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먹이 주면 과태료’ 도입 놓고 지자체 '고민'
야생생물법 개정안…100만원 부과
광주 배설물서 식중독균 안전 우려
먹이 금지 개체 수 조절 효과 ‘의문’
"조례 제정 실효성 없어” 반대 주장
동물보호단체, ‘불임먹이’ 도입 촉구
광주 배설물서 식중독균 안전 우려
먹이 금지 개체 수 조절 효과 ‘의문’
"조례 제정 실효성 없어” 반대 주장
동물보호단체, ‘불임먹이’ 도입 촉구
2025년 02월 03일(월) 18:39 |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례 제정을 놓고 지자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광주 동구의 한 거리에서 시민이 쌀을 비둘기에게 먹이로 주고 있다. 정상아 기자 |
과태료 금액이 상당한 데다 먹이 주기 금지만으로 비둘기 개체 수 조절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면서 조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야생생물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집비둘기 등 유해야생동물에 먹이를 주는 행위가 금지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지자체가 조례로 집비둘기 등 유해야생동물에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정안은 비둘기 배설물에 의한 오염 및 개체 수 포화로 인한 민원 등 관련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함에 따라 시행됐다. 비둘기 관련 민원은 2022년 2818건으로 2018년 1931건과 비교하면 약 46% 증가했다.
특히 최근 광주에서는 비둘기 분변에서 식중독균이 확인되면서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달 31일 “지난해 중점 연구과제로 추진한 ‘광주지역 비둘기 병원체 감염 실태조사’ 결과, 살모넬라균과 캠필로박터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광주 비둘기 집단 서식지 50곳에서 비둘기 분변 60건을 채취해 병원체 조사를 진행, 이 중 살모넬라균 1건과 캠필로박터균 4건을 확인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남구 양림동 푸른길공원에서 채취한 비둘기 분변에서는 두 가지 병원체가 모두 검출되기도 했다.
비둘기의 분변이나 털 날림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 건물 부식, 위생 문제 등의 피해가 이어졌지만 그동안은 먹이 주기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어 계도·권고에 그쳤다. 이로 인해 비둘기 개체 수를 줄이는 데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법 개정까지 이뤄지게 됐다.
서울시는 가장 먼저 관련 조례 제정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20일 ‘서울시 유해 야생동물 먹이 주기 금지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오는 3월부터 광화문광장, 한강공원, 서울숲 등 주요 지역에서 비둘기와 까치 먹이 주기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최대 100만원을 부과한다고 예고했다.
먹이 주기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과 스티커를 길거리에 부착하며 계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부산 또한 자치구별로 대응에 나섰다.
부산 금정구, 연제구, 사상구, 강서구, 북구, 동래구는 올해 안에 집비둘기 등 유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제한하고, 야생동물 먹이주기 금지구역을 지정하는 내용의 조례 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전남도 또한 이번주 중 검토와 전남도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조례 제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먹이 주기 금지를 어겼을 때 과태료 액수가 너무 과도한데다 먹이 금지를 통한 개체 수 조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조례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실제 환경부는 지난 2009년 6월 비둘기를 ‘유해조수’로 지정, 과도한 불편이 초래되면 행정기관에서 포획 허가증을 발급받아 지정된 장소·기간 내에 포획할 수 있도록 하고 먹이 주지 않기 캠페인 등을 진행했지만 실질적인 개체 수 감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성하철 전남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는 “자연생태학적으로 하천이나 거리에서 주로 생활하는 집비둘기는 인간이 먹이를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존하기 때문에 단순히 먹이를 금지하는 조례가 개체 수 조절에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법 개정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만큼 현재는 의견 수렴 단계에 있으며, 조례 제정 대신 ‘먹이 주기 금지’ 캠페인 활동과 계도·관리를 통한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는 비둘기 포화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적은 편이며, 개정안에 명시된 ‘먹이를 주는 행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처벌 대상을 규정하는 데 있어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며 “5개구와 ‘비둘기 먹이 금지’ 현수막 게첨을 통한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조류기피제, ‘버드 스파이크’(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뾰족한 침이 달린 판) 등을 배부하거나 그물망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비둘기 피해 신고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식중독균이 발견된 구역과 관련해 살수차를 통한 배설물 정리 작업과 홍보 현수막 게첨 등의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며 “조례 제정보다는 계도·권고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추진 중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동물단체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비둘기들을 굶겨 죽이는 것과 같으며 반(反) 동물복지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은 “환경부에서 말하는 관리는 그저 ‘먹이를 주지 마시오’ 현수막을 내건 것이 전부였으며 개체수 조절이나, 비둘기 관련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먹이 주기 금지 대신 ‘불임 먹이’가 포함된 사료를 급여함으로써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지현·정상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