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장산곶매 이야기'
최도철 미디어국장
2025년 02월 12일(수) 15:42
최도철 미디어국장
 문학의 원초적인 형태인 구비문학(口碑文學)은 ‘말로 된 문학’을 의미한다. 글로 된 기록문학과 구별되며, 다른 말로 구전문학(口傳文學)이라고도 한다.

 구비와 구전은 대체로 같은 뜻이다. 굳이 구별하자면 구전은 ‘말로 전함’을 뜻하는데 그치지만, 구비는 대대로 전하여 오는 말이라 할 수 있기에, 구전문학보다 구비문학이 더 적절한 용어다.

 구비문학은 예로부터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같은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많고 많은 구비문학 가운데 이름만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 있다.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투쟁의 횃불을 내려놓지 않았던 백발의 민주투사 백기완 선생이 민중 설화를 토속어로 풀어낸 ‘장산곶매 이야기’(우등불 1993)이다.

 맵찬 바람결에 갈기머리 휘날리며 시위 현장 맨 앞자리에서 호령했던 백기완은 투쟁 현장에서 돌아오면 어김없이 민족혼을 일깨우는 글을 썼다. 이렇게 펴낸 책들이 무려 서른 편에 달한다,

 ‘장산곶매 이야기’는 황해도 구월산 장산곶의 마을수호신인 매에 대한 구전이다. 대강은 이렇다.

 어느 날 장산곶에 집채만한 독수리가 날아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애써 키운 짐승들을 잡아가고 심지어 갓난아기까지 채 갔다.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데, 장산곶매가 날아올라 맞대하면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징과 꽹과리를 치며 매를 응원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독수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매는 사력을 다했지만 힘이 달려 피투성이가 됐다.

 그러나 매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왔다.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편 순간 가슴팍에 파고든 매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개죽지를 찍었고, 그 날카로운 부리에 날개가 꺾인 수리는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지만, 생명을 다한 매는 어느 순간 하늘로 높이 올라 멀리 사라졌고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장산곶매가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딱’하고 부리로 쪼기만 하면 샛별이 하나 생기고, ‘딱’하고 쪼기만 하면 또 샛별이 하나 생겨 길 잃은 나그네의 길잡이가 됐다고 한다.

 백 선생이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들었던 이 서사는 나중 영화패 동아리 이름으로 쓰였고,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 서막에도 인용됐다.

 작년 12월 3일, 시대착오적 망상속에 흉악한 패악질을 해댄 무리들로 하여 두 달이 넘도록 ‘징한 꼴’을 보고 있다. 그날 온 국민이, 아니 온 세계가 생중계로 폭거를 지켜보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그야말로 씨도 안 먹힐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조사와 재판이 길어지면서 날이 갈수록 ‘깝깝증’은 더해지고 울화가 치민다.

 언제나 이 땅에 음습한 어둠이 걷혀 형형한 날이 올 것인가. 백기완 선생의 서릿발같은 일갈, 그리고 민중의 이야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