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이상국가 '작은 나라 적은 국민(小國寡民)'은 지방자치 아니겠나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 씨알 함석헌과 노자사상을 말하다 노자 BC 571~BC 471년 추정ㆍ고대 중국의 사상가 함석헌 1901~1989년ㆍ대한민국 현대사상가, 민족지도자,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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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백성들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데, 어찌 죽이는 것으로 그들을 두려워하게 할 수 있겠는가? 노자 74장의 제혹(制惑)에 나오는 말을 보며 ‘1987년’이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전두환 독재자는 광주시민을 학살했고, 국민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살았지요. 그러나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에 분노한 국민들이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결국 6월항쟁으로 전두환 독재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1973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형벌과 인간양심’이란 주제의 강연때 노자 74장의 상유사살자살(常有司殺者殺)을 언급했다고 들었습니다.

씨알 함석헌 그러했지. 그럭한데 그걸 어찌 알았을꼬? 그때 내가 이렇게 이야한거야요. 참 정치가는 백성들로 하여금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일깨워 가야 해요. 그런데 거꾸로 정치한다는 자들 중에 씨알인 민중으로 하여금 죽음을 가지고 겁먹게 하는 자들이 있어. 역사는 곧 하늘은 이런 자를 용서하지 않는거요. 상유(常有) 사(司) 살자살(殺者 殺), 곧 그 죽어야 할 자를 죽이는 이가 계신다오.

필자 결과적으로 1979년 하늘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시켜 박정희를 죽일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까? 씨알의 소리 박선균 편집장은 함 선생님께서 어느날 ‘내가 그(박정희)의 끝을 보기 쉽지…’라고 했다며 소름끼치게 예측했다고 전하더군요. 선생님께서는 노장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셨는데 왜 노자에 그렇게 심취하셨는지요?

씨알 그대 역시 노자를 열공하던데 잘못된 세상에 대한 절망을 채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나는 노자를 날마다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네. 일제시대에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를 많이 읽었어.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지.

마찬가지로 이 몇 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요. 그럭하고 노자 공부를 하다보면 이 시대의 든 병 고칠 것 거기서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요즘 시대의 현실과는 너무 맞지 않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저마다 노자를 찾는 거 보면 신기하지 허허허.

필자 노자의 말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면서 맞는 것도 같습니다. 노자 80장에 소국과민(小國寡民)이 나옵니다. 노자가 바라는 이상국가죠. 서로 얼굴과 이름을 알고 살 수 있는 작은 나라. 여기에는 수레를 타고 멀리갈 일도 없고, 군대가 있어도 전쟁할 일이 없어요. 이런 공동체국가라야 학식이 중요하지 않고,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이라는 의식주 여건이 좋고, 그래서 문화와 풍속이 좋은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겁니다.

그러나 노자시대 이후 역사는 대국중심으로 나아갔습니다. 도시는 커지고 인구는 늘어나 소국과민은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 되었죠. 그런데 대국 대도시 대자본 이런 것들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나요? 아닙니다. 인간소외가 그럴수록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 소국과민사회가 더 절실하다고 역으로 생각해 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시민공동체 운동 그리고 지방자치는 소국과민 사회를 제대로 이루는 과정 아닐까요?

씨알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노장말대로, 무위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고 봐요. 그 이상은 소국과민이고. 다시 말해서, 나라는 조그맣고, 백성은 적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현대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요. 나는 그전부터 대국주의가 세상을 망친다고 봤어요. 그런 뜻에서 현대에는 국가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방자치론으로 응용한 건 재치있는 해석이야. 그렇다면 무위로 정치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것이 현실 가능한 것인가?

필자 노자 57장은 정도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奇)로서 용병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천하를 취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가? 규제가 많으면, 백성이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이기(利器, 좋은 물건이나 재화)가 많아지면, 나라는 더욱 혼란해지고, 백성들이 기교를 많이 부리면, 괴상한 물건들이 많이 생기고, 법령이 더욱 자세하고 까다로워지면, 도적이 거꾸로 많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인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백성이 스스로 한다, 욕심없이 고요하면 백성이 스스로 바르게 된다고 합니다. 자유방임주의인가요? 아니라고 봅니다. 노자의 정치는 공맹의 인위적인 정치, 법가의 법에 의한 규제정치가 한계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내용이 먼저고 형식이 나중인 것처럼 무위의 자연스런 정치가 우선해야 인민이 편한 것이니 성인은 어쩔 수 없이 하는, 부득이(不得已)하게 하는 정치가 현명한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궁금해서 한 가지 묻고 싶은데요, 선생님은 노자와 공자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씨알 노자가 공자보다 뒤의 사람이다, 노자는 실제로 없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런데 노자라는 인물은 존재했던 인물인 것 같고 공자님보다 한 50년, 적어도 한 30년은 앞서 난 이가 아닌가 그렇게 추산이 되는데 그거는 분명한게 없어요.

두 분은 아주 어려운 시대에서 살았는데 그 전 시대가 평화롭던 주나라였는데 공자는 주나라라는 문명국가를 모델로 삼아 부패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극복하려했지. 아주 실천적인 지식과 실천도덕을 전파했어요. 노자는 공자가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 좇는다고 시원찮게 봤지.

