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하정호>공유재는 자산이 아닌 관계이다
하정호 광주시교육청 공무원
2025년 03월 16일(일) 18:11 |
![]() 하정호 광주시교육청 공무원 |
하지만 일을 않고 쉬고 있었던 활동가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자리를 찾아 떠나간 뒤 혼자 남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 혼자서 계속 아이들을 돌볼 수는 없어서 마을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북적이는 마당집도 아이들에게는 좁았고, 마침 마을에는 버려진 농협 창고 공간이 있었기에 그곳을 아이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돈은 없었죠. 그래서 문화재단의 창의예술학교 공모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농협창고를 아이들의 놀이터와 주민 카페로 만드는 것 자체를 창의예술학교 프로그램으로 하는 제안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청소하는 것을 첫 수업으로 시작했습니다. 동네 고물상에 가서 공간을 꾸밀 재료들을 실어오고, 동네 이곳저곳에서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 예술창고의 벽면을 꾸미는 것이 우리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주민들과도 주민 카페 만드는 수업(?)을 했습니다. 버리는 팔레트를 얻어서 거친 나무 표면을 갈아내 탁자를 만드는 것이 주된 수업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공간이 갖추어지니, 업종변경을 하면서 식당 한 켠에 놓여 있던 트램플린이 필요 없게 되었다며 예술창고에 기증해 주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예술창고로 달려와 트램플린을 먼저 타겠다고 서로 싸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예술창고의 운영비는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면서 마련했습니다. 처음 한 일은 아침부터 주민 카페에 둘러앉아서 고구마 줄기를 벗기는 일이었습니다. 오전 10시쯤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고구마 줄기를 벗기기 시작하면 점심을 먹고 나서야 일이 끝나곤 했습니다. 주말이면 불법현수막을 걷으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현수막 하나에 1000원씩 받고 주민센터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주민센터에서는 동네 공원을 청소하는 대가로 한 달에 30만원씩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돈들을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모아간 돈이었기에 쓰기가 아까웠던지 별로 쓰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돈보다 훨씬 더 많은 정을 서로 쌓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디디가 쓴 ‘커먼즈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다 그때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한디디는 공유재(commons)를 자산이나 자원으로 보는 것이 근대적인 편견이라고 비판합니다. 한디디의 생각에 커먼즈는 인간(공동체)에 의해 관리되고 이용되는 객체로서의 자원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자연과도 뒤섞여 그것의 일부로서 살았지만 “자본이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동시에 그 모두를 상품으로 만들며 확장”하면서 그런 관계가 깨어졌다고 한디디는 말합니다. 한디디가 보기에 커먼즈는 “국가와 시장 사이에 있는 작은 자율지대가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간 삶을 조직해온 방식”입니다. “공통적인 것은 누군가에게 속하거나 소유되지 않은 채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서로 다른 것들을 아우른다”고 한디디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 무엇으로서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 인간(人間)’이 공유재인가 봅니다.
우리가 가진 게 얼마 없어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자원이 적은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가마을에서는 오히려 그 제한성 때문에 부족한 자원을 서로 나누고 돕는 일이 일어나게 되면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마을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이고, 마을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마을 안의 교육역량이 성장해 간다고 한다면, 신가마을의 부족한 자원은 분명 주민들이 서로 돕게 만들었던 성장의 발판이었습니다. 자원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우리 공동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