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삶이 담긴 지역의 ‘말’
곽지혜 취재2부 기자
2025년 03월 19일(수) 18:17 |
![]() 곽지혜 기자 |
새삼 뜻 모르던 제주 방언 한 마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하다-핸-하멘-하잰으로 이어지는 시제 활용을 내가 틀릴 때마다 인선은 웃음 띤 얼굴로 교정해 주었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바람이 센 곳이라 그렇대. 어미들이 이렇게 짧은 게. 바람소리가 말끝을 끊어가버리니까.”라며 제주어의 통렬한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의 언어에는 지역의 삶이 담겨있다. 숨 소리도 내지 말고 입 다물라는 ‘속솜허라’에는 4·3의 아픔이,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이 당긴다는 뜻의 ‘게미지다’에는 전라도의 풍성한 먹거리가, ‘그렇게 바쁘면 어제 나오지 그랬냐’는 충청도의 돌려 말하기에는 예로부터 산과 평야가 어우러져 풍족했던 곡창지대의 느긋함이 녹아있다.
방언은 우리 삶과 말의 변천사를 나타내는 정서적, 학술적 역사물이자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과 문화가 담겨 있는 무형문화재와도 다름없지만, 점차 사용하는 이들이 줄어들며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 현실이다. 2010년 12월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의 언어’ 5단계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으며 국립국어원의 조사 결과에(2020 국민의 언어 의식조사) 따르면 40.6%의 국민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 표준어와 사투리를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표준어를 사용하고 사투리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도 26.9%를 차지했다.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드라마 한 편으로 수천년 숙성돼 온 지역의 삶과 언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70년 세월을 관통하며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는 드라마처럼, 지역의 말도 오래도록 우리 삶에 위로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