사기(史記)에는 동주의 뤄양에서 두 분이 만난 것으로 나왔는데, 예(禮)에 대해 묻는 공자에게 노자가 공자를 환영하면서도 ‘그대의 교만한 기상과 넘치는 욕심, 얼굴과 모양새를 꾸미는 일, 갈피는 못 잡는 어지러운 뜻일랑 버리시오’라고 아프게 지적했다고 해.

그런데 노자를 만나고 난 공자는 제자들에게 ‘내가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뭐랄까? 그는 용과 같았다…’고 했어. 혹자는 그걸 가지고 공자가 노자를 용으로 높이 칭송했다는 설도 있고 정 반대로 노자가 마치 허망한 것만 찾는 사람으로 혹평했다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여요.

필자 공자철학이 실천 윤리학이라면 노자철학은 다소 형이상학적입니다. 이런 이유로 도덕경을 남기고 푸른 소를 타고 현실세계에서 사라져 버린 노자의 도(道)사상은 나중에 장자로 이어지며 더욱 심오하게 발전되다 불교철학과 혼합되며 도교화 되면서 현실정치의 주류철학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노자사상이 철학적 깊이가 커서 오늘날 서구에서도 관심이 크고 우리나라에서도 노자 매니아들이 상당하다지요. 선생님께선 노자사상을 통해 평화운동사상을 세우셨는데 마지막으로 노자의 사상을 요약해 주신다면요?

씨알 노자 사상이라면 도덕경 1장에 다 있어요. 그리고 80장을 다 들어보아도 그 소리가 다 그 소리여요. 여기서 집어먹어도 짜고 저기서 집어 먹어도 짜지. 그런데 깊이 있는 사상이라 같은 말인데 읽을수록 맛이 있어요. 재미있잖아요.

노자의 도는 끊임없이 비우고, 아래로 흐르고, 부드러운 것이 강함을 이기고, 겸손하며 싸우지 않는 그리고 자기 것을 비워 남을 사랑하고 함께 나누는 도예요. 이 천지의 도는 이로울 뿐 해로움이 없고, 이 성인의 도는 억지로 하지 않고 다툼이 없다. 이것이 노자사상이야요.

오늘날 다툼과 전쟁을 극복할 생명과 평화의 노자사상을 세워야할때야. 또 그대의 생각처럼 자치와 공동체의 사상으로 노자사상을 실천도 해야겠지.

서지현 검사의 수오지심… 시비지심도 잃어버린 대법관들

국민심서 ③공인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최근 서지현 검사가 8년 전에 자신에게 일어난 성추행사실을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잘 나가는 권력층의 검사가 이런 사실을 고백한다는 것이 우선은 자신에게 수치스럽고 그로인해 위계적인 검찰조직문화로 보아 해직이나 추방을 당할 수도 있으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검사의 행동은 수치심을 극복한 진정한 용기다. 폭로 후 수많은 국민들이 격려를 보내고, 미투(나도 역시) 미퍼스트(내가 먼저) 운동이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성추행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나 개인적으로 쉬쉬하거나 집단적 압박으로 폭로하지 못하고 덮어버려 결국 피해 당사자들만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일이다.

비슷한 시기 박근혜 청와대의 사찰사실 언론보도에 대해 대법관 13명이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에 대한 청와대 압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블랙리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3권분립헌법을 가진 대한민국 사법부가 청와대의 사찰을 당하는 국정농단을 당했는데도 반성하고 혁신을 각오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만 했다.

맹자는 우리 인간에게는 자기의 옳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않음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있다고 했다. ‘수오지심’을 간직하고 따르면 성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지만 반대로 따르지 않으면 금수 같은 존재가 된다고 했다. ‘예의염치(禮義廉恥)’는 과거 나라를 받치는 네가지 기둥 같은 것이었다. 부끄러운 일이 있는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염치가 없고 결국 시비를 분간하지 못해 국가대사를 망친다.

서지현 검사의 수오지심의 용기가 예의를 세우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다면 13명 대법관들의 시비지심도 잃고 부끄러움을 덮는 비겁과 몰염치는 국민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일반인들도 그렇게 살아야 하거니와 공인의 삶을 사는 사람은 무엇보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내 부끄러운 일이나 남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고백하거나 폭로하여 시비를 가리고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국민들은 밀양화재사건을 두고 죽은 분들 앞에서 정쟁이나 벌이는 정치인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지난 정권의 적폐지도자들을 보면서 고달프다. 그런 정치인과 지도자들을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이라고 한다.

성호 이익(李瀷)은 ‘관자’ 목민편의 예의염치론을 들며 ‘예가 끊어지면 기울어지고 의가 끊어지면 위태하며 염이 끊어지면 엎어지고 치가 끊어지면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기울어짐은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움도 편하게 만들 수 있고 엎어진 것도 일으킬 수 있지만 멸망한 것은 회복시킬 수 없다’고 했다.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말해준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지역미래연구원 원장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