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오징어 게임'같은 전 세계서 통할 콘텐츠 개발 필요"
소비 콘텐츠 넘어 '문화 현상'
고유문화 정체성 강한 지역 기회
기업의 일회성 홍보서 더 나가야
일각서 넷플릭스 의존 우려도
"지역 특색 활용한 스토리텔링"
2025년 01월 12일(일) 18:44
지난 11일 오후 광주신세계 1층에 마련된 오징어게임 팝업은 각종 굿즈를 구매하고 공간을 체험하려고 찾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박찬 기자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피어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도 적극 활용해 콘텐츠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앞서 지난달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 2’가 공개되자 전 세계 곳곳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놀이인 ‘팽이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시즌에서 ‘딱지치기’, ‘달고나’ 등의 게임이 열풍을 불고 온 것을 두 번째 시즌에서도 그대로 이어간 것이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오징어 게임’ 열풍에 편승할 콘텐츠 계발이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징어 게임’ 열풍은 K-콘텐츠의 파급력이 단발성의 소비 아이템이 아닌,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광범위한 문화적 움직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파급 효과를 광주·전남으로 끌고 와 문화 콘텐츠로 연계·활용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오징어 게임’의 새로운 시즌이 공개되기 전부터 국내 기업들은 물론 구글, 도미노피자, 버거킹 등 20여개의 글로벌 기업이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상품 홍보에 나선 바 있다.

신세계는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오픈한 ‘오징어 게임’ 팝업을 전국으로 확대 운영에 나섰다. 광주신세계에서도 앞서 10일 개점한 ‘오징어 게임’ 팝업에는 500여개의 굿즈를 포함해 드라마 속 장면을 재현한 부스와 게임을 체험할 수 있는 부스 등이 마련됐다.

이처럼 기업들은 ‘오징어 게임’과 브랜드 협업 마케팅을 통해 파급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지역 문화예술계가 기업들의 이러한 일회성 홍보를 넘어 관내 예술단체, 연극·국악·미술계에서도 ‘오징어 게임’에 편승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역 내수용에 그치지 않고 ‘오징어 게임’과 같은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과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공개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 K-콘텐츠를 접한 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답변이 66.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는 K-콘텐츠에 대한 호감도가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대로 이어져 K-푸드, K-뷰티 등 다른 분야의 성장도 촉진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수립된 K-콘텐츠 및 연관 산업 수출 확대 방안을 토대로 2027년까지 글로벌 한류팬 3억명, K-콘텐츠 수출액을 250억불까지 확대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콘텐츠·장르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해외시장, 영화제, 인센티브)도 강화해 수출을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다.

이 같은 추진 계획은 지역의 전통놀이를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개발할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기업이 주도하는 ‘오징어 게임’ 마케팅에 팝업 스토어 등의 특정적 홍보 방식을 지역적인 특색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변환해 협업하는 방식으로 고민해 볼 수 있다.

애프터 넷플릭스.
또한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다양한 놀이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역 고유의 정체성이 강한 광주·전남의 예술가와 문화예술단체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지현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조교수는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가장 핵심이다”며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 강화와 온라인을 활용한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오징어게임’에 의존한 단발성 마케팅은 지양해야 한다. ‘데스 게임’(인간의 목숨이 걸린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세계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활용해 또 다른 ‘오징어 게임’과 같은 대형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드라마 제작 산업의 관점에서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오히려 K드라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출간된 책 ‘애프터 넷플릭스’의 저자 조영신 박사는 “K드라마의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어 지나친 종속이 우려된다”며 “일부 콘텐츠들의 막대한 흥행이 성장 동력이 막힌 현실을 가리고 있다”고 직격했다.

K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지난 2016년 60여편에 불과했던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는 2018년 550여편으로 급증했고 2023년 기준, 플릭스패트롤에서 ‘가장 많이 신청한 콘텐츠’ 순위에서 미국(6402편·총시청 시간 56.89%)에 이어 2위(1102편·총시청 시간 8.3%)를 기록했다.

K드라마의 강세는 지난 2021년 공개된 ‘오징어 게임’에서 정점에 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제작 투자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해외 수출길과 내수 불황에 시달리던 국내 제작사들은 안정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넷플릭스에 의존하게 됐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작품의 흥행 성적에 따라 ‘대박’이 나면 거둬들일 수 있는 수배의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넷플릭스에 지식재산권(IP)을 넘기고 제작비 외에 1~20%의 수익만 가져가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이에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고 현재 OTT 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독점이 국내 플랫폼의 자생력을 약화했다고 조 박사는 지적한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유례없는 흥행은 콘텐츠 홍수 속에서 기획자들이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다는 방증이다. 높아지는 넷플릭스 의존도에 대한 드라마 제작 업계의 우려와 성찰은 묵과할 수 없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은 문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콘텐츠 발굴은 분명 필요한 과제다. 이러한 콘텐츠는 국가 브랜드의 인식 제고는 물론 지역 각계의 문화 생태계 범위를 확장하고 향유 대상을, 지역을 넘어 세계로 넓힐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