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노동절에 생각하는 지식인의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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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박재항>노동절에 생각하는 지식인의 게으름
박재항 이화여대 겸임교수
  • 입력 : 2024. 05.01(수) 18:17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홍세화 씨 영결식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박재항 교수
홍세화 선생이 타계했다. 선생을 어떤 인물로 규정해야 할까? 그의 부고 기사를 보면 진보 정당 운동가, 베스트셀러 작가, 서민들을 위한 장발장은행의 대표, 국제 시사 잡지의 편집인 등의 맡았던 직책과 눈에 보이는 성과에 따른 백과사전적 정의가 많다. 한 꺼풀 더 들어가서는 사상과 행동에 바탕한 ‘소박한 자유인’이나 ‘진보적 지식인’으로 더욱 크게 그를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매체들도 있었다. 한국 최고 학부를 나왔고, ‘똘레랑스’란 개념을 한국에 전파하고, 진보적인 철학과 정치 이론을 펼쳐온 그에게는 자유인이나 지식인으로 불린 학계나 정치계에 몸담았던 여느 이들과 다른 무엇이 있었다.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현장에서 맨몸으로 뛴 경험이 소박하면서도 진보적이고 관용의 정신을 지니고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그를 세웠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투쟁의 일환으로 위장취업 등을 통해 노동 개혁에 앞장 섰던 70,80년대의 활동가와는 달랐다. 택시 운전사 시절 선생의 일화 중에 빠리를 방문한 한국인들을 승객으로 태운 이야기가 책에 실려 있다.

어느 날 선생이 모는 택시에 회사에서 출장 온 40대와 30대의 한국인 남성들 셋이 탔다. 술도 좀 마시고 뒷 자리에 앉은 이들은 큰소리로 떠들다가 홍세화 선생을 예전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출신 사람으로 생각하고는 ‘저 자식도 프랑스까지 와서 출세했네’ 식으로 깔보고, 자신들 마음대로 재단하며 천민자본주의와 인종주의의 극한을 보여준다. 정말 어느 면으로 자기가 태어난 것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데, 그걸로 다른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한국에서는 해외 경험을 가진 지식인으로 행세했다.

1980년대 빠리로 출장을 가서 택시를 탔던 이들은 이제 은퇴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 시대에 해외를 오가며 바쁘게 살았고, 이 나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렸다는 자부심을 가진 그들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도 공존한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결핍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런 지식인에게 사회적 실행력과 책임감과 포용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의 문제는 아니다. 지식인에 대한 정의와 책무를 포함한 개념이 한국과 비슷한 중국에서는 대놓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은 인사들이 꽤 있다.

“(집권여당의) 몽둥이만도 못한 학자들이 우리 대학에 수두룩하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불평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고, 사람 귀한 줄도 모른다.”

20세기 전반 중국 학계의 대표 인물이랄 수 있는 후스(胡适)가 베이징대학에재직하던 시절에 자기네 학교 교수들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이 정도에서 그치면 중국의 대표적 학자 겸 논객의 날카로움이 없다. 뭔가 송곳처럼 궤뚫는 풍자나 대상자들의 속을 후벼파는 위트가 있어야 한다. 후스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수명만길다.”

착한 사람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경우가 정말 가슴 아프며, 그럴 때 못 된 인간들의 명이 질긴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과학적으로는 편견이라고 하지만, 감정적으로 어쩔 수 없다. 거기에 미국에서 유학했어도 중국 고전을 섭렵한 학자답게 이런 비유까지 덧붙인다. 고만고만한 지식인입네 하는 이들 사이에서 걸출한 인물을 바라는 고뇌와 체념이 읽혀진다.

“저팔계 열이 손오공 하나만 못하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중국 공산당 주석으로 자신이 시도 쓰고, 논문도 저술했으며 도서관 사서도 하며 지식인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마오쩌둥도 나중에 비슷한 말을 중국의 지식인 양 하는 이들을 두고 했다.

“거지근성강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남 핑계대기 좋아하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온갖 잘난 척은 다하고 무책임하다.”

지식인이나 학자, 나름 애국자라는 정치인들을 두고 한 독설 섞인 평가가 중국의 내노라 하는 권력자에게서 꽤 나온다. 중국 국민당 총통이었던 쟝제스의 오른팔 역할을 한 천리푸는 그런 지식인 흉내를 내는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구린곳을 숨기려는 사람들은 궁지에 처할 때마다 단결을 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지도자 대열에 낄 자격이 없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아버지께 들러 그날 외출을 하시지 않냐고 여쭈었더니 계획이 없으시다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친구들이 요즘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라고 한다. 허허허.”

나중에 대학생 아들까지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 친구분들의 시류를 탔던 농담 얘기가나왔다. 아들이 “누가 한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몇몇 사람들이 비슷한 말을 했지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리승만이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한 게 가장 유명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알던 리승만의 이력과 한 말의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뭉치라고 하면서 내친 이들이 많지 않았냐고 한다. 아버지께서 보충 설명을 해주셨다.

“리승만은자기 밑으로 뭉치는 것만 인정을 했지.”

지식인들이 권력자의 밑으로 뭉쳐야 하는 이유를 기술했고, 저항하는 이들을 가려내는 선별법을 만들 때는 다투는 듯 부지런을 떨었다. 옳은 길인가 고민하는 이들을 보고 게으르다고 하면서 배척했다. 말을 많이 하고, 열심히 생각하는 척 했지만 그들의 머리 속은 텅 비어 있었다. ‘What Women Want’라는 영화에서 여자들의 속마음이 귀에 들리는 초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이 수다로 유명한 두 여인에게 가까이 갔는데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나 싶어 더욱 가까이 간 주인공이 ‘아, 저 여성들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라고 깨닫는 부분은 영화의 최고로 웃긴 장면으로 꼽힌다. 이런 생각 없이 떠들어대는 말로 바쁜 것 보다는 차라리 게으른 게 낫다.



똑똑하지 않게 영리하지 않게

게을러 빠져서 욕을 얻어먹으며

약속은 제끼고 양심도 가슴앓이도 버리고

구경꾼처럼 자유롭게 넝마보다 편하게

아내도 버리고 전세집도 책도 쓰다만 원고도

몽땅 버리고 게으르게 코를 가슴에 처박고

오뉴월 그늘에 누운 개보다 게으르게

잠을 자고 싶다.

그렇게 게으른 풍경의 하나가 되고 싶다

(김영현 ‘게으름을 노래함’ 중)



이 시를 쓸 즈음 김영현 작가는 문단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그만큼 바쁜 사람이었다. 작품 활동도 소설과 시를 넘나들고, 민주투쟁의 핵심으로 몸으로 뛰며 조직화하는 청년작가였다. 그래서 시가 의외가 아니라 더욱 솔직하게 느껴진다. 게으름에 대한 그런 갈망이 어쩌면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바쁜 신자유주의 지식인으로 접어들 때마다 울리는경고음 구실을 했을 것이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도, 여러 직책을 맡으면서도 홍세화 선생은 바쁘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대답을 가다듬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는 선비놀이라고 하는 지식인을 자처하며 행동부터 앞세우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은 게으르게 생각하는 게,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노동이기도 하다. 게으른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바쁜 티를 내지 않은 지식인 홍세화 선생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