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프란치스코 교황 VS 문익환 목사 용서와 화해의 정신 평화ㆍ통일 기여할 것 통일 분위기 고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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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한반도에 평화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엔 평화정책을 굳건히 펼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이 크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죠. 2017년 9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문재인 대통령의 가톨릭 신앙이 외교에 영향을 미쳤는가(Has Moon Jae-In’s Catholicism Influenced His Diplomacy?)”라는 제목의 매우 흥미 있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 글을 보면 북한과 화해는 문 대통령의 특징적 정책 중 하나로 문 대통령의 접근방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접근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집권 2주만에 로마 교황청에 특사를 파견해서 한반도 화해를 위한 교황청의 지지를 호소했다고 밝히며 교황청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남북화해 조성의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사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프란치스코 :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의 국민여러분 안녕하세요.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어 하느님의 영광이고 화해와 평화가 꼭 성공하길 기도하겠습니다. 한국을 방문한지 벌써 4년이 되어가는군요. 그때 평화미사에서 했던 제 강론을 기억하는지요. “베드로가 주님께 묻습니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1-22)”. 이 말씀은 화해와 평화에 관한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냅니다. 한국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런 정직한 기도를 올린 덕분에 이제 한반도는 60년 넘게 지속되어 온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화해 일치 평화라는 하느님의 은혜가 하나의 민족과 삶과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변화임을 여러분께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바티칸에서 한국주교회 의장인 김희중 주교와 한국특사단을 2차례 면담했으며 문 대통령의 화해와 평화정책에 함께합니다.

필자 : 교황께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직접 중재하거나 나서기도 하십니까. 한반도 대화국면이 교착되면 지원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프란치스코 : 2016년 콜롬비아를 순방하며 철저한 용서의 실천, 복수에 반대하고 하나가 되는 것 등 기독교 핵심사상으로 정부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간 평화 협정을 이루도록 도왔지요. 내전으로 50년간 22만이 사망했던 비극의 나라였습니다. “콜롬비아가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핵심인 그리스도교 가치와 인간 기본권이라는 빛으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에도 교황청에서 평화적 대면접촉방식으로 18개월간 교착상태에 있었던 미국과 쿠바의 협상 대표를 로마로 불러들여 외교관계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세계 어느 곳이던지 그리스도의 평화가 필요한 곳에 중재와 지원을 하는 것이 교황청의 사명 아닐까요?

문익환 : 나는 “귀중한 생명을 짓누르는 온갖 이념, 종교, 권력, 제도, 관습, 법칙, 규칙을 온몸으로 거절하는 생명절규의 신학이 필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저 갈릴리 예수가 전해준 복음의 본질이고, 성서의 핵이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명신학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실천하고 있다고 봐요. 미국과 멕시코사이에 장벽을 막아 이민을 막거나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대놓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고 경고를 주어 견제한 교황의 태도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북한에 가 김일성주석을 만났듯 혹여 교황이 언제든 한반도 평화가 교착되었을 때 화해의 물꼬를 터 주는데 역할을 해 주길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 과찬의 말씀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호세아와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요. 그리스도를 대신해 독재의 핍박과 탄압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도 평화, 통일을 부활시킨 성자이십니다. 1989년 한반도 통일의 물꼬를 트시겠다고 실정법을 넘어 북한에 건너가 북한지도자를 만나 평화선언을 한 것은 그리스도의 참 용기였습니다.

필자 : 올해가 늦봄 문익환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입니다. 얼마 전 평창 올림픽 때 온 김영남 위원장은 문 대통령께 “역사를 더듬어보면 문씨 집안에서 애국자를 많이 배출했다. 문익점이 붓대에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인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 문익환 목사도 같은 문 씨이냐”고 물었다지요? 지나치는 가벼운 덕담 같지만 남북간 관계개선에 대한 소망을 문익환선생님 언급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문익환목사님은 기독교와 평화통일은 신학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기에 그렇게 평생을 통일에 헌신하셨습니까?

문익환 : 나는 68년부터 구약신약성서를 번역하는 일을 하다가 72년이 돼서야 민주화문제 민족문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는데 이때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한국 신학의 주제는 남북통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오. 한국이 부딪친 가장 큰 문제는 두말할 것 없이 남북통일의 거족적 문제요, 이런 민족의 비원을 외면하고 신학이 무엇을 주제로 삼을 수 있는가. 남북통일의 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거부하는 북한과도 화해를 하는 신학을 주장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근본적인 문제에 조명을 비추고 그 빛 아래서 문제해결의 빛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오. 우리 기독교협의회는 내가 북한을 방문하기 전 88년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라는 88선언을 발표했는데 거기에 분단자체를 원죄로 보고 그것을 극복하기위한 통일이라는 신학적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89년 북한에 가서 김 주석과 선언하고 나중에 보다 진전된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선언으로 이어졌지요.

