도 시원의 집을 방문해 본 사람이면 그의 선비인품과 작품도 이해하게 된다.

부친에 이어받은 수묵정신과 세계관

설박은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부친의 삶과 예술에 기대 전통수묵화가로 높은 정신세계와 예술가적 기본적인 덕목과 태도를 체득했다. 대학에서 수묵화와 채색화에 대한 기초를 공부했다.

대학시절 잠시 채색을 공부했으나 수묵양식으로 다시 선회해 풍경과 인물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대상에 충실한 기본기를 연마했다. 그녀의 세계관과 예술관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어린시절부터 성장과정을 통한 부친에게서 받았다. 그녀의 최근 작품에서 부친의 간결한 화면 구성과 관념적 예술세계가 보이는 것도 그 이유다. 부친으로부터 이식된 세계관과 예술관으로 수묵세계는 실경이 아닌 관념속 이미지로 자신에 내재된 자연의 심상을 중첩시켜가면서 여백과 함께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깔끔하면서 정갈스럽게 화면을 구성해 내고 있다.

고통으로 일궈낸 ‘꼴라쥬’와 부감법

설박에게 대학졸업과 함께 찾아 온 미술시장에서 수묵화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미래의 어두운 현실과 전업 수묵화가로 명망 높은 부친의 작품 활동으로도 생활이 어렵다는 점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전업작가의 길을 가야 하는가. 자신의 막막한 미래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적지 않은 시간으로 방황했다. 그녀의 주변 선후배 작품 활동을 보면서 가능성에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어려운 현실과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부모님과 선배, 지인의 격려가 도전과 열정에 힘을 보태면서 본격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전업 수묵화가로 활동하면서 두 가지의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수묵화가로 기본인 먹을 잘 다루고 필을 세우는 일이다. 수묵의 특성은 서양화 재료와 달리 실수가 허락되지 않는 1획으로 작품을 마무리해야 한다. 대학에서 4년간 먹을 다루는 수업을 했으나 그 정도로는 먹을 익히고 필을 세우기에는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졸업 후 먹을 잘 다루는 선배 작업실을 드나들며 연마했다.

또 하나는 전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형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수묵그림에 대한 반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찾고자 하는 새로운 형식의 수묵그림, 붓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묵그림, 전통수묵 정신을 재해석하는 수묵그림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먹을 습작하면서 수많은 파지가 나오게 됐는데 우연히 그 파지를 통한 콜라쥬 기법을 발견하게 됐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그 꼴라쥬라는 서양회화 기법 말이다. 그 때가 2007년. 한동안 계속된 습작을 통해 세련미와 완성도를 높여 ‘꼴라쥬’ 작품을 선보이게 된 시기가 2009년으로 현재까지 그녀가 창조한 수묵 꼴라쥬’에 집중했다.

설박의 그림에 풍경은 실제 존재하는 실경이 아니다. 자신의 심상에 존재하는 이념적 도식화된 산은 관념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로 재구성을 통해 조형화 시켜왔다.

작품을 제작하는 데는 실경보다 관념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녀의 작품 앞에 있노라면 마치 하늘을 나는 신선이라도 되는 느낌, 땀을 흘려가며 등반한 뒤 산 정상에 올라있는 감동이 느껴진다. 이 감동은 ‘부감법’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높은 시점에서 작품이 제작됐기 때문이다.

부감법을 통해 관념 속에 존재하는 풍경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가면서 혼돈스러움이 아닌 명료한 이미지로 묘사했다. 부친에게서 이식된 선비적 품성과 자연존중 세계관으로 거시적 자연조망을 통한 산의 이미지를 맑음과 순환의 맥박으로 자아를 진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을 부감법의 투시로 미적 조형의 완성도를 이끌고 정신적 경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미술사에 많지만 그녀는 현재까지 일정한 회화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거둬다고 본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밀한 세계를 발견해가면서 자연의 이치 속에 인간의 삶을 감각하고 확인하고 있다. 부감법을 통해 산의 골법을 명료하고 활달하게 화면에 전개시키면서 투명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완성도 높은 수묵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현대수묵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

설박은 현재까지 10여 년을 수묵의 농담으로 번져있는 화선지를 가위와 손으로 빗어 산과 자연의 이미지를 창조해 가고 있다. 전통의 소중한 가치인 자연존중과 합일치의 정신을 수양하고 자연과 인간의 이치와 현대적 삶을 감각하고 있다. 그녀는 10여년 동안 ‘꼴라쥬 양식’과 ‘부감법의 미학어법’에서 새로운 변화를 위한 또다른 도전과 실험을 준비 중이다.

