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600년 만의 결사 ‘탁노리’
이용환 논설실장
2025년 02월 27일(목) 17:03
이용환 논설실장
“풍월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머무는 곳마다 푸짐하고/도량이 큰 천지는 나를 한가하게 버려두네/아늑하게 거닐다보면 만사가 절로 잊히고/드러누워 허공을 바라보니 지친 새가 돌아오누나.” 여말선초 학자로 활동하던 탁광무(1330~1410) 선생이 광주 석곡동 인근에 정자 경렴정을 짓고 은둔했다. 당대 정몽주, 정도전, 이색 등과 교류가 깊었던 선생. 고려말, 신돈 의 전횡에 맞서다 광주로 낙향했던 그는 고려를 이끌던 몇 안되는 ‘권문세족’이었다. 광주를 뿌리로 둔 토성 광산 탁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지난 1879년 발행된 광주읍지에 ‘탁(卓), 노(盧), 이(李), 김(金), 채(蔡), 장(張), 정(鄭), 박(朴), 진(陳), 허(許), 반(潘), 성(成), 승(承)’ 등 12개의 성씨가 나온다. 광산을 본관으로 하고 광주에 오래도록 뿌리를 내린 토종 성씨들이다. 조선의 양반과 달리 고려의 지도층은 가문이 우선이었다. 특히 광산 김씨와 광산 노씨, 광산 이씨, 광산 탁씨 등은 지방을 통치하고 중앙정치를 연결하는 지역의 호족으로 자긍심이 높았다. 성씨와 본관도 개인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가문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들 토종 성씨 가운데 가장 이름을 떨친 가문은 광산 김씨다. 광산 노씨도 명문이다. ‘고려사’에 등장하는 노씨 성을 가진 인물이 8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故 노무현 대통령도 광주 토박이 ‘만’의 후손이다. 이선제와 이형원으로 대표되는 광산 이씨는 정여립의 기축옥사로 큰 화를 당했지만 근래 토반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광산 탁씨도 수많은 벼슬아치를 배출한 명문으로 이름 값을 톡톡히 했다. 언론인이면서 향토사학자인 김정호 선생은 저서 ‘광산 본관 성씨 이야기’에서 광산 탁씨를 두고 ‘고려 현종을 전후해서 광주 토반 가운데 가장 출세한 토박이 집안이 광산 탁씨’라고 썼다.

광산을 본으로 하는 탁씨와 노씨, 이씨 등 광주의 토박이 성씨들이 ‘탁·노·리’의 계승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여말선초, ‘탁·노·리’라는 명칭이 공식 문헌에 처음 등장한 지 무려 600여 년 만이다. 토성 성씨의 부침은 지역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뿌리는 광주의 뿌리와 다름 아니다. 지리로 인한 연대가 자연이라면, 혈연에 의한 연대 또한 어느 때나 존재해 온 생물학적 본능이다. 광주를 광주답게 만들고, 광주의 과거를 통해 K컬처의 뿌리를 찾겠다는 ‘탁노리’. 법고창신을 기치로 광주의 뿌리를 찾아 이를 새로운 문화로 키워 나가겠다는 ‘600년 만의 결사’가 듬직하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