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대한 집념으로 담아낸 서사적 풍경…'우병출 초대전'
4년 만에 나인갤러리 초대전
28일까지 광주 동구 미로센터
자연·도시 점경 담은 작품 15점
뉴욕·파리 등 독보적 화풍 표현
세필 붓으로 연말 풍경 그려내
2024년 12월 23일(월) 17:23
우병출 작 ‘seeing’. 박찬 기자
우병출 작 ‘seeing’. 박찬 기자
연말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한 해를 정리하는 따뜻한 온기가 공존하는 시기다. ‘선의 작가’로 알려진 우병출 작가가 캔버스로 그려낸 도시풍경은 겨울의 삭막함보다는 연말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광주에서 4년 만에 우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23일 오후 미로센터 1층은 그가 구현한 자연과 도시 점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곧바로 보이는 뉴욕 전경을 표현한 6m 크기의 대작은 당연, 압권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100호 이상의 작품 8점, 최근작 30호 이상 작품 5점 등 총 15점의 그림들이 공간을 수놓는다.

나인갤러리 전속 작가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선으로 끝을 본다는 신념으로 하루 14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하며 하늘, 바다, 산, 도시, 강으로 구현된 실제 풍경을 그려냈다.

우 작가의 작품들은 수평선 넘어 빼곡히 차오른 서사적 풍경으로 주위의 공기를 환기하는 힘이 있다. 특유의 부감법이 차용된 그의 산수화는 현대미술과 조화를 이루면서 독보적인 화풍을 뽐낸다.

그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눈에 보이는 풍경’을 중심으로 선과 공간의 조화를 구축해 온 작가다.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를 직접 걸어보고 세밀하게 관찰해 서사적 전경을 사생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시각적 공간의 범위 확장으로 이어진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서울의 잠실 롯데타워 전망대, 한강 유원지, 북악스카이웨이를 비롯해 미국 뉴욕 록펠러 분수대 앞,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 라파에트 백화점 전망대, 시테섬 퐁네프 다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 하와이 와이알라에, 홍콩의 마천루 그림 등은 눈에 보이는 광경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구조화한 결과물이다.

우병출 작 ‘seeing’. 박찬 기자
이번 전시 또한 그가 작품 활동에서 지속 지향해 온 ‘본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는 직선과 곡선의 평행, 수직선을 가로지르며 자연과 도시의 점경(點景)을 담은 ‘Seeing’ 시리즈를 그려왔다. 그가 그림 제목을 모두 ‘Seeing’이라고 한 것은 사물을 보는 방법에 관한 집착에서 시작됐다. 눈에 보이는 사실성에 기반해 선을 교차하거나 집적함으로써 ‘실경(實景)’을 구현해 온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에게 ‘본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제작 방식이자 태도다. 즉 ‘붓의 움직임’을 뜻한다. 붓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그의 서사를 통해 관람객들은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것에 머물지 않고 관찰하게 된다.

우 작가는 회화의 사실성에 대한 갈등과 고뇌를 통해 캔버스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색채와 형태를 하나로 잇는 선의 미학에 빠져든다.

그가 관철한 ‘선의 움직임’은 무엇보다 예술가의 삶과 태도를 투영하고 있다. 매일 0.6㎜의 작은 붓을 들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붓끝에 유화물감을 찍어 14시간 이상 담담하게 절제된 선을 그려낸다. 이렇게 탄생한 우 작가의 작품들은 가필 없는 수작업으로 실제 풍경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를 초월하는 숭고함이 배어있다.

우병출 작 ‘seeing’. 박찬 기자
우병출 작 ‘seeing’. 박찬 기자
전시장에 펼쳐진 그의 15점의 작품들을 보면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림과 동시에 산천이 주는 느낌을 극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아래를 내려보는 부감법은 그림의 압도감을 더한다.

그림 속 정교한 필치로 표현된 풍경들은 시점에 따라 동적인 대각선, 사선, 수직선, 수평선을 가로지르며 빌딩, 아스팔트 위 사람들, 상점의 간판, 하늘과 바다, 항구도시, 산등성의 디테일이 더 살아난다. 투시하는 위치와 보는 각도에 따라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는 것이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빌딩, 다리, 건축물의 경우 사선, 대각선, 수직준으로 그렸으며, 산과 물은 미점으로 표현해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아우른다.

이번 전시에 앞서 우 작가는 “붓끝에 자신의 호흡을 담아 화면에 옮겨 담는 것은 기운생동이다. 산수화의 위대함은 현대미술을 다 담아내면서 거기에 기품을 더했다는 것”이라며 “이것은 서양 미학이 따라올 수 없는 동양 미학의 진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그는 동양의 전통을 현대적 시각으로 융합해 풀어내는 시도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양승찬 나인갤러리 대표는 “우병출 작가가 지난 2020년에 이어 광주를 두 번째 방문하게 됐다”며 “그간 20여회의 개인전에 초대되며 국내를 대표하는 서양화가로 자리매김한 그의 전시를 관람하고 뜻깊은 한 해의 마무리를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광주 동구 중앙로 미로센터 1층에서 열린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