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단' 등장…“민주화 투사들의 ‘피흘림’ 짓밟힌 순간”
반공청년단, 尹 체포저지 국회 회견
군사정권 시절 ‘폭력 공권력’의 상징
시민들 “80년대 엄혹한 시절 떠올라”
“민주주의 퇴행”…의원 제명 등 촉구
군사정권 시절 ‘폭력 공권력’의 상징
시민들 “80년대 엄혹한 시절 떠올라”
“민주주의 퇴행”…의원 제명 등 촉구
2025년 01월 12일(일) 18:40 |
1987년 6월항쟁 당시 전남대 정문에서 학생들이 호헌철폐 등을 외치며 연와시위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전투경찰과 사복경찰(일명 백골단)들이 연행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다. 김양배 기자 |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은 지난 9일 내란 수괴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고 선언한 극우 청년단체 ‘반공청년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이들은 이날 백골단을 의미하는 ‘하얀 헬멧’을 쓴 채 회견장에 나와 “반공청년단 예하 조직으로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백골단을 운영한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불법 체포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자경단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백골단은 1980~1990년대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체포했던 사복경찰 부대를 일컫는 별칭이다. 이들은 하얀 헬멧을 쓴 채 곤봉·쇠파이프 등으로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다. 시위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이들은 군부독재 시절 ‘폭력 공권력’을 상징했다.
비상계엄의 후유증이 여전한 상황에서 나타난 백골단에 여야 정치권에서는 너나없이 비판 목소리를 쏟아냈다. 1991년 민주화 시위 도중 백골단에 맞아 숨진 강경대 열사(당시 19세·명지대)의 유족도 성명을 발표하고 “김 의원의 정치깡패 동원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정현 반공청년단 단장과 단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
1990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역임한 송갑석 전 의원은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극우단체를 직접 국회로 끌어들여 회견을 진행한 것은 심히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광주항쟁의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고 전두환·노태우 군부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한 민주투사들의 ‘피흘림’이 짓밟힌 순간”이라고 말했다.
‘80년 5월’ 엄혹한 시절을 경험했던 광주·전남 지역민들도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광주항쟁 당시 조선대 의대에 재학 중이었다. 진압대에 의해 다친 시위대의 참상은 의료인으로서 참기 힘들 정도였다”며 “군중 사이에 숨어 있던 백골단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들은 최루탄이 던져지는 순간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당시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절대 백골단을 세상에 다시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광주 토박이라는 강대산(63)씨는 “‘무장 계엄군’이라는 말을 들은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그런데 여당이라는 곳에서 다시 한번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행태를 했다”며 “내란사태로 정치·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온 국민이 힘들어하는 시기에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자극하는 이유가 뭔가. 국민의힘 당 관리가 심히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중앙·지역 정치권은 ‘민주주의 퇴행’을 이끈 김 의원의 제명과 함께 국민의힘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박균택(광산갑) 의원은 “노동·인권운동 탄압의 상징인 백골단이 국회에 설 수 있던 건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여당의 현 모습 덕분”이라며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사건이다. 만약 백골단이 실제 영장 집행을 방해한다면 특수공무집행 방해 범죄의 교사죄로 김 의원을 형사처벌까지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김 의원에 대한) 제명도 꼭 이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은 “김 의원이 ‘2030세대 이야기를 전하고자 회견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이는 절대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탄핵봉 등) 그간 정국 상황에서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라며 “이번 사태 이후 백골단 소대장을 했던 지인이 정말 괴로워 한다. 80년 5월의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떻게 이게 민의인가. 국민의힘은 이성을 되찾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를 냉철하게 판단하길 바란다”고 작심발언 했다.
한편,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의원이 백골단 회견을 주도한 것은 부적절하지만 징계 사유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김 의원이 본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기 때문에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8년 연세대 정문 앞에서 2만여 명의 학생들이 남북학생회담 출정식을 연 가운데, 사복경찰(일명 백골단)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연행 하고 있다. 당시 학생들의 판문점 행진은 노태우 정부의 공권력에 의해 '원천봉쇄 무산' 됐다. 김양배 기자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