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에 입힌 색, 고려청자 밑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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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도기에 입힌 색, 고려청자 밑거름
오름가마에 유약 입혀 1000℃ 이상 온도서 생산
대규모 요장 경영능력ㆍ기술의 효율적 활용 탁월
해남ㆍ강진 등 전승… 남도청자 발전 중추적 역할
  • 입력 : 2017. 08.18(금) 00:00
영암구림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기들.
고대 옹관에서 발현된 남도 도자의 독창성은 이후 청자에서 가장 큰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나 고대부터 고려까지의 많은 시간적 간격을 메꾸어주고 그 아름다움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은 도중에 시유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옹관과 청자의 중간에는 도기에 유약을 입혀 10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고화도의 시유도기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라는 높은 수준의 신기술을 쉽게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시유도기 생산지는 영암 구림리 도기 가마터(사적 제338호)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도기 생산지 가운데 한 곳인 구림리 가마터는 신라 말에 운영된 대규모 도기 산업단지로 남도에 청자가 발생하고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구림리 도기 가마터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의 돌정고개로 불리는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월출산 남서쪽의 양지 바른 낮은 구릉으로 가마터는 동-서 700~800m에 달하는 구릉 전체에 20여기가 넓게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영산강 지류를 경계로 고대 옹관 고분이 밀집된 시종면과 인접하고 있어 오랜 세월 기억되고 전승되었던 옹관 제작의 전통이 도기 제작으로 다시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이곳은 독창적 옹관 제작이 성행하였던 영산강을 끼고 있는 고대 문화의 핵심 지역으로 도자 생산의 역사 문화적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어 이를 쉽게 전승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구림리가 영암과 전라도,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 전통문화 마을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구림리 도기 가마는 암반이 풍화된 석비레층(푸석푸석한 돌이 많이 섞인 흙으로 된 지층)에 굴을 파고 들어간 지하식의 한 칸(單室) 오름 가마(登窯)로 불을 때는 작업 공간인 가마 앞부분과 땔감이 타는 연소실, 그릇을 놓는 번조실(燔造室),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다. 가마 바닥은 앞쪽의 경우 10° 내외의 완만한 경사를 갖추고 넓게 만들었으나 뒤로 갈수록 20~25°로 경사가 급해지고 너비가 좁아져 가마 끝 부분에 수직의 굴뚝을 설치하였다. 연소실은 타원형이며 연소실 앞에 깬 돌로 만든 배수로가 있어 특징이다. 이러한 가마 구조는 강진과 해남을 비롯한 전남지방에 분포하는 초기청자 가마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청자 생산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즉, 벽돌을 이용하고 불턱이 있는 길이 40m 내외의 대규모 중국식 청자 가마에 비해 진흙을 이용하고 불턱이 없으며 길이 20m 내외의 소규모 고려식 청자 가마와 유사하여 구림리 가마의 구조가 대부분 고려 초기청자 가마에 그대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림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기들은 삼국시대 고분 출토품이나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 도기와는 다른 유형으로 목이 짧고 좁으며 몸이 긴 사각편병(四角扁甁)과 휴대하기 편리한 높이 5~6㎝의 줄무늬가 있는 작은 편구형병(偏求形甁)이 있고 고구려 도기에서 보이는 원반형(圓盤形) 도기 등도 있다. 또한, 편병과 작은 병 등 운반에 편리한 형태가 등장하고 있으며, 큰 항아리와 사각병, 작은 단지가 조합을 이루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이외에도 대접과 주전자, 단지, 바래기, 시루, 솥 등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일상 생활용기들로 회색 경질의 환원 번조의 도기가 대부분이며 약간의 회색 연질 도기가 있다. 구림리 도기의 만드는 방법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기 제작방식으로 그릇의 밑판을 만들고 그 위에 타래 또는 흙 판을 쌓아 올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작은 병의 경우 물레를 사용하여 흙덩어리에서 직접 뽑아 올리고 있어 발전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청자 제작에 계승되고 있어 도기에서 자기로의 기술 진입을 보여 주는 중요한 요소로 그 의미가 크다.

한편, 영암 구림리 도기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릇에 유약을 입힌 녹갈색과 황갈색의 시유도기가 제작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도기에서 자기로 발전해 가는 기술 발전의 단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특징으로 그 기술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약은 그릇에 수분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 위생적이며, 그릇의 강도를 높여 형태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그릇의 겉면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시각적 효과를 가져와 미적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그리고 유약을 만들 수 있는 기술뿐만 아니라 그릇의 바탕 흙이 좋아야 하며, 이를 고온에서 녹일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시유도기의 생산은 높은 기술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척도인 것이다.

이와 같은 가마의 구조와 그릇의 성형 방법, 시유 등의 특징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대규모 요장을 관리하고 운영하였던 경영능력과 새로운 기술의 효율적 활용방법, 이를 판매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 운영이 가능하였다. 이와 같은 경영능력 등의 요소는 대규모 고려청자 요장을 운영하였던 강진과 해남의 청자 생산체제에도 전승되어 남도 청자 발전의 핵심적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구림리 시유도기는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 저장과 운반 등의 용도로 계속 사용되었던 시유도기의 모태가 되었으며,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남도의 또 다른 도자 매력인 옹기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가마터가 위치한 구림리는 일찍부터 중요한 뱃길로 이용된 상대포가 있어 이를 통해 대량 생산된 구림리 도기가 완도 청해진 등 주변 지역에 널리 유통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즉, 영암 구림리 가마터는 신라말 상대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사회 경제와 도기의 생산 유통, 청자의 발생과 성격 등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유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구림리 가마터에는 그 동안 발굴 조사된 가마 가운데 2기를 보호각을 세워 보존 공개하고 있으며, 주변에 영암도기박물관을 건립하여 전시와 연구, 개발, 교육, 재현, 전승 등에 활용하고 문화유산의 효율적 보존 관리와 체계적 활용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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