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휘두르는 도깨비가 한국 난타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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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방망이 휘두르는 도깨비가 한국 난타의 원형?
불교설화서 도깨비에 해당하는
쿠베라ㆍ야차ㆍ나찰의 캐릭터
인도 고유의 정령사상과
자연현상 의인화하면서 생겨나
  • 입력 : 2017. 10.13(금) 00:00
강진군 작천면 퇴동마을의 사문안 석조상.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 바위라고 부른다. 필자 제공
강진 퇴동 마을의 도깨비 바위

도깨비 형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강진군 작천면 사문안 퇴동 마을 석상으로 가본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석상을 도깨비바위라 한다. 전면의 나상(裸像), 전면의 상하 3구상, 왼쪽의 면상, 오른쪽의 면상 등 13개의 상이 있다.

주목할 것은 전면의 도깨비 상이다. 높이가 64cm 안쪽 폭이 10cm, 어깨 폭이 13cm다.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달렸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도깨비 상이다. 앞이마와 양쪽 볼이 툭 튀어나왔다. 눈이 사나우면서도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부각되었다. 상의는 입지 않았다. 앞가슴 뼈가 U자 형으로 불거져 나왔다. 오른손에는 방망이를 들고 있다. 이것을 도깨비 방망이라고 한다.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있다. 가운데 왼쪽 다리가 약하게 표현되고 이를 구부려 오른쪽 다리에 붙인 것을 보라. 도깨비 왼쪽 다리가 약하다는 통념으로 연결해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도깨비와 씨름을 할 때 왼발을 걸어 넘어뜨려야 이길 수 있다는 흔하디흔한 그 얘기 말이다. 어찌되었든 석상의 수많은 귀면은 액을 막아주고 벽사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도깨비는 형상이 없다더니, 설화 속의 도깨비가 이 돌 속에 들어와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이 석상의 이미지가 도깨비 민담으로 변해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왔던 것일까? 점점 흥미롭다. 이 형상들의 기원 혹은 토대는 어디로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을까?



불교설화에 나타나는 도깨비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이 불교설화와 관련된 도깨비들의 이미지다. 절간의 대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이나 신장상들이 검토 대상이다. 박기용이 수행한 몇 가지 연구를 인용한다.

야차와 나찰은 쿠베라(kubera)와 함께 B.C 15~B.C 5세기에 걸쳐 베다 경전과 서사시 마하바르따, 라마야나 등에 수용되어 베다 시대, 브라흐만 시대, 힌두 시대를 거쳐 불교시대의 신격으로 수용되었다. 쿠베라, 야차, 나찰의 캐릭터 중 사람을 부자가 되게 하는 능력, 자유자재로 이동하고 변신하며, 선신과 악신의 기능을 가진 남성으로서 방망이를 가졌다는 점이 불교에서 그대로 승계되었다.

오호라 여기에 도깨비 방망이가 등장하는구나. 설화의 풍토화 법칙에 따라 부의 수호신이 불법 수호의 신으로 바뀌고 복식과 형상이 불교화 되었으며 거처가 숲, 궁궐에서 사천왕천으로 변했다. 그래서 불교설화 도깨비의 기원은 인도 경전에 나타나는 쿠베라, 야차, 나찰이라고 주장한다. 형상면에서는 야차, 도깨비불, 소머리 나찰, 사람 형상 등으로 나타나는 점이 동일하지만 인도 불교설화에서는 주로 야차와 나찰 모습으로, 중국 불교설화에서는 주로 변신한 사람의 모습,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도의 불교의 설화에서 도깨비가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불교설화에서 도깨비에 해당하는 쿠베라, 야차와 나찰의 캐릭터는 인도 고유의 정령사상과 자연현상을 의인화하면서 생겨났다. 간단히 말하면 불교 이전의 여러 시대들 속에서 퇴동 마을 도깨비상의 기원을 추적해볼 수 있다.



도깨비 방망이는 어디서 왔을까?

퇴동마을의 도깨비가 들고 있는 방망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도깨비 방망이는 도깨비의 어원설화와 관련이 있다. 고어사전에서는 도깨비를 독갑이, 돗가비 등으로 설명한다. 여우도깨비(狐魅)로 표현된다. '만언사답'에는 "두억신 되시려나 독갑이 되시려나"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의 독갑은 독갑의 불(鬼火)이라고 한다. 박은용의 연구를 인용한다.

삼국유사 등에 등장하는 신라의 두두리(豆豆里, 豆豆乙), 목랑(木郞)은 오늘날 도깨비와 같은 말이고 그 어원은 절굿공이(杵)에서 비롯되었다. 두두리/두두을은 원시 절구공이를 말한다. 두드리(打)는 동작 즉 기능을 중시해 붙인 이름이다. 승려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錫杖)의 몽골어 둘두이(duldui)와 유사하다. 지팡이나 작대기 혹은 빗자루를 연상하게 해준다. 만주어 둘두리(dulduri)도 그 고어형이 불교와 더불어 수입되어 신비력이 더해졌다. 목랑(木郞)은 '망치' 혹은 '메'라는 고어 무라(mula)의 한자표기인 동시에 절굿공이의 남성상징이다. 나무로 된 남정(男丁)이란 뜻도 부가하여 그와 같이 기표하였다.