필자 : 문 목사님의 방북에 대해 좌경 맹동이고, 돌출적 행동이라고 보는 좌우익적 시각도 있는데요. 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남북한의 지도자도 다 바꿔졌고 새로운 환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남북문제의 현장에 있다면 무엇을 해 보시겠는지요?

문익환 : 이런 저런 생각 다 상관없어요. 보수건 진보건 어차피 통일하자는 건 화해하자는 거고 이해하자는 거니까. 나는 방북하기 두달 전 ‘잠꼬대’란 시에서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아니라구 그게 아니라구/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라고 썼지요. 나는 과거보다 환경이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봐요. 어둠이 지나면 날이 밝아 오듯이 한반도에 평화의 동이 터 오고 있으니 내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제 정상회담이 성공하도록 국민운동을 하고 있을듯해요. 왜냐하면 평화도 통일도 주체는 인민들이니까.

필자 : 다시 포린어페어스 글로 돌아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가톨릭이 한반도 평화를 지원하는 원칙은 무엇이고 종교의 힘이 한반도 평화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 : 용서와 화해에는 서방측의 죄악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됩니다. 무기판매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데 비판하지 않고 북한의 비핵을 강요할 순 없지요. 카톨릭은 첫째 싸드등 군비증강 반대 둘째 경제제재반대 셋째 다양한 통로를 통한 교류장려기 평화의 원칙이라고 봅니다. 종교의 영향력이요? 그리스도의 선의 의지대로 역사는 전개되겠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문재인, 김정은 남북 정상과 한반도의 형제자매들의 마음과 뜻이겠죠.

필자 :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마디씩 남기신다면요?

문익환 : 김정은 위원장, 할아버지와 나의 약속을 꼭 실현해 주길!

프란치스코 : 찬미 화해!

미투운동 ‘불평등→건강한 사회’ 진통의 과정

국민심서 5 ‘신독’의 마음

1472년 성종3년에 군수를 지냈던 황우형이란 자가 한밤중에 양반가의 부인인 반씨의 방에 들어가 강간을 하려하다가 반씨의 어머니와 종이 막아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성종은 죄질이 좋지 않다는 사헌부의 주청에 따라 황우형의 적첩을 거두고 영구히 등용하지 않았으며, 유배 3천리의 처벌을 내렸다 한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관직을 했던 자가 성폭력을 범하다 1367년에 제정된 조선시대 형법 대명률에 의해 강력히 처벌을 받는 사례다.

반면에 이런 일도 있었다. 섬에서 귀양을 살던 한 처녀가 하급관리의 성희롱에 시달리다 못해 바다에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지방의 현감은 상부에 돈을 뿌렸고, 상급기관의 장은 이를 눈감아 주었다. 비리를 척결해야 할 암행어사마저도 모른 체했다. 다산 정약용이 이 사건을 직접 보고 분노했던 사건이었다.

요새 온 나라가 미투(Me Too)운동과 더불어 사회변화가 일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항상 존재하지만 때로는 엄격한 법률에 의해 처벌되기도 하고, 권력에 의해 은폐되기도 한다. 최근 미투와 연관된 사건들을 보니 폭로되고 고소하고 처벌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그런 양면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미투를 비롯한 국민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일관된 특징이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란을 보니 빙상연맹 적폐조사, 이윤택씨 상습 성폭행 진상조사처벌, 고 장자연 사망 진실규명 등 추천순위가 많은 순서대로 게시되어 있었다. 다른 여러 청원제목들도 보니 상당수가 권력과 위계에 의한 억압, 성범죄 유형들이었다.

유형들은 달라도 미투를 비롯한 국민청원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이런 권력과 위계에 의한 사회관습과 구조를 전폭적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다. 남성과 여성, 가진자와 가난한 자, 상사와 부하, 권력자와 비권력자간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적 불평등을 혁명적으로 개조하자는 방향의 사회개혁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운동은 선진사회로 가기위해 꼭 거쳐야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목민심서 봉공(奉公) 제3조 예제(禮際)에 “상사가 명령한 것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가 되는 것이면 꿋꿋하게 굽히지 말고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다. 또 제2조 수법(守法)에 “이익에 유혹되지 않고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법을 지키는 도리다. 비록 상사가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음이 있어야 한다”고 다산 정약용은 말한다. 조선시대가 아니지만 다산의 이 말은 요즘도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돈, 권력, 성, 완력에 의한 상명하복의 질서를 완전히 바꾸는 문화혁명이 필요한 시기다. 그 과정은 어쩌면 모두가 다소 불편한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을 알아가면서 사회는 건강하게 혁신될 것이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홀로 있을 때도 항상 삼가며 조심한다는 신독(愼獨)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정신을 가다듬었으면 한다.

지역미래연구원 원장 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장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