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 뚫고 방긋…첫 봄꽃 '花들짝'

새 봄 전령사 \'복수초\' 정연권의 야생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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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순. 지리산과 구례 일원에 함박눈이 내린다. 습기 머금지 않은 눈송이가 바람에 흩날린다. 흰 눈이 내리니 추억에 젖어든다. 옛 기억을 되살려 오랫만에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눈 속에 핀 복수초 만나러 가시죠.”

야생화 시인 김인호 선생의 전화 목소리가 반갑다. 주섬주섬 따라 나서니 지리산 시인 이원규 선생 등 7명이 동행한다.

●복수초 찾으러 즐거운 동행

산에 들어서니 밟히는 눈의 촉감이 좋다. 나뭇잎을 떨군 숲은 황량해 보이고 텅 빈 숲에서는 정적만 흐른다. 실핏줄 처럼 하늘을 향해 뻗은 잔가지는 하얀 눈을 이고 있고 갈색의 낙엽은 하얀 캔버스가 됐다. 천지가 눈 세상인데 어디에 복수초가 있다는 말인고. 알 길 없지만 무작정 따라갔다. 한참 후 뭔가 보인다. 순백의 눈 속에 앙증스런 노란색 한 점을 만났다. 허리를 굽혀 살펴본다. 화선지에 황금빛 한 획 같은 가냘픈 한송이. 피지 않은 모습으로 눈 사이에 구멍을 내고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다.

꽃잎을 굳게 닫고 미동도 않은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복수초(福壽草)’다. 같이 온 일행들도 마음만 급하고 부산하다. “입김을 불어봐” “일어 났으면 날개를 펴봐” 재촉도 애원도 해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침묵의 기다림만 있을 뿐이다. 고요와 침묵이 쌓이다 흐르고, 새소리 바람소리,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침묵을 깬다. ‘고요함에서 지혜가 나온다’ 했던가.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기다려 보자 했다. 점심먹고 와서 봐도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피기 전의 모습만 눈에 담아 왔다. 혹한이 지나고 지난 주 다시 가 봤지만 꽃잎만 조금 벌어져 있을 뿐 활짝 핀 모습은 볼 수없었다. 한 달을 기다려봐도 만족할 만한 사진을 건지니 목해 상심해 있던 차에 김인호 선생이 지난해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과 함께. 감사할 따름이다.

●복ㆍ장수 상징 새 봄 전령사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복수초(福壽草)’는 미나리아재비과 다년생으로 제일 먼저 산야에 피는 새 봄 전령사다. 밝은 숲이나 양지바른 곳에 서식한다. 지구상에는 20종이 있으며 그 중 국내에 3종이 있다. 속명 ‘아도니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의 이름이다. 설 즈음에 핀다 해서 원일초(元日草), 차가운 얼음 속에서 핀다고 얼음꽃, 눈 속에서 피는 연꽃이라며 설연화(雪蓮花), 눈 주위에 동그란 구멍을 내고 핀다 해서 눈색이꽃, 꽃피는 모습이 황금잔 같다 해서 측금잔화(側金盞花)로도 불린다.

‘복수한다’는 뜻의 복수초보다 ‘수복초’라 했으면 어땠을까. 어감도 좋고 인사말로 적절했을 텐데. 오방색에서 노란색은 중앙을 뜻하며 평화의 색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황금처럼 부귀의 상징이다. 대표적인 선화후엽형으로 꽃은 20~30개의 꽃잎이 모여 7~8일간 피었다가 진다.

1월 중순 부터 한 송이씩 고개를 내밀지만 3월이 돼서야 활짝 핀다. 그래, 뭐가 그리 급하신가. 야생화 릴레이에서 항상 1등인데 빼앗길까 조바심 나는가. 1등이 그리도 중요한가. 천천히 시나브로 오셔도 되는데. 누가 꾸중하지도 않는데. 왜 그런 것인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 그러는가. 아니다. 6월께 기온이 높아지고 햇빛이 강해지면 잠자러 간다. 꽃피고 5개월 뒤 사그라지는 연유는 장마와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7개월 동안 땅속에서 기다려 왔지 않는가. 그 기나긴 기다림과 준비 덕분에 다른 꽃보다 일찍 꽃을 피워낸 뒤 혹한을 견뎌냈나 보다.

