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넘어갈 무렵의 성찰… 올해는 '적폐청산'

김영집의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담론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 10년을 되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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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들이 매년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다. 사자성어는 시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람들의 대화나 강의, 글 등에서 주로 활용된다. 사자성어로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예전에 서당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공자왈 맹자왈’강의를 한 적 있는데 어르신들이 사자성어 뜻을 물어보며 많이 가르쳐 달라고 주문한 적 있다. 그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천애인(敬天愛人ㆍ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ㆍ큰 길에는 문이 없다)’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즐겨 쓴 사자성어를 설명해 주니 즐거워 했다. 단순히 사자성어가 아니라 그 성어의 원래 이야기와 그것을 썼던 사람들의 당시 배경 이야기를 해 주니 이것처럼 재미있는 한자 공부는 없었던 것 같다.

매년 초 정부 수장들이나 대기업 회장들도 사자성어를 통해 그 해 국정ㆍ회사 운영 방향을 제시한다.

지난해 금융위원장은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응용해 ‘상유십이(尙有十二ㆍ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다)’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말을 쓴 적 있다. 지난 2016년 금호그룹은 ‘견위수명(見危授命ㆍ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을 내걸었는데 워크아웃을 세 번이나 당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이번주 고전담론은 지난 10년간 대학 교수들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더듬어 보며 시대를 극복하려는 지혜를 살펴본다.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낸다(顯)’는 뜻으로 새정부 적폐청산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내년엔 파사현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내년 역시 적폐청산개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사현정은 원래 불교 삼론종의 근본 교의 중 하나로 ‘삼론현의(三論玄義)’에 나온 말이다. 기원전 176년 중국 한나라 한서(漢書)인 ‘동중서전(董仲敍傳)’에 나오는 말이다. 불교에선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으로 송나라 때 임제종 승려인 대혜스님이 당시 승려들이 지나치게 형식화 돼 공안(公案ㆍ불경화두)에만 빠지자 목판경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린 일화가 있다. 동중서전에는 유학자 동중서가 임금인 한무제에게 올린 원광원년거현량대책(元光元年擧賢良對策)이란 글에서 당시 유행하던 도교를 폐하고 유교를 세우라고 건의하면서 파사현정을 논했다.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노나라 애공이 참된 군주의 자세에 대해 묻자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뒤집기도 합니다(군자주야 서인자수야 부수소이재주 역소이복주ㆍ君者舟也 庶人者水也 夫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라고 답한다.

이 철학은 후에 맹자의 민본사상의 기초가 됐다. 조선개국혁명을 이룬 정도전의 민본개혁 사상의 뿌리가 됐다. 교수들은 이미 박근혜 정권에 중대한 경고를 날렸지만 박 정권이 국민의 뜻을 계속 거슬러가자 국민들이 촛불항쟁으로 박 정권을 탄핵해 군주민수가 실현됐다.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말이다. ‘천하무도(天下無道)’는 논어 계씨편(季氏篇)에 나온 말로 둘을 합친 말이다. 당시 정부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비롯해 2015년 다양한 사건사고에 제대로 된 대응을 못했던 점을 비판해 선정했다.

율곡 이이는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군주의 유형을 셋으로 분류했다. 폭군은 ‘욕심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에 빠져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아 충언을 물리치면서 자기만 성스러운 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 혼군은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현명한 자 대신 간사 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 용군은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라고 썼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은 이 세 요소를 다 갖춘 듯 하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이 해에는 세월호 참사, 정윤회 사건, 대선 댓글파동 등이 이어졌다. 모든 거짓이 사실로 둔갑하고 언론과 학자들은 곡학하세로 진실을 가렸다. 이런 시대에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나왔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이다. 필자도 젊은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돼 재판을 받으며 최후진술을 남겼다. “왜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을 공산주의자요 북한 동조자로 모느냐”며 지록위마라고 일갈한 바 있다.

