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반독재·통일운동 거목'…월파 서민호 선생의 삶
[신간]통 큰 정치인 서민호 평전
김삼웅│지식산업사│2만원
2025년 01월 16일(목) 17:33
통 큰 정치인 서민호 평전
월파 서민호 선생의 고향인 고흥. 사진은 고흥군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재에 맞서 싸웠던 이들에 대한 조명은 문단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과정이다. 특히 최근 윤석열 정권의 폭정으로 마음껏 누리던 자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언제든지 침범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대한민국 사회는 이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과거 민주 투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상태다. 월파 서민호 선생은 이 같은 혼란의 정국 속 그의 삶을 통해 안목과 경세관을 되새길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 같은 인물이다.

1903년 고흥에서 태어나 1974년 서거하기까지 일생을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거목을 기리기 위한 중요한 책이 발간됐다.

이번 평전은 서 선생의 일대기를 차례대로 소개한다. 유년기 시절부터 타계하기까지 이어지는 그의 서사가 펼쳐지며 근현대사 최전선에서 투쟁한 한 인물의 인생관을 직시한다.

서 선생은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과 해방 후 반독재 투쟁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드높인 소신의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치며 해방을 위해 헌신했고 이후 초대 광주시장과 7대 전남도지사,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 3·1운동에 참가해 옥살이를 했고 당대 최고의 학부를 거친 지식인으로서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에 항거해 조선어학회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수감됐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그는 해방을 향한 소신을 거두지 않았다.

미군정 아래 광주시장과 전남지사 등을 역임한 그는 1950년 제2대 국회에 진출해 내무분과위원장으로서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 이승만 정권의 비리를 파헤친다. 결국 정적으로 몰린 그는 서대위 격살 사건으로 8년의 투옥 끝에 4월 혁명으로 풀려났다.

서 선생은 이후에도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몇 차례나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지만, 박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제목 아래 대정부 정책질의를 하며 평소 믿었던 이념과 정책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전남 지역 최초로 국회(민의원) 부의장에 오른 데 이어 유엔(UN)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시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까지 굴욕적인 한일협정 비준을 반대했다. 또한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이라는 정책 비전을 제시해 유엔을 통한 남북 총선거 실시와 통일 자주 정부수립을 촉구했다.

서 선생은 호남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재산 대부분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 등을 비롯한 여러 한국 정치의 거목이 서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은 이유는 자유와 민주주의, 겨레의 통일을 위해 싸운 인물에 대한 경외심이자 인간상에 대한 공경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김삼웅 작가는 ‘한국평전문학의 개척자’로 통한다. 청년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서 선생의 삶과 결을 함께 한 그는 한국근현대사의 역동성에 매료된다. 이는 항일 민중운동, 민주화운동의 걸출한 선구자 50여명을 선별해 책으로 펴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김 작가는 대한매일신보 주필, 독립기념관장, 제주 4·3 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 위원,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한국필화사’, ‘조지훈 평전’,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안중근 평전’ 등이 있다.

김 작가는 “월파 서민호 선생의 평전을 마무리할 시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잔치를 하지 않겠다는 한강 작가의 결연함이 감동적이었다”며 “이 땅에서도 전쟁을 부추기는 무리가 설치는 판국이라 한강 작가의 이 발언은 하늘에 계시는 월파 서민호 선생께도 감동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