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힘, 경찰 차벽 뚫는 기적 만들어”
尹탄핵 촉구 트랙터 시위대 상경기
남태령 인근서 경찰 차단에 ‘고비’
‘8년 전 박근혜 탄핵땐 입성 실패
시민 ‘구원군 합세…음식 제공 격려
28시간 끝에 한남동 관저 앞 입성
2024년 12월 23일(월) 18:42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농민들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부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 시위를 갖고 있다. 독자 제공
“말 그대로 기적이었죠. 시민들이 아니었으면 8년 전 박근혜 탄핵 촉구 시위 때처럼 농민들의 길이 꽉 막혔을 겁니다.”

지난 22일, 서울 남태령 인근 도로에서 28시간 동안 이어진 경찰과의 대치, 이른바 ‘남태령 대첩’ 끝에 농민들의 트랙터 행렬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도달했다. 농민들의 절박한 외침에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현장으로 달려와 준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 적극적인 후원이 만들어낸 극적인 장면이었다. 앞서 전국농민총연맹(전농) 측은 ‘전봉준 투쟁단’을 결성해 윤 대통령 체포·구속 및 양곡관리법 거부권 규탄 등을 외치며 서울로 향했다.

트랙터 시위에서 전봉준 투쟁단 서군대장을 맡은 이갑성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부의장은 “시민들이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광주 광산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부의장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정국 때에도 트랙터 시위에 나섰으나 교통체증을 이유로 막아선 경찰들에 의해 수원 인근에 트랙터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농민들은 밤샘 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경찰의 트랙터 강제 견인 조치로 서울 입성에 실패했다.

보성 출신 고(故) 백남기 농민이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놓였다가 숨진 사례를 목격한 농민들이었기에,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향하는 것에 두려움도 느꼈지만 불법 계엄이 자행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대로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동료 농민들과 용기를 냈다.

그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나 노동권을 법으로 보장받지만, 농민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신세다”며 “농민들이 보호받을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한 와중에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농민 4법을 전부 거부하면서 농민들을 무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의장이 소속된 전봉준 투쟁단은 △윤석열 구속 △국민의힘 해체 △군대·경찰 개혁 등을 요구하며 불법 계엄과 내란 혐의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며 지난 16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트랙터를 출발시켰다.

트랙터들은 무안군(서군)과 진주시(동군) 양쪽에서 출발한 뒤 공주시에서 만나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로 향했다.

농민들은 농식품부 앞에서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마친 다음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출발 닷새 만인 21일 오후 12시께 남태령에 도달했으나 경찰이 버스로 세운 차벽에 가로막혔다.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를 끌고 서울로 진입하려 했지만 교통 불편을 이유로 경찰이 시위행진을 막아선 것이다.

이 부의장은 “경찰들이 교통체증을 이유로 막아서는 걸 보면서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때 수많은 시민과 청년들이 ‘구원군’으로 가세하기 시작했다.

광화문에서 윤 대통령 퇴진 집회를 하던 시민들이 전농의 소식을 접하고 남태령 현장까지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현장에는 응원봉과 피켓을 든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어 “윤석열 방 빼, 경찰은 차 빼”를 외치며 경찰 측에 차벽을 거두라고 요구했다. 이후 핫팩, 귀마개, 간식, 음료, 보조배터리, 비상약 등 시민들의 후원 물품이 속속 배달되기도 했다. 시위대의 추위를 녹이기 위해 전세버스를 대절해 ‘난방버스’를 현장으로 보낸 시민도 있었다.

이틀에 걸쳐 28시간이 넘는 대치 끝에 경찰은 여론에 밀려 22일 오후 4시40분께 차벽을 거뒀다. 이에 트랙터 10대는 마지막 목적지인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진입에 성공했다. 이들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을 전달하고 해산했다.

이 부의장은 이번 트랙터 상경 시위가 동학 농민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입하려 했던 전봉준의 꿈을 130년 만에 이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2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두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시민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절대 경찰의 차벽을 뚫을 수 없었을 것이다”며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제 등 농민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전국 농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 닿아 농업정책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