그런 사연이 있어 서둘러 피워 냈구나. 모든 꽃은 때와 조건이 맞을 때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나무가 새 잎이 나고 햇빛에 가려지기 전 자손 번식을 끝내려는 생존전략이다. 같은 공간에서 양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의 섭리다. 추위를 극복하는 황금빛 찬란한 복수초는 경배의 대상이자 아름다운 사랑의 최고점이다.

●카메라에 담으며 ‘탄성’

일행 모두가 카메라를 안고 무릎을 꿇는다. 허리를 숙인다. 엎드리고 앉아 꽃에 눈마춤 한다.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을 간직 하려고 고통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눈꽃나라에서 황금빛 한 점의 꽃송이는 뜨겁지 않고 따스하다. 그 따스함으로 주위의 눈을 녹인다. 주위보다 7~8도 높다. 눈은 서리보다 무섭지 않고, 포근하고 따스하기 때문이리라.

복수초가 어떻게 한겨울1~2월에 피어나 우아하고 고결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일까. 낙엽아래 잘 숙성된 부엽토 속에서 살고 있어서다. 낙엽이 솜처럼 덮여있고 가끔 오는 눈은 오리털처럼 따뜻하다. 땅에 바짝 엎드려 찬바람을 피한다. 뿌리에서 꽃이 바로 나오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다. 뿌리와 꽃 사이 물이나 영양분의 움직이는 거리가 짧으며 그 다음에 잎이 나온다. 세포내 수분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햇살이 비추면 꽃잎이 열리고, 햇빛이 없으면 닫아서 암술을 보호한다. 표피의 꽃잎이 흑자색으로 단단하고 햇빛에 빨리 감응한다. 꽃잎이 2중으로 돼 있어 온기를 감싼다. 꽃잎은 윤기가 있어 빨리 따뜻해진다.

●화분ㆍ화단용 조성 세심한 준비를

화분ㆍ화단용으로 좋다. 피기 전 올라오는 신비로움부터 개화 뒤 두 세달이 가장 아름답다. 일본은 화분에 재배한 복수초를 연초에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된 덕택에 원예용 개량품종이 120종이 넘는다.

산에서 채취한 야생 복수초를 바로 화단ㆍ화분에 심으면 두 세달 후 죽는다.

산은 시원하고 흙이 기름지고 중성토양이며 배수가 잘되는 경사지인데 반해 화분ㆍ화단은 그 생육여건과 다르기 때문이다. 꽃을 보고 욕심을 내 캐왔지만 크지 못하고 죽는 연유다. 옮겨 심을 땐 휴면기인 7~10월 사이에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용하는 흙으로 배수가 잘되게 배합하고, 중성토양(PH7.0)으로 맞춰야 한다. 번식은 5월에 종자를 받아 원예용 상토에 뿌리면 20일 후 발아한다. 광발아종자라서 파종 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린 뒤 저면관수 하고 신문지를 덮어 20도 내외에서 관리하면 된다.

내한성이 강한 반면 더위에는 약하다. 강한 햇빛과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는 6월께 씨앗이 맺은 후 하고현상(夏枯現象ㆍ말라지는 현상)에 들어간다.

생약명으로 전초는 복수초(福壽草)ㆍ설련(雪蓮)이고 뿌리는 측금잔화(側金盞花)라 부른다. 치마린, 치마롤, 소말린 등 강심배당체가 주요성분으로 심장 수축을 강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해준다.

노란색이 안겨주는 평화, 황금빛이 가져다주는 부귀와 더불어 무병장수의 축복으로 꽃말은’영원한 행복’이다. 서양에서 복수초 꽃말은 ‘슬픈 추억’이란다.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미소년인 아도니스를 좋아 했는데 이를 시기한 남편이 아도니스를 멧돼지로 변신시켜 사냥터에서 죽게 했기 때문이다. 이 때 흘린 피에서 나온 꽃이 복수초라 한다. 일본에서는 여신 크론이 강제 혼인을 피해 숨자 아버지가 찾아내 꽃으로 만들어 버린 게 복수초라는 전설이 있다.

