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알쓸신잡]을 기다리는 까닭

\'알쓸\' 인기 묘수는 여행, 친구, 음식, 학습 등 \'휘게\'문화에 기반 대구경북에 \'소울 스테이\' 붐, 성당ㆍ수도원서 재충전 일부는 숙소로 내 줘 日 나가사키 순교+문화+음식 결합 종교관광과 유사, 남도는 \'알쓸문화\' 최적지 종교와 문화, 인심, 맛…구슬이 서말인데

12

무릎을 친다. 역시 나영석PD 답다. 시대 흐름을 읽는 예각의 촉수에 그저 감탄한다. ‘알쓸신잡’, 별 쓸데는 없는데,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왜 우리는 다섯 사내의 수다에 빠져들까. 알쓸신잡의 대박에는 4가지 코드가 숨어 있다. 여행, 음식, 친구, 학습이다. 친구 대신 동호인, 학습을 교양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섯 ‘친구’들은 경주, 강릉, 보성으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음식’을 즐기고, 한 자리에 모여 ‘학습’을 나눈다. 여행지의 역사, 문학, 음식, 삶, 과학, 음악이 메뉴 들이다. 과학도 정재승이 늘 지적 충격을 준다. 유시민의 예리한 사회과학적 시선과 김영하의 은근한 문화 감수성이 동의를 이끈다. 황교익은 포근한 미소에 버무린 미각의 세계를, 유희열은 음악으로 이들을 변주한다. 알쓸신잡을 보노라면, “나도 맘 맞는 이들과 저렇게 여행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알쓸신잡의 문화코드가 바로 휘게(Hygge)다. 덴마크 말로 ‘안락함’ ‘아늑함’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총칭하는 제3세대 아이콘. 우리 사회는 웰빙을 거쳐 힐링의 시대를 통과 중이다. 제1세대 웰빙은 건강으로 유기농, 채식 붐을 일으켰다. 제2세대 힐링은 육체 건강 보다는 영혼의 치유였다. 숲, 와인, 걷기, 트레깅이 대표 태그들이다. 휘게는 웰빙과 힐링문화를 통합한 삶의 양식이다. 어느 소중한 날,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나누는 가족, 세월을 함께 산 벗들과 보내는 눈 내리는 산골의 밤, 소소하지만 2~3가지 요리를 즐기는 오찬. 느리고 소박한 삶의 풍경들이다. 경쟁과 연봉, 명함이 결코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은 행복이 휘게 문화이다. 우리 조상들은 휘게를 담박(淡泊)이라 했다. 묽을 담에 머무를 박, 담담하고 소박하다는 뜻 일게다.

요즘 대구ㆍ경북에서 ‘소울 스테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불교의 템플 스테이를 빗댄 것이다. 소울 스테이는 성당과 수도원에서 수도자 체험, 영성 훈련, 자연체험, 내적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신자에게는 영성 강화를, 비신자들은 치유와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100년 역사의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이 운영하는 ‘왜관 피정의 집’ 프로그램을 보면 비신자의 경우, 수도원에서 머물면서 근처 문학관을 방문한다. 또 전문 작가로 부터 문화강의를 들으며 삶을 성찰한다. 울릉도 천부 성당은 아예 여행자에게 성당을 숙소로 내어 준다. 번잡한 프로그램 보다 그냥 조용히 쉴 공간을 제공한다. 친구끼리 한적한 성당에서 소소한 ‘알쓸신잡’을 즐긴다.

이런 풍경은 일본 나가사키의 ‘종교 관광’을 연상시킨다. 나가사키는 200년 순교의 역사가 점철된 ‘로마의 땅’이다. 막부의 종교탄압을 피해 섬으로 숨어든 기리스탄(일본 기독교 신자)들은 텃밭을 일구고, 작은 성당을 세웠다. 종교 관광객들은 나가사키의 성당을 방문하고, 인근의 문학관, 미술관, 향토전시관에서 문화를 향유한다. 카스테라, 짬뽕도 즐긴다. 나가사키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소토메는 ‘소울 스테이’의 성지에 다름 아니다. 인구래야 3,000명도 안된 오지에서 추기경이 2명이나 배출됐다. 산허리에 선 하얀 성당들은 푸른 바다와 곁들여 그냥 그림엽서다. 그곳에 소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 문학관과 문학비가 있다.

人間がこんなに哀しいのに 主よ 海があまり碧いのです.(인간은 이리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파랗습니다)

이 문학비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소토메 바다를 그저 하염없이 쳐다 볼 밖에….

알쓸신잡 문화코드의 최적지는 바로 남도다. 광주ㆍ전남에는 ‘소울 스테이’와 ‘전라도 맛’이 있다. 여기에 곰삭은 묵은지 같은 인심도 살아 있다. 광주와 전남 서부권에는 선교사 묘역, 펭귄마을(광주 양림동)-순교자성당,곰탕(나주) -4대 종교성지, 굴비정식(영광)-공생원, 근대건축거리(목포)-흑산성당과 홍어(신안)가 있다. 흑산 바다를 품은 야트막한 주황색 지붕의 흑산성당을 잊을 수 없다. 사리 공소의 소박함은 또 어떤가.

곡성-순천-여수-고흥 소록도로 이어지는 전남 동부선도 외면할 수 없다. 정해박해의 순교(곡성)와 개신교의 역사(순천ㆍ여수), 마가렛 마리안느 수녀(고흥ㆍ실은 간호사)의 삶이 스며있다. 고흥 외나로도를 적시는 붉은 노을을 본 적이 있는가.

새로운 행복문화 휘게의 시대다. 소울 스테이, 남도의 맛이 진정 지역자산이다. 구슬이 넘치고 넘쳐 서말인데, 꿰는 이가 없으니. ㅠㅠ

이건상 기획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