따라서 도깨비의 어원은 돗구(杵, 방망이)+아비(男, 丁, 夫)로서 절구공이를 은유하여 생긴 말이다. 양곡을 생산하는 능력을 가진 절굿공이(杵)를 숭배하는 원시신앙이 파생되어 도깨비 신앙으로 변하고 이것의 일부는 도깨비 방방이의 재물생산능력으로 발전하였다. 절굿공이가 남성상징이기 때문에 도깨비는 대부분 장정의 일꾼 차림으로 나타난다. 여자나 노인네(老翁) 혹은 소유아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강 그림이 그려지 않는가? 물론 도깨비의 어원이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진강의 어원 설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면상 이 부분은 따로 소개하기로 한다.



치우의 형상으로 이어진 힌두의 키르티무카

치우를 도깨비로 인식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다. 학자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많은 일반인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다. 치우는 귀면(鬼面)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용면(龍面)이라 하는 것은 치우와 관련시켜 이미지 격상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귀면이라는 호칭을 일본사람들이 붙였다 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어쨌든 귀면 혹은 용면은 중국 청동기 도철문과 매우 흡사하거나 같다. 앞서 보았듯이 불교와 친연성이 있다. 남겨진 숙제다. 이 문양은 고대의 건축부재, 조각품, 마구, 장신구,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범주에 확산되어 있다.

논의들을 종합해봤을 때 내 생각에는 치우를 도깨비의 형상으로 인식하게 된 원인이 일본의 오니에 있다. 일본인들이 오니의 조상을 신라의 귀면와로 설정해두고 있고 신라의 귀면와가 도철문 혹은 치우상과 닮아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귀면은 또 어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바로 키르티무카다. 인도신화에 나오는 머리만 있는 괴물이다.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의 힌두사원은 물론 일반 건축물을 장식하는 데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얼굴에는 뿔과 큰 이빨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련 전설이 있다. 악마의 왕이 부하인 라후를 시바신에게 보냈다. 마하데비 즉 시바의 아내 파르바티를 달라고 했다. 시바가 크게 분노하자 키르티무카가 탄생했다. 분노의 얼굴인 셈이다. 그러자 라후는 황급히 시바신의 자비를 구했다. 시바신은 라후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키르티무카에게 라후를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분노 속에서 생성된 키르키무카는 무엇인가를 파괴해야만 했다. 시바신은 자신의 팔다리를 먹으라고 했다. 키르티무카는 자신의 팔다리와 몸통을 먹어치웠다. 결국 키르티무카 머리만 남게 되었다.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른바 귀면와 형식의 이미지가 여기서 나왔다. 불교 이전의 힌두와 특히 남방문화와의 관계는 내가 추적하는 주요 테마다. 기회가 주어지면 또 소개하겠다.



무한한 상상의 보물창고, 도깨비의 이미지들

지금 청소년들에게 도깨비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어떤 형상을 떠올릴까? 아마도 드라마 도깨비 속의 주인공들과 귀신 형상의 모습들 아닐까? 보아하니 디지털 게임이나 드라마, 영화, 만화, 출판 콘텐츠들 속에서는 도깨비들이 아직 죽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창조를 거듭해가고 있다.

도깨비들이 전통적인 마을에서 디지털화면 속으로 주거지를 바꾼 모양이다. 예컨대 드라마 도깨비에서 볼 수 있듯이 도깨비라는 용어 혹은 개념은 완벽하게 탈바꿈되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설화로 전승되던 도깨비들만이 자취를 감추었을 뿐이다. 도깨비들을 더 이상 민담 속의 제한된 이미지들로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기서 보게 된다. 학자들의 구태의연한 논리들 속에 가둬놔서도 안 된다. 아니 이미 도깨비는 각양각색의 이미지로 변신해 재창조를 거듭하고 있다.

강은해는 일찍이 도깨비는 두드림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난타와 도깨비스톰과 한국 두드림의 문화론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절구공이, 대장장이의 망치, 타작 마당에서 일어나는 두드림은 파괴와 창조의 양가적 가치를 함께 수반한다. 두드리고 두들기고, 패고 갈기고 부순 다음에 새로운 모습을 갖춘 생산과 창조, 부활이 일어난다. 한국 난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도깨비의 존재론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음악적 측면에서 다양한 두드림의 전통을 새기는 일은 우리 시대 두드림의 언어, 비언어 퍼포먼스의 전통을 가꾸어 나가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라고 말이다.

전통적인 도깨비담의 도깨비들이 죽거나 사라지거나 이주해버린 데 비해 새로운 도깨비들이 출현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옛것이든 새것이든 문화는 그렇게 버무려지고 창조는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인문학 시민기자ㆍ남도민속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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