훈풍이 산 넘어 불어오니 차가운 대지에 송글송글 꽃이 맺히기 시작한다. 찬란한 꽃 한송이 봉긋봉긋, 화사한 두 송이 방긋방긋. 황금빛으로 천지를 채색할 터다. 복수초를 시작으로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등 릴레이 개화가 이어진다. 복수초가 핀다는 의미는 겨울과 봄의 변곡점이요 봄꽃의 출발점이자 발화점이다. 봄을 잉태하는 자궁이고 시작이다. 한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을 이루며 면은 쌓여 찬란하고 우아한 형체로 꽃세상을 만들어 낸다.

“새봄이 왔으니 황금 잔으로 축배를 드세나” 미움과 원망, 고통과 한숨은 버리고 사랑하는 당신의 눈동자에 축배를 들자.

흰꽃은 꽃받침…진짜 꽃잎은 녹색 ‘신기하네’

봄바람 부르는 ‘변산바람꽃’

바람. 바람이었다. 바람따라 시나브로 봄이 오고 있다. 차갑고 세찬 바람은 부드럽고 상큼함 바람으로 변한다. 바람이 인다. 꽃바람이 분다. 미미하고 소소한 한 점 바람이다. 새의 깃털도 흔들지 못하는 미세한 바람은 한줄기 빛과 함께 전해온다. 어디서 불어 오는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찾아봐도 알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바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복수초와 같이 피어 순결한 하얀 꽃송이를 간직한 ‘변산바람꽃’이다. 바람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누가 지어줬을까. 바람꽃속은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에서 왔다.

‘바람의 딸’이라는 뜻으로 바람처럼 잠시 피었다 지기 때문이다. 다른 학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가는 줄기를 가졌지만 잘 꺾이지 않는 특성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이며 국내 18종이 서식한다. 이 중 제일 먼저 피는 꽃이 ‘변산바람꽃’이다. 너도바람꽃속에 속하며 1993년 선병윤(전북대 생물과학부 생물학 전공)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해 붙인 이름으로 한국 특산식물이다. 학명이 선 교수의 이름을 딴 ‘Eranthis byunsanensis B.Y. Sun’으로 등재 돼 있어 기쁘다.

복수초와 비슷한 시기에 피는 봄의 전령사다. 2월 중순 추위 속에서도 당당하게 피는 이유는 뿌리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둥근 덩이뿌리가 발달돼 있어 영양분 저장에 유리하다.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꽃잎이다. 눈에 보이는 하얀색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5~7장으로 이뤄진 꽃받침은 꽃잎처럼 보인다. 진짜 꽃은 깔때기 모양으로 끝에 노랑빛이 도는 녹색이다. 대단한 생존전략이다.

꽃이 적으니 꽃받침을 크게 보여 벌나비를 유인하려는 전략이다. 꽃은 한 포기에서 하나씩 나온다. 꽃이 진 뒤에야 잎이 나온다. 꽃잎은 퇴화돼 꿀샘으로 변했고 초장은 10㎝ 정도이며 꽃받침은 3~5㎝로 앙증스럽다. 꽃말은 ‘비밀스런 사랑’ ‘덧없는 사랑’이다. 추울 때 피고 금방 지기 때문에 보기가 쉽지 않아 이런 꽃말이 붙여졌다고 한다.

비밀스러운 사랑을 해야 하는 까닭은 종교와 문화 차이일까. 아니면 신비로움과 짜릿함 일까. 덧없는 사랑은 뭘까. 사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고 따스한 봄날의 사랑을 그립게 한다. 허공을 서성이던 찬바람은 방황을 끝내고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어 간다. 봄이 오고 있다. 꽃바람이 불어 일렁이다 천지로 퍼져나간다. 상큼한 꽃바람은 ‘변산바람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경남 과기대 겸임교수
한국야생화 사회적협동조합 본부장
전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소장

정연권의 야생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