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총을 든 스님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2025년 01월 22일(수) 17:35 |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
무속에 빠져 나라가 절단 났다고 하는 주장들도 많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한해 평안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의 운세나 오늘의 운수를 보기도 하고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는 뜻에서 돼지꿈 꾸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도 많다. 계엄정변에 엉망이 된 나라를 보면서 국민들은 개인의 운세보다 나라의 운세를 걱정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원림 산책을 마치고 전시관을 둘러보다보니 전시된 벼루 훈(硯訓)이 눈에 띈다. “벼루와 붓과 먹은 문창귀인(文昌貴人, 문학과 예술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의 기물들이다. 호흡과 뜻을 같이하고 쓰이는 바와 사랑받는 것이 유사하나 붓(筆)의 수명은 날(日)로 계산하고, 먹(墨)의 수명은 달(月)로 세지만, 벼루(硯)의 수명은 세대(世代)를 헤아린다. 왜 그러한가? 붓은 뾰족하면서 분주하다. 뜻에 따라 체(글씨)를 달리하면서 수시로 변장을 한다. 먹은 제 몸통을 내어주면서도 생각 없이 따라다닌다. 벼루는 붓과 먹을 허용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둔한 것은 명이 길고, 예리한 것은 요절한다. 고요한 것은 명이 길고 요동하는 것은 짧기 때문이다. 이것은 양생(養生)의 법(法)이다.”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중국 당송시대 명문을 모은 책,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에 실린 당경(1071~1121)의 글이다. 무려 천 년 전 사람의 글이 주는 교훈이 묵직하다. 정권을 잡은 지 불과 2~3년만에 폐기, 수거된 무리들과 거창한 계획의 수명이 날(日)이나 달(月)로 끝나버렸으니 그 쓰임이 한 자루 막-붓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붓은 우두머리요 먹은 하수인들이고 벼루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해서 생뚱맞다고 생각되는 이 글의 제목을 설명 해야겠다.
‘총을 든 스님’은 부탄의 민주주의가 처음 도입된 2006년 시기의 상황을 그린 영화다. 부탄(Bhutan)은 인도와 티베트사이, 아시아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인구 수 약 80만명의 작은 나라다. 종교와 왕이 절대적 가치를 지닌 부탄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그 첫 걸음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선거명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년월일조차도 모르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된다. 국민을 편의상 빨간당, 파란당, 노란당으로 편을 나누고 선거는 서로 친하게 지내면 안되고 싸우듯 해야 한다는 선거감독관들 말에 마을사람들은 왜 무례한 짓을 하라고 하냐면서 그런 선거는 필요 없다고 가버린다. 영화의 마지막은 큰 스님인 라마가 보름날 재를 지낼 때 쓸 총을 구입해오는데 그 재는 탑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다. “이 탑에는 흉년이 들 때 먹을 곡식과 전염병이 돌 때 먹는 약을 넣는다. 아래 토대에는 증오와 갈등과 고통을 상징하는 총을 묻는다.” 경찰관들이 차고 잇던 총과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나무칼들도 던져진다. 그리곤 그것들을 꺼내지 못하게 돌로 채우고 콘크리트로 발라 버린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국가인 부탄에서 스님이 총을 든다는 역설적인 설정을 통해 부탄의 민주주의 도입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의미심장하게 그려낸다. 통찰과 풍자가 감동을 주고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은 총을 들고 후진국이라 치부하는 부탄을 총을 묻는다. 정당간에 혈투를 벌이는 한국과 편 가르고 이간질 시키는 정당과 선거는 필요 없다는 부탄, 어느 나라가 선진국인가? 폭력적 혁명이나 극심한 사회적 갈등 없이 국왕 스스로 절대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화를 이뤄가고 있는 부탄의 민주주의와 순박한 풍속을 수입이라도 하고 싶다.
민주화 이후 계엄이라는 것은 일어나지도, 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라는 피로 쓴 ‘국민적 합의’와 불문율이 일거에 깨져버린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고,국민을 향해 총을 들라고 한 계엄에 반대한 장군이 한명도 없이 떼를 지어 합세한 군인들을 보면서 절망했다. 대통령을 구세주나 만능으로 생각하는 정치신념이나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고 합의나 협의, 중재 같은 정치가 실종되어버린 현실도 답답하다. 한국에서 계엄이나 내란을 일으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 소득이라고 하기에는 극심한 혼란과 갈등과 비용을 드린 대가가 너무나 크다. 독점적 정치체제, 성장만을 위한 질주, 압축된 민주화의 병폐등 사회전반의 반성과 재설계가 있어야겠다.
“실없이 하는 말이라도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요. 실없는 행동도 꾀하였기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리로 표현하고 손발에 나타나는 것이거늘, 자신의 본뜻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고, 다른 사람이 의심하지 않기를 바라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라는 장재(張載)의 좌우명은 이번 내란사태에 연루되고 발뺌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가담자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재판관들은 지혜롭게 밝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