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
지난달 28일 방송에선 노동자와 함께 한 김민기의 삶이 그려졌다. 유신정권은 학생들이 ‘아침이슬’과 ‘친구’를 불렀다는 이유로 그를 반란의 주동자로 몰았다. 모든 노래는 금지곡이 됐다. 음악활동이 막혀버린 김민기는 군 제대후 인천의 피혁공장에 행정직으로 위장 취업해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같이 둘러앉아 기타를 쳤고, 야학을 통해 배움을 전했다. 여기에서 노동자 부부의 합동 결혼식을 위해 만든 축가가 ‘상록수’다. 처참한 노동현장을 목격한 그는 노래로 참혹한 노동자들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카세트테이프로 녹음된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다. 한국 최초의 비합법 앨범은 노동자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고,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은 이 노래에서 시작된게 아닌가 싶다. YH 무역 공장 노동자들의 농성과 강제 진압은 야당 총재 김영삼의 제명, 야당 해산, 부마항쟁, 결국 유신의 종말로 이어졌다. 태풍을 일으킨 나비의 날갯짓은 공장 노동자들의 ‘울림’이었다.
1978년 김민기는 야학운동(들불야학)을 하던 전남대생 고 박기순의 영결식에 참석해 반주도 없이 ‘상록수’를 불렀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축가가 장송곡으로 바뀌어 민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일은 노동의 의미를 돌아보는 노동절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노동의 존엄과 가치는 인정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