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조국의 역사를 생각한다

발해, 윤동주는 중국 동북공정으로 항일사는 건국절, 국정교과서로 지우고 줄이면 우리 역사는 무엇이 남는가 만주에는 지켜야 할 우리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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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촌은 참말로 고왔다. 낮은 구릉 아래 기와집들이 서로 기대고 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햇살은 저만치인데, 엄마 맘은 급한가 보다. 언덕에 구릉을 넘어 이어진 땅에는 황금 벼 물결이다.

끝도 없는 옥수수 밭을 본적이 있는가. 광활, 이제야 그 말뜻을 보았다. 누런 벼와 차진 옥수수가 서로 부대끼며 천리를 가는 듯하다. 하긴 대련에서 연길까지 2100㎞(시속 300㎞ 고속철 7시간)에서 본 것은 옥수수뿐 이었으니…. 작은 산조차 없었다.

윤동주는 명동 촌에서 낳고(1917년) 자랐다. 길림성 용정 시에서 서남쪽으로 15㎞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동주는 여기서 평생의 벗 송몽규, 문익환과 조국을 직시했다. 몽규는 조국을 되찾으러 낙양군관학교에, 동주는 가냘픈 조국의 아픔을 노래했다. 익환은 평생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희망했다.

이곳에 윤동주 생가가 보존돼 있다. 너른 마당에 5칸짜리 기와집이다. 근데,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란다. 화강암에 한글과 중문으로 우악스럽게도 써놓았다.

조선족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중국 국적을 부여받은 한민족 계열의 소수민족이다. 중국 동북 3성과 연변자치주에 200만 명이 산다. 1910~30년대 만주에 거주한 사람들과는 애시당초 다르다. 1909년 청ㆍ일 간도협약에 ‘도문강 이북의 간도지역 내 한국민 거주를 승인한다’고 돼 있다. 간도 거주 한국민은 청의 보호(통제)를 받지만, 그나라 백성은 아니었다.

윤동주는 간도에 거주한 한국민이지, 중국 국적 조선족은 결코 아니다. ‘중국 거주 한국민 윤동주 시인 생가’로 바로잡아야 한다.

흑룡강성 영안현 상경용천부는 발해의 수도다. 경복궁과 비교도 안되는 드넓은 궁궐터와 6.3m 높이의 장대한 석등이 남아 있다.

석등은 발해가 고구려 후예임을 증명한다. 탑 하단에 풍성한 연꽃 문양으로 치장하고, 탑 중간은 아무 치장 없이 배흘림 돌기둥을 그대로 올렸다. 강하고 야성적이다. 탑 상부는 새침하고 정교하다. 화순 쌍봉사 국보 57호 철감선사 탑을 보는 듯하다. 목조 건축마냥 기왓골을 새김질했다. 둔탁하나 거칠지 않다. 기교가 보이나 가볍지 않고 진중하다.

가을 만주 벌판에 치솟은 이 석등을 껴안는다. 너무 멀리 있는 우리 국보요 우리네 역사다.

발해는 하지만, 어느새 중국 역사가 돼 있었다. 상경박물관 전언(前言)은 ‘발해는 당나라 시대 말갈족이 698년 세운 지방 민족정권’이며 ‘당이 관할하던 일대 변경의 변주’라고 적었다. 우리 국사교과서는 통일신라와 발해를 묶어 남북국 시대라 하는데, 정작 발해 궁터에는 당 관할의 변경 지방정부라고 한다. 고구려, 발해, 간도…. 땅은 잃었으나, 역사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

봉오동 전적지에 섰다. 길림성 도문시 수원보호관리센터(상수도 보호구역)내 저수지 일대다. 1920년 6월, 홍범도 등 독립군연합부대는 봉오골에서 일본 정규군 150여명을 사살했다. 이는 만주에서 벌어진 독립군과 일본군의 첫 대규모 전투이자, 최초의 승리였다. ‘봉오골 반일 전적지’ 기념탑에 올라 머리를 숙였다. 독립투쟁은 외교도, 애국계몽도 아니리라. 총 한 자루에 목숨을 걸고 적에게 돌진하는 무장투쟁이리라. 봉오동, 청산리, 태항산 십자령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머리를 들어 비문을 읽었다. 아니, 이럴 수가. 항일사 대승리 기념탑을 2013년 중국 도문시 인민정부가 세웠다니…. 중앙 비석 상단에 붉은 별이 박혀 있다. 중국 혁명열사탑에서 늘 봤던 그것이다. 왜 전적비를 중국이 세웠냐고 물으면 뭐라 할까. 남ㆍ북은 봉오동 승전 후 93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다음달 국정교과서가 공개된다. 건국절 주장도 여전하다. 국정은 만주 항일사를 줄이고 건국과 산업화를 부풀릴 것이다. 학생들은 봉오동 승리를 설 배우거나 아예 건너뛸 것이다. (2016년10월 쓴 칼럼입니다. 박근혜 탄핵과 파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으로 국정교과서는 폐기 됐습니다. 역사를 손대는 자 망합니다.)

발해, 윤동주는 중국 동북공정으로, 항일사는 건국절, 국정교과서로 지우고 줄이면 우리 역사는 무엇이 남는가. 홍범도 장군 봉오동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이 전적비에 꽃다발을 바칠 것인가. 윤동주처럼 홍범도, 김좌진도 중국 조선족 장군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끝없는 땅, 만주에는 지켜야 할 우리 역사가 있다. ‘광야에서’라도 불러 볼거나.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중국 지린 성에서

이건상 기획취재본부장[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