예술에는 형식과 내용도 중요하지만 현대미술은 형식을 중요시 한다. 간혹 형식이 내용을 가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수묵에도 형식미학이 예외없이 주요하게 작동이 되고 있다.

그는 이제 현대를 예측하고 트랜드를 읽어가면서 오늘에 집중하고 새로운 형식을 위해 노력한다. 조만간 국내ㆍ외 미술계에 새로운 수묵화의 희망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확신에 응답을 위해 고뇌의 일기를 써가고 있을 터다. 그녀는 오늘도 자그마하고 초라한 작업실에서 화선지 위에 수묵의 형식실험과 도전의 반복을 통해 현대라는 새로운 옥석을 창조하고자 하는 열정이 보인다.

수묵화 미래는 이제 건강한 젊은작가들에게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술은 과학과 인문학과 시대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한다. 설박 또한 시대변화에 적응하고 진화에 순응하고 있는 건강한 젊은 작가 중 한사람이다. 수묵화의 미래는 설박과 같은 젊고 건강한 의식과 열정있는 젊은작가들에게 기대하고자 한다.

한ㆍ중ㆍ일 3국 전통 미술… 서양미술에 밀려 쇠퇴

수묵화는 동양 3국(중국ㆍ한국ㆍ일본)만이 오랜 역사 속에 존재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수묵화는 역사와 시대의 변천과 함께 선조의 삶과 정신을 담아 후손인 우리의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전통 수묵화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는 오늘에 남겨져 있다.

수묵화는 1980년 중ㆍ후반을 기점으로 한국미술시장 주류에서 서양화에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무거운 사유는 점차 서구화 돼가는 대중적 정서와 삶의 변화가 요인이다.

서구문화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지배해 나가면서 미술시장에서도 서구화 물결로 수묵화는 자연스럽게 소외받게 됐다. 또다른 요인은 1980년대 초반, 한국미술 평단에서는 한국미술의 한국성에 대한 문제를 집중 토론하며 무분별한 서구미술 수입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수묵화 양식의 전통답습에 대한 반성과 현대적 변용에 대한 담론을 형성했다. 그러나 대다수 수묵 화가는 전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줬다. 시대는 변해 가는데 수묵화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로 인해 수묵화 양식은 진부하고 고루한 예술장르로 인식돼 갔다. 결국 대중으로부터 소외 받고 말았다.

광주와 전남은 ‘운림산방’과 ‘연진회’를 중심으로 남종문인화 산실이자 보루다. 최근 수묵화가 작품 활동이 점차 둔해지고 각 미술대학에서도 수묵화 전공 입학생이 줄고 있는 상황이다.

수묵화 인구가 고령화와 함께 신진작가 배출이 급감하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어지지 못하고 그 맥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30년이 지난 오늘. 수묵화의 이런 현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책임을 질 사람도 없다.

수묵화는 젊은 미술인들에게 미래를 기대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시대적 요청에 응하기라도 하듯 밝고 희망적 메시지가 청년작가들에게서 발견되고 있어 다행이다.

다양한 첨단매체에서 전통적인 재료에 이르기까지 수묵의 정신과 양식의 재해석ㆍ계승으로 수묵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현 조선대 미술대학 겸임교수ㆍ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ㆍ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2회)ㆍ뉴욕 얼터네티브 미술관 파견ㆍ 뉴욕 록펠러우 재단(ACC) 기금 수상

설박 주요 경력

ㆍ설 박(본명:박설)

ㆍ1984년 나주생

ㆍ2007년 전남대 미술학과 졸업

ㆍ개인전 9회(광주ㆍ나주ㆍ서울) 2017 전남 국제수묵화프레비엔날레(목포), 호남의 현역작가들(전북도립미술관)

ㆍ2016 광주비엔날레-제8대 기후대(광주비엔날레), 수묵미학(한원미술관, 서울), 대구 청년미술프로잭트(대구 엑스포), 2015 광주시립미술관 북경 창작센터 발표전(북경) 외 다수

ㆍ작품 소장처 : 광주시립미술관, 영은미술관(경기도), 금호갤러리(광주), 국립현대미술은행(서울), 화봉책박물관(서울) 외 북경, 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