진(秦)나라때 환관 조고(趙高)가 부소왕을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내세워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어느 날 황제 앞에서 사슴을 보고 좋은 말이라 하니 호해가 뭔 소리냐며 정색하자 조고가 중신들에게 저것이 사슴이냐 말이냐고 물으니 모두 두려워 말이라고 답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박근혜 정권 1년째 경제 살리겠다는 공약은 다 버리고 정책이나 인사를 제 맘대로 뒤집기를 일삼았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이를 도행역시(倒行逆施)라 했다. 사기(史記) 오자서열전에 나온 말로 ‘어떠한 일을 거꾸로 행하고 본 뜻에 거슬러 시행한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오자서는 그의 아버지와 형을 초평왕에게 처형 당하고 이웃나라로 탈출해 힘을 키워 나갔다. 나중에 초나라를 함락하고 원수를 갚고자 초평왕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채찍으로 300번을 내리쳤다. 이에 친구가 잔인하지 않냐고 꾸짖자 오자서는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일모도원 日暮途遠) ‘ ‘도리에 어긋난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도행역시ㆍ倒行逆施)’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은 청렴결백 했지만 간신들의 모함으로 관직에서 쫓겨났다. 어느 날 강가를 걷는데 한 늙은 어부가 그를 알아보고 왜 그리 초췌하냐고 묻자,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다(擧世皆濁 我獨法),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고 답했다는 얘기를 ‘어부사(漁父辭)’에 썼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 세대간 계층간 불신이 날로 커지고 온 세상이 탁해졌다. 거기다 바른 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들이 정치참여로 몰려다니고 있었으니 굴원같은 한탄이 터져 나왔겠다.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

이명박 정권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강행 통과시켰다. 대통령 측근 비리가 터지는데도 책임지지 않았다. 불도저식 스타일로 각종 정책과 사건을 처리하면서 독단과 독재를 거듭하며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았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춘추시대 범씨가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한 백성이 범씨 집안의 종을 훔치려 했으나 종이 너무 커서 쪼개려고 망치로 종을 깼다. 그런데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혹시나 다른 사람이 올까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았다는 일화다.

지금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 천문학적 국가예산 낭비와 야당과 반대지식인 사찰, 국정원 개입 등에 대해 일말의 반성과 책임도 지지 않으며 귀를 막고 버티고 있다. 주희(朱熹)는 ‘엄이도종’을 말하며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안된다고 오래전 지적한 바 있다.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

‘머리는 감추었는데 꼬리는 드러나 있다’는 뜻의 ‘장두노미(藏頭露尾)’다. 천안함 침몰, 민간인 불법사찰, 영포 논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 검찰의 편파 수사,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에 대해 정부는 진실을 감추려는 모습만을 보였다.

이 사자성어는 원래 중국 원나라 문인 왕엽(王曄)이 지은 ‘도화녀’라는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 진실을 밝히지 않고 꼭꼭 숨겨두려 하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는 뜻이다.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

율곡 이이는 동호문답(東湖問答)중 ‘간신과 충신을 가리어 등용해야 한다’는 문답에서 ‘굽은 길을 다 헤아릴 수 없으나(방기곡경ㆍ旁岐曲逕) 그 요점은 모두 임금의 이목을 가리고 자신의 이득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간사함을 구별하는 데는 이치를 궁리함 보다 나은 게 없고 현인을 알아보는 데는 공정한 마음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것이 ‘궁리공심(窮理公心ㆍ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권이나 명심해서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명박 정권의 세종시 수정, 미디어법 개정, 4대강 사업 등 옳은 길이 아닌 굽은 길로 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학자들의 경고인 셈인데 정권은 말을 듣지 않았다. 군자가 아닌 소인의 길이었다.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과실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충고받기를 싫어함을 일컫는다. 이명박 정권이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고 마이동풍(馬耳東風)식 통치만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지적이다. 이 말은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쓴 통서(通書)에 나온 말로 주돈이는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감싸 안아 숨기면서 의원을 기피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호질기의 같은 독재적 태도로 인해 지금도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지난 10년간 교수들이 발표한 10개의 사자성어 의미를 해석해 봤다. 돌이켜보니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의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권력자들 마음대로 통치했던 시대의 국정 혼란상에 대한 비판들이 사자성어에 오롯이 담겨있음을 알 수있다. 다소 어려운 한자성어들이지만 자주 사용된 말이기도 하다.

이제 그런 혼용무도한 세상을 군주민수의 힘으로 물리치고 파사현정으로 나가자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제 지난 10년간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의 적폐들이 청산되고 사회 각 부분이 혁신ㆍ개혁돼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과연 성공할 것인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잘못을 뜯어 고치고 바른 것을 찾는 것은 정부, 언론, 기업 모두 동참해야 가능하다. 강고한 기득권 체제는 언제나 스스로의 적폐를 버리지 않으니 결국 중심은 국민이 잡고 가야 하지 않을까. 파사현정의 주체는 촛불을 들었던 국민이 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을 터다.

지역미래연구원 원장 前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장 김영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