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부산 이전 속도…광양항 ‘거점항만’ 입지 흔들
정부 ‘투포트’ 육성정책 사실상 파기
‘북극항로’ 대비 부산항 집중 육성
광양항 투자·지원 부족…기능 위축
물동량 감소 광양시 재정여건 악화
“수심 확보·대형 선박 유치 지원을”
2025년 07월 08일(화) 18:16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 광양시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속도를 내면서 과거 ‘투포트(Two-Port)’ 정책으로 부산항과 함께 집중 육성됐던 ‘광양항’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새 정부가 해수부 부산 이전과 함께 부산항을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한 동북아시아 핵심 거점 항만으로 육성하기로 하면서 광양항의 항만 기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항만 정책과 예산이 부산항에 집중될 경우 광양항은 기술 실증 중심의 보조항만으로만 머무르게 돼 사실상 거점항만에서 배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8일 지역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해수부 부산 이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임대라도 활용해 조속히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정기획위원회는 해수부 부산 이전을 ‘국민체감 신속 추진과제’로 선정, 연내 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놓고 지역사회에서는 항만 정책의 지역 편중 가능성을 우려하며, 광양항에 대해 균형발전 차원의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광양항은 국내 제2의 컨테이너 항만이자 최근 이차전지 원료 수입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투자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 과거 부산항과 함께 국내 대표항만으로 불렸던 광양항은 정부의 ‘투포트’ 정책을 통해 부흥했으나, 갈수록 정책 지원이 축소되면서 컨테이너 물동량이 인천항에 따라잡히며 3위로 내려앉는 등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국내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부산항의 최근 5년간 물동량은 △2020년 2182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2021년 2270만TEU △2022년 2207만TEU △2023년 2315만TEU △2024년 2440만TEU로 2022년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감소를 제외하면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광양항을 제치고 국내 2위 항만으로 올라선 인천항 또한 △2020년 327만TEU △2021년 335만TEU △2022년 319만TEU △2023년 346만TEU △2024년 355만TEU로 부산항과 동일하게 2022년 소폭 감소 후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광양항은 △2020년 215만TEU △2021년 212만TEU △2022년 186만TEU △2023년 186만TEU △2024년 201만TEU로 감소와 정체, 소폭 반등을 지속하고 있다.

광양항 물동량 감소로 광양시 재정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광양시가 발표한 ‘최근 5년간 재정여건 변화’에 따르면 2024년 광양시의 세입 예산은 총 5130억원으로 지난 2023년 대비 600억원 가량 급감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8월 광양항에 오는 2029년까지 7464억원을 투자해 컨테이너 부두 4선석 규모의 기반 시설 구축 및 완전 자동화 항만하역 장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추진 중인 자동화 사업의 경우 첨단 장비 기술에 한정된 실증사업으로, 기존의 인프라 확충이나 물동량 확대와는 거리가 있어 광양항을 거점 전략 항만으로 강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광양항은 포스코퓨처엠·포스코리튬솔루션 등 이차전지 핵심 기업들의 물류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심 15m 제한으로 인해 대형 컨테이너선 기항 확보가 어렵고, 하역 효율도 저하되는 등 경쟁력 약화도 여전하다.

해수부 이전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항만 정책 결정과 예산 대부분이 부산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만큼 타 지역 항만은 행정 네트워크로부터 배제되는 구조적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재명 정부의 첫 해수부 장관 후보자로 부산 출신의 전재수 국회의원이 지명된 것 또한 우려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미 해양항만수산 정책이 부산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해당 지역출신 장관 임명이 지역 편중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지역 정가에서는 해수부 이전이 지역간 대립 구도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면서도 광양항 등 지역 항만에 대한 실질적인 보완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권향엽 의원(순천·광양·곡성·구례을)은 “해수부의 부산 이전 자체가 지역 간 대립 구도로 비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광주·전남에는 해수부 이전을 대신한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같은 상징적 조치와 함께 광양항의 수심 확보, 스마트 물류 테스트베드 확대, 대형 선박 대응 역량 강화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반대하지는 않으나, 광양항만 재도약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황금~율촌간 연결도로 개설, 광양항 준설 등 실질적인 보완 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미 부산에 해양진흥공사와 해수부 산하 기관 등이 위치한 만큼 해수부 이전으로 인해 행정 기능 통합 등 효율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면서 “형평성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기능 분산형 이전이나 복수 거점 운영 등 실무 기능의 권역별 분산을 고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광양항의 스마트 물류 테스트베드 확대 시 단순한 기능 확장이 아닌 자율운영 선박 실증, AI 기반 항만 운영 등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지현 기자 jihyun.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