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해양교류’ 속 탄생한 국내 설화와 유적의 내력
436. 해남 보타산
2025년 02월 27일(목) 17:28 |
![]() 해남 보타산 도장사 위치와 산이면 청자도요지. |
![]() 서남해안 해양제사유적과 항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
‘디지털해남문화대전’에는 보타산 도장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도장사(道場寺) 이름은 1530년(중종 25)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없지만, 조선 후기 1799년(정조 23)에 펴낸 ‘범우고’와 1872년(고종 9)과 1875년(고종 12) 무렵 간행된 ‘호남읍지’에 도장사(道藏寺)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도장사는 조선 후기에 창건된 사찰로 보인다. 1949년의 지장 신중탱 현판이나 지장탱 신중탱 화기에서 ‘도장사(道場寺)’로 장(藏)자의 한자가 바뀌었다. 1980년대에는 대웅전의 오른쪽 평방 위에 ‘보타산성주사(補陀山聖住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한때 성주사(聖住寺)라고도 불렸으나, 어느 시기에 잃어버렸다고 한다. 승려 각안이 1894년 탈고한 고승의 행적을 담은 ‘동사열전(東師悅傳)’의 ‘용파선사전(龍波禪師傳)’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 용파선사가 도장사의 시왕을 도갑사(道岬寺)로 옮겨 봉안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고재철 주지가 1940년대부터 1980년 불사에 화주로 등장한다. 이후 승려 돈성이 8년간 불사를 하고 승려 법두를 거쳐 지금은 승려 도륜이 주석하고 있다. 2011년에 대웅전과 요사채, 공양간을 신축했다.” 여기 나오는 보타산성주사라는 현판과 뒷산을 보타산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주목한다. 지금은 확인되지 않지만 본래 관음 설화와 긴밀한 장소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 동의한다면 보타산의 출처는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해남 미황사 석주 설화와의 관련성도 살펴볼 수 있다. 석주 설화의 핵심은 배가 석주(石舟), 즉 돌배(石船)라는 점이다. 해안표착형(해안으로 떠밀려 온다는 뜻)이란 점, 불법(佛法)을 전하는 전법선(傳法船)이란 점도 고려 대상이다. 전법선에는 불상, 불경, 불탑 등 사찰 창건과 관련한 불교 보물이 배 안에 가득 실려있기 마련이다. 대개 돌배 이야기는 불상의 땅을 찾아 해안 포구에 도착하는 형식을 취한다. 미황사에 도착한 검은 소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전법선 외에 관음선(觀音船) 즉 관음 불상을 싣고 도착하는 배의 이야기도 영광 불갑사의 사례처럼 널리 분포돼 있다. 이러한 돌배 이야기는 중국 장강(양쯔강) 하류 항주만과 명주(明州), 주산군도에서 해상항로를 따라 한반도 서남해안에 표착하는 구성을 취한다. 송화섭의 연구를 보면 중국 절강성 보타산의 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돌배를 확인할 수 있다. 민속신앙 쪽에서 이러한 풍경은 영광 안마도 당할머니 이야기처럼 물에 떠밀려 오는 궤짝 등으로 바뀌기도 하고 무안군 사도세자당 이야기처럼 실제 역사적 인물에 대입시키기도 한다. 형태야 다르게 나타나지만 모두 해양교류의 배경 속에서 탄생하고 재구성된 설화들이고 유적들이므로 도장사도 해안표착설화와 연관해 살펴야 한다. 해남 보타산을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해양 신앙과 제사유적 조사보고서 표지. |
제사유적 해양신앙과 전남의 서남해안 연안항로
해남군 황산면 내산길에 위치한 도장사의 뒷산을 ‘호산’ 혹은 ‘보타산’이라 한다. 호산이라는 이름은 윤선도의 후학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호산정’이라는 정자를 지은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더 거슬러 오르면 중국 관음의 성지 절강성 보타도와 낙가도로 이어지는 서남해안 물길의 교류맥락이 보인다. 관련해 지난 2018년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 여행자 문순득’이라는 제목으로 본 지면에 소개한 내용이 있다. “일찍이 신라방, 신라소 등의 이름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우리도 방대한 규모의 집단 이주와 교역을 이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중국의 천주 및 양자강 하류 권역에는 신라의 이름이 많이 남아 있다. 아직 주유소도 신라, 식당도 신라, 길 이름도 신라라는 이름을 쓰는 사례가 많다. 양자강 하구의 주산군도 보타도와 락가도 사이에는 불상 전래와 관련된 신라초(新羅礁)라는 암초가 남아 있다. 신라인들의 배가 얼마나 많았으면 암초의 이름에 신라를 붙였겠는가. 당대 신라인의 이주와 교류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불교의 전래뿐만 아니라 교역의 중심에 늘 바닷길이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해남의 보타산을 상고하지 않겠는가. 지난 2019년 본 지면을 통해 소개한 해남의 망부암(亡夫巖)과 고천암 연자각시, 백방산 낙화암 이야기도 모두 유사하다. 이러한 내용을 비롯한 연안항로와 전승되는 옛날이야기 기초자료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신앙과 제사유적 조사보고서’에 수록돼 2023년 12월 출판됐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해양유산연구소 김병근, 김애경, 정태진, 유호균, 김가람 등 연구팀 외에 외부 조사연구위원 변남주와 내가 함께했다. 해남, 진도, 강진, 장흥, 고흥, 여수, 신안, 영광, 무안, 나주, 영암 등 11개 지역의 연안항로를 추적하고 관련 제사유적을 역사 및 옛이야기(민속)로 접근한 자료다. 아쉬운 것은 조사 기간이 하필 코로나19가 범람한 기간과 겹쳐서 제보자의 접촉 등 현장조사가 극도로 어려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왕의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고군분투했다는 점 부기해둔다. 이 자료는 ‘전라남도 서남해안 연안항로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의 바닷길과 제사유적을 살피기에 한계가 있다. 장차 ‘서해안 연안항로편’ 및 ‘동해안 연안항로편’ 등으로 확대해 한반도 전체 내력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