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추교준>요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위험한 생각들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2025년 02월 23일(일) 17:40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내 아이와 같은 해에 태어난 하늘이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어떤 악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내 아이를 볼 때마다 하늘이의 일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하늘이를 도와주는 슈퍼맨”이라는 아빠의 말을 믿고 그 인간을 뒤따라갔을 하늘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너진다. 가슴 한가운데에 평생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부여안고 살아가야 할 하늘이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큰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정부 당국은 허겁지겁 ‘질환교원심의위원회’에 관한 법과 제도를 손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위험한’ 교사들을 때마다 솎아내어 학교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학교는 옛날부터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1995년 고(故) 김대현군이 학교폭력으로 삶을 마감한 이후, 그의 아버지가 남은 인생을 바쳐 ‘청소년폭력예방재단’(현 푸른나무재단)을 세운 뒤에야, ‘학교폭력’이라는 현상이 우리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되고 이후에 몇몇 큰 사건들을 더 겪고 난 뒤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라는 제도가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욕설, 폭행, 집단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 다양한 위험들을 행정 절차에 따라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위험들이 더 크고 많은 위험을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연락을 받은 학부모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이 교육적으로 해결되고 잘 마무리되길 바라며 결론을 차분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학폭 신고 자체를 피해야 할 ‘위험’으로 간주하고 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적 대응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2019년부터 본격화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에게 피해를 준 담임 교사도 ‘위험한’ 존재라고 판단하여 아동 학대로 신고한다.

이처럼 위험한 학부모들이 ‘민원’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이곳저곳만의 일도 아니다. 학교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 하면, 어느 몰상식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홀로 감당하던 교사가 2023년 7월 서이초의 어느 교실 구석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결단을 할 정도이다. 전국의 수많은 교사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광장으로 달려 나왔고 당시에도 정부 당국은 교권 보호 대책을 쏟아내며 ‘위험한’ 학생과 학부모를 교사로부터 분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위험한’ 교사와 폭력을 일삼는 ‘위험한’ 학생, 악성 민원을 쏟아내는 ‘위험한’ 학부모들을 일일이 솎아내면, 이제 학교는 더 이상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을까? 그래도 학교는 위험한 곳일 수밖에 없는데, 이곳은 12년 동안 각기 다른 재능과 고유성을 가진 수많은 아이들을 대학 입시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획일적인 트랙 위의 무한 경쟁으로 떠미는 곳이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친한 친구도 결국 잠재적 경쟁자이며,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밟힐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어느 시점에서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나눔이, 우정이, 연대가, 협력이, 사랑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갇힌 채 12년 동안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폭력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3년의 자료를 보면, 이 땅의 청소년들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이들은 214명이며 이는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이 글을 끄적이며, 이것도 위험하고 저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이르니 불안하고 위축되기만 한다. 아둔하고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어디에서도 희망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겠다. 당장에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한참을 어물어물 하다가 문득 이런 모습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지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아비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내어 달라고 울부짖는다.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은, 안전한 학교를 위해 마땅히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지혜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 해에 학생들이 200명씩 목숨을 끊고, 교사들이 900명씩 탈출하는 이 위험한 곳을 어떻게든 인간적인 교육이 가능한 공간으로 회복시키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며, 근본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지옥도를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