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함께한 세월 실감케 하는 친구 같은 영화
마이클 모리스 감독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2025년 04월 28일(월) 09:56 |
![]() 마이클 모리스 감독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
![]() 마이클 모리스 감독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포스터 |
우리나라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문학사상)를 번역 출판한 것은 한참 후인 2015년 일이다. 헬렌 필딩은 자신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상상력을 더해 브리짓 존스 이야기를 연이어 탄생시켰다. ‘Bridget Jones: The Edge of Reason’(1999), ‘Bridget Jones: Mad aboutthe Boy’(2013), ‘Bridget Jones’s Baby: The Diaries’(2016)까지. 영화는 4탄과 3탄을 바꿔서 촬영하다 보니,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에 이어 ‘브리짓 존스의 일기:뉴 챕터’(2025)의 시나리오 작업도 그녀가 맡아 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제목만 들어도 배우 르네 젤위거를 떠올리게 한다. TV에 명절이나 연휴에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그 가운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가 심심찮게 등장해서다.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되는 로코 장르라 스토리는 잊어버리는데, 역할을 위해 살을 찌운 배우 르네의 좌충우돌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사진이 출력되듯 몇몇 신이 여전히 해마 속에 남아 있다.
브리짓 존스(배우 르네 젤위거)는 4년 전 사랑하는 남편 마크 다시(배우 콜린 퍼스)를 잃고 어린 아들과 딸을 둔 50대 싱글맘이다. 아이들에게 아침을 겨우 해 먹이고 잠옷도 안 갈아입은 채 학교까지 라이딩을 하면, 학교 앞에서 선생님과 학부모를 만나 참견도 주고 받고 자모회 일을 떠맡기도 하는 일상이다. 남편의 4주기 추모회에 모인 많은 친구들이 브리짓의 싱글 상태를 걱정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걱정의 도가 지나쳐 압박감이 엄습해들자, 자신의 의사와 달리 데이팅 앱에 가입까지 하는 브리짓. 다른 지인들과 다르게 닥터 롤링스(배우 에마 톰슨)는 일을 권유한다. 그녀의 권유에 따라 방송국 PD직에 복직하면서, 운좋게 능력 있는 베이비시터를 구해 폭탄 맞은 듯한 집안 꼴이 안정적으로 바뀌고, 그보다 더 운 좋게 29세의 연하남 록스터(배우 레오 우달)와 자만추를 이루어 로맨스에 빠져들면서 오지랖 넓던 친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유쾌함도 만끽한다. 그야말로 자신을 온전히 되찾은 듯 그녀 인생의 뉴 챕터가 펼쳐지려는 참이다. 그러나 자신과 록스터와의 나이차보다 아들 메이블과 록스터와의 나이차가 적은 이 관계는 어딘지 불안하다.
브리짓을 깨우치는 것은 학예회 때 메이블이 부른 노래에도 있었다. 메이블은 아빠가 밤마다 침대 곁에서 불러주었던 노래를 부른다. 브리짓은 이렇게 독백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겨내는 건 잊는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떠난 사람을 늘 기억하면서 남은 이들끼리 잘 살아간다는 것이 맞을지도 몰라요.” 많은 사람에게 텍사스 출신 미국 배우가 영국 여성 브리짓 존스와 동일시되는 연유는 무엇일까. (르네 본인도, 작가 헬렌도 부정하지 않은 ‘천생 브리짓 존스’라는 평가가 있다.) 브리짓이 나무에 오르다 더 이상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며 쩔쩔매는 신이 있다. 와중에도 도와주겠다는 남자들을 “재미있게 나무 타는 중”이라며 거절하는 우스꽝스러운 자존심(?)의 면모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속마음이 다 들여다보이는 코믹한 귀여움이 밝은 에너지로 치환되는 사랑스러움, 이것이 ‘브리짓=르네’의 매력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관객과 배우들이 함께 나이를 먹는다. 등장 인물들은 변함이 없는데, 그들의 얼굴에서 세월을 실감한다. ‘휴 그랜트가 저렇게 늙었어! 에마 톰슨은 잘 못 알아보겠네!’를 연신 놀라며 보게 되는 영화다. 어쩌면 20~30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의 필자를 보며 똑같이 말할지도…. 그러고보면, 함께 세월을 보내는 친구의 얼굴을 거울 삼아 내 얼굴을 읽어내듯 소중한 친구 같은 영화인가 싶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