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정연권>“농부들 입가에 웃음 머물게 하라”
정연권 색향미야생화연구소장
2025년 03월 12일(수) 18:19
정연권 색향미야생화연구소장.
농부 2년 차로서 바쁘다. 굴삭기로 평탄작업과 배수구를 정비했다. 토양상태를 분석하기 위한 시료 채취와 호밀도 파종했다. 주 작목을 친환경 쥐눈이콩으로 정했다. 자투리에 생강나무 등 약이 되는 나무와 하층에는 머위, 쑥부쟁이를 심어보자. 호박도 심어야지. 이런저런 구상에 신바람 나서 즐거운 나날이다.

콩 재배기술 교육을 받으러 갔다. 아는 사람들이 정겹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꽃 박사가 뭐하러 왔당가” 의아한 표정이다. “교육받으러 왔어요” “교육하러 온 게 아니고 받으러 왔다고?” 되물었다. “이제 농부가 되어 콩 농사를 지어 보려고 합니다” 하면서 웃었다. 아직도 나를 높게 평가해 줘 감사하다. 그래서 부담도 된다. 정말 농사를 잘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벼농사 대체 작물로 콩이 인기다. 파종과 수확 작업이 기계화됐고 보조금 영향도 있다. 벼농사 소득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구례군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새해농업인실용교육의 ‘콩반’ 교육에 95명이 참석했다. 예정 인원 50명보다 많았다. 교육에 임하는 자세에서 진지함이 보였다. 날카로운 질문에는 지난해 아쉬움을 디딤돌 삼아 잘 지어 보겠다는 결연함이 묻어 있다. 이런저런 정보를 나누는 얘기꽃이 콩 농사 대풍의 가늠자가 될 터다.

농부들은 벼 재배면적 감축 결정에 걱정을 많이 했다. 농식품부는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벼 재배면적을 8만㏊로 2024년보다 11.5% 줄인다고 한다. 전남도는 1만5831㏊로 시·도 중 제일 많다. 구례군은 236.8㏊다. 연간 쌀 생산량을 40만 톤가량 줄인다는 목표로 쌀 의무 수입물량 40만8700 톤과 비슷한 물량이다. 이는 식량 주권을 포기하려는 정책이다. 소중하고 귀한 쌀이 어찌하여 천덕꾸러기로 돼 가는지 안타깝고 분하며 답답하다.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면 대부분 콩으로 전환할 것이며 콩 생산량이 늘어나면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 농부들을 핍박하고 먹거리를 경제 논리로 적용하여 홀대하면 ‘바가지 세상’이 온다고 했다. 바가지 세상이 뭐냐고 물으니 “흉년이 들면 바가지 들고 얻어먹는 세상이 올 것인데 자꾸 농사를 줄이려 한다”고 정부 정책에 울분을 토했다. 할 말이 없다. 위무할 수도 없었다. 그저 걱정만 할 뿐이요 하늘만 멍하니 보고 있다. 하늘은 이 마음을 알아줄까나.

안정적으로 콩 농사를 짓기 위해 ‘구례지리산콩영농조합법인’에 가입했다. 고정주 이사장 중심으로 75명이 올해는 75㏊를 재배할 계획이다. 조합원당 1㏊로 3000평 정도다. 조합원들이 합심해 파종과 수확을 기계화 해 인건비를 줄인다. 검은 비닐멀칭과 잡초매트로 잡초문제를 해결한다. 파종 후 조류피해 방지책으로 그물망을 피복 하는 등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영농시스템을 구축했다 하니 든든하다. 수확 후 선별해 구례아이쿱에 납품할 수 있어 판로망이 안정적이다.

수입 콩과 우리 콩의 가격 차이는 ㎏당 2000원 정도로 우리 콩이 비싼 편이다. 친환경으로 농사짓고 GMO 종자를 사용하지 않아 안전하다. 논 콩은 밭 콩보다 맛이 좋다. 논 콩이 토실토실하고 윤기가 흐르는 것은 개화기와 결실기에 물을 댈 수 있어서다. 된장을 담그면 구수한 맛이 더하고 단맛이 난다. 구례 된장이 맛있던 이유는 논두렁 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농부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농민이 됐고 농업인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농부들은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구호뿐이다. 경제적으로도 고소득 업종이 아니다. 신체적으로 중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농부들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 가뭄과 폭우, 태풍과 이상기온, 병해충 창궐 등으로 힘들다.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다. 농사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더 달게’ 목표를 추구한다. 돈벌이를 위해서다. 빨리 수확해 시장에 출하해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면적에서 많이 생산하고 농산물이 커야 소득이 높다. 달고 맛있어야 잘 팔린다. 하지만 농산물이 유통업자들의 손에 넘어가 가격 폭등과 폭락이 심하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내가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다. 농부들은 소망은 하나다. 내가 생산한 농작물이 제대로 대접받아 제값을 받는 것이다. 안정된 소득이 보장돼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자는 의미다.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선량한 사람들은 고소득의 농업인보다 농부가 되고자 했다. 자연의 법칙과 시간에 따라 생명을 살리는 참 농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새봄이 오고 땅이 풀리니 농부들의 마음도 바빠진다. 하지만 날씨가 불규칙해 걱정이다. 올해는 큰 재앙 없이 풍년이 들고 농산물 가격이 안정돼 농부들 입가에 웃음이 머물길 소망한다. 농부들의 입가에 웃음에 머무른 정책을 추진해 주길 간곡히 제안한다. “농부들 입가에 웃음이 머물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