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한의 미학, 이제는 세계문화사의 보편으로 읽어내야”
434. 천경자의 ‘뱀’ 톺아읽기
2025년 02월 13일(목) 18:01 |
![]() 천경자의 초기 대표작 ‘생태’(1951) |
![]() 천경자의 대표작 ‘내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
천경자의 초기 대표작 ‘생태’는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옥희라고 호명하는 동생과는 4살 터울이었는데 사이가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언니를 따라 홍익대 미대에 입학하려던 즈음 폐렴으로 사망하고 만다.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언니 천경자를 따라 미술을 전공하려 했던 점이 마치 소설의 복선처럼 미묘하다. 동생의 죽음 후 광주로 내려오는 기차에서 환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햇빛에 꽃 비늘을 반짝거리며 날쌔게 찔레꽃 사이로 사라지는 실뱀 두 마리였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광주역 앞에 있는 뱀집을 찾아가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최광진이 쓴 평전에 보면 어렸을 때부터 뱀에 대한 악연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친구가 독사에 물려 죽기도 하고, 동경 유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흰 나리꽃 속에서 빨간 실뱀이 나와 식구들을 놀라게 하고 사라지기를 사흘이나 계속하기도 한다. 이런 악연들이 뱀에 대한 이면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연극 연출가 이원경이 광주에 내려왔을 때 천경자 집을 방문했는데 그를 보자마자 ‘우리 옥희가 죽었다’고 울부짖는다. 그런데 울면서 뱀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앉혀놓고 울면서 뱀을 그리는 모습이 황당하긴 했지만, 작품 이름을 지어준다. 이것이 대표작 ‘생태’(1951)다. 당시 33마리의 뱀을 그렸다가 자신에게 고통을 남기고 떠난 두 번째 남자가 35세 뱀띠라는 사실이 떠올라 상단에 꽃뱀 두 마리를 추가해 모두 35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배경 스토리를 통해 몇 가지 이면을 떠올릴 수 있다. 그토록 사랑하던 동생은 그림을 전공하고 싶어 미대에 입학하려던 즈음 죽고 만다.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까지 한 언니 천경자에 비한다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고흥금융조합에 취직했던 동생이었다. 화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죽은 동생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 같은 것이랄까. 동생 옥희가 죽었을 때 붉은 명주에 ‘화가 천옥희의 관’이라 쓰고 화장하고 극락강가에 뿌렸다는 증언이 도드라진다. 광주로 오는 기차에서 봤다는 두 마리 실뱀의 환영이 이 대목에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하는 작품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이다. 천경자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여인의 머리에 네 마리의 뱀이 마치 월계관처럼 배치돼 있다. 두 마리는 애무하듯 서로를 휘감고 있고 두 마리는 좌우에서 정면을 응시한다. 천경자가 특히 이 작품에 대해 지극한 애정이 있었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해설은 1977년 나이 53세에 첫 번째 딸을 낳은 1945년 즉 22세 때를 회상하며 그린 자화상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설명이다. 하지만 홍윤리가 반론을 제기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1950년 김남중과의 갈등과 배신, 혼외 임신과 낙태, 1951년 동생의 죽음까지 절박한 상황에서 그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천경자가 뱀을 구상하고 집중적으로 그린 이 시기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첫딸을 낳은 1945년 22세 때의 시기를 특정할 만한 동기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죽은 동생의 나이가 만 22세였다는 점을 주목한다. 예컨대 1951년 ‘생태’라는 제목의 뱀 그림에 이어 그린 그림이 ‘내가 죽은 뒤’이다. 육탈된 인골 위로 붉은 상사화 두 송이가 피어 있고 상단으로 나비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는 풍경이다. 동생이 죽은 후 광주도립병원에 가서 죽은 사람의 뼈를 구해왔고 이 인골을 그리며 죽은 여동생의 극락왕생을 염원했다고 한다. ‘네가 죽은 뒤’가 아니라 ‘내가 죽은 뒤’다. 홍윤리가 주목하는 것이 이 제목이다. ‘여동생과 동화된 나’라는 해석이 그래서 나왔다. 1977년 완성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의 자화상과 슬픈 전설의 주체를 짐작할 수 있다. 쌍으로 출현하는 뱀들이 동화(同化)된 이분들의 서사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화적 메커니즘, 천경자의 일생이 하나의 장편 소설이라면 곳곳에 뱀으로 은유된 복선들이 깔려있고 자화상에서 그 내력을 풀어주는 듯하다.
남도인문학팁
탁월한 보편, 천경자의 뱀
신화 세계에서는 뱀을 재생의 상징으로 다룬다. 현실 세계에서는 뱀을 욕망과 애욕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허물을 벗으니 거듭남의 상징이고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니 부활의 상징이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에덴에서 쫓겨나게 했으니 욕망의 상징이다. 뱀에 투사한 인류의 지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천경자가 뱀을 주목하고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까닭이 뭘까. 동생 천옥희와 교신한 마음일 것이다. 한강의 언설을 빌리자면, 천경자가 동생을 그토록 그리워했는데 사실은 죽은 동생이 살아있는 천경자를 도와줬다고나 할까. 작품 ‘생태’에 추가해 그린 뱀 두 마리, 기차에서의 환영, 찔레꽃 사이로 사라지는 실뱀 두 마리, 동생을 떠나보내고 그린 ‘내가 죽은 뒤’에 그려진 붉은 상사화, 이들이 쌍으로 나타난다. 대표작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에는 애무를 하는 두 마리의 뱀과 정면을 응시하는 두 마리의 뱀이 그려진다. 때때로 동생은 남자친구로 꽃으로 나비로 남편으로 혹은 연인으로 바뀌긴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꽃뱀이 상징하는 욕망과 애욕은 겉으로 드러난 형상이요 그 이면에는 재생과 부활의 본질이 있다. 동양의 오래된 신화처럼 여와와 복희가 서로 비비 꼬아 애무하는 형국이다. 화가가 되지 못했던 동생이 천경자를 통해 비로소 화가 천옥희로 거듭났음을 본다. 자화상의 뱀은 동생에게 씌워준 월계관이자 자신에게 수여한 올리브관이다. 최광진은 위의 책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운명적 슬픔을 신명나는 아름다움으로 반전시키는 한의 미학은 이제 국제적인 조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천경자의 예술세계를 ‘한의 미학’으로 풀어내고 그 세계적 조망을 전망한 것이다. 그래서다. 천경자가 가진 탁월한 보편을 말하기 위해서는 한(恨)의 작가로 묶어둘 필요 없다. 천경자가 심리적으로 얻은 특수하고 탁월한 뱀의 이미지를 세계문화사의 보편으로 읽어내는 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