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노동절 그리고 김민기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서석대>노동절 그리고 김민기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입력 : 2024. 05.01(수) 18:17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친구’, ‘아침이슬’, ‘상록수’...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로 민중을 위로했던 천재 뮤지션 김민기의 자작곡들이다. 1970년대 유신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그의 노래는 해방가였고 애국가였다.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민주화 투사가 됐다. 용기를 내 독재에 항거했고 모두 하나가 됐다. 민주화와 노동 운동은 김민기의 숙명이 됐다. 요즘 SBS에서 방영중인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가 인기다. 김민기와 학전에 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라는 입소문을 타고 2주 연속 동시간대 지상파 1위 자리를 수성했다고 한다. 김민기는 1991년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學田)을 열었다. 음반 계약금으로 문을 열고 저작권료와 집을 담보로 극장을 운영했다. 김광석, 유재하, 강산에, 동물원, 안치환 등이 학전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이라는 전설을 쓴 곳도 학전이다.

지난달 28일 방송에선 노동자와 함께 한 김민기의 삶이 그려졌다. 유신정권은 학생들이 ‘아침이슬’과 ‘친구’를 불렀다는 이유로 그를 반란의 주동자로 몰았다. 모든 노래는 금지곡이 됐다. 음악활동이 막혀버린 김민기는 군 제대후 인천의 피혁공장에 행정직으로 위장 취업해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같이 둘러앉아 기타를 쳤고, 야학을 통해 배움을 전했다. 여기에서 노동자 부부의 합동 결혼식을 위해 만든 축가가 ‘상록수’다. 처참한 노동현장을 목격한 그는 노래로 참혹한 노동자들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카세트테이프로 녹음된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다. 한국 최초의 비합법 앨범은 노동자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고,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은 이 노래에서 시작된게 아닌가 싶다. YH 무역 공장 노동자들의 농성과 강제 진압은 야당 총재 김영삼의 제명, 야당 해산, 부마항쟁, 결국 유신의 종말로 이어졌다. 태풍을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은 공장 노동자들의 ‘울림’이었다.

1978년 김민기는 야학운동(들불야학)을 하던 전남대생 고 박기순의 영결식에 참석해 반주도 없이 ‘상록수’를 불렀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축가가 장송곡으로 바뀌어 민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일은 노동의 의미를 돌아보는 노동절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노동의 존엄과 가치는 인정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