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생물학적 DNA보다 소중한 ‘사회적 가족’
양우석 감독 ‘대가족’.
2024년 12월 23일(월) 17:25
양우석 감독 ‘대가족’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우석 감독 ‘대가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거리는 성탄절의 반짝이는 장식으로 넘쳐나서 계절이 주는 차가움과 연말의 스산함을 화사함으로 덜어주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계절에 생각나는 가족애 넘치는 소설 ‘작은 아씨들’(1968~1869)이 있다. 루이자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다. 스토리 라인은 기억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독자에 따라 기억을 하기도 안 하기도 한다. 예컨대,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아버지 소식을 듣자 부랴부랴 집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조가 불쑥 돈을 내민다. 당시로서는 거금인 25달러.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이었다. 그날 밤 꺼이꺼이 우는 조. 아버지는 괜찮으실 거라며 달래던 언니에게 조는 “내 머리…” 하며 흐느낀다. 웃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머리카락에 대한 상처가 필자에게도 있었으니까. 고모, 이모들이 늘 상주하던 집안이라 초등학교 입학한 후에 아침마다 머리를 묶어주던 어른들은 항상 많았다. 그런데 어느날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니가 머리가 지저분하다며 내 의견은 듣지도 않고 동네 이발소에 데려갔다. 이발사는 팔걸이에 판때기를 걸쳐놓아 앉게 한 후 싹둑 이층단발 머리를 만들어놓았다. 그런 후에는 머리를 기를 새가 없었다. 머리 스타일에 대해 자유로워진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이때부터 길기 시작한 머리는 여직껏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컸던 이유라 생각한다.

남자라 해서 다를까. 영화 ‘대가족’의 스님 역 이승기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싶다. 배우 이승기 역시 대본으로 볼 때와 삭발 당시의 느낌이 달라 묘하게 요동치더라 했다. 삭발이라는 공통요소가 있어서였는지 영화 ‘대가족’의 시사회에는 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하는 진풍경이었다 한다.

함무옥(배우 김윤석)은 서민갑부다. SNS 없던 시절부터 줄 서 먹던 노포 만두 맛집 평만옥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외아들 문석(배우 이승기)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들어간 수재다. 세상 부러울 것 없던 무옥은 아내를 여의고 아들 문석이 승려가 되어 출가하자 근심이 깊어간다. 어느 날 문석이 자신의 아빠라며 평만옥을 찾아온 어린 손님들! 이제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기쁨에 젖은 무옥과 달리 문석은 미궁에 빠진다. 우리나라는 건국부터 역사를 이어온 단일민족이어서인지 핏줄이나 대를 잇는 명분에 목숨을 거는 편이다. 그로 인한 갈등요소나 비극은 또 얼마나 많은 스토리를, 허스토리(herstory)를 생산해냈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소설이나 드라마로 드러난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일 만큼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단한 가족사를 집집마다 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가. 1957년생을 꼭짓점으로 삼는 베이비 부머 세대를 기점으로 인구는 점점 줄고 있고, 다문화 가족의 증가율(22.9%)은 일반 가구 증가율(9.5%)보다 2.4배 높다. 인구의 11%(41만 5584명/2023년 기준)를 차지하는 다문화 가족 수를 보면 이제 ‘단일민족’이라기보다는 ‘Asian Bowl’에 더 가깝다. 뿐만 아니다. 1인가구 수는 점점 늘어서 41.8%(2024년 4월 기준)에 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가족유형은 과거의 대가족으로부터 핵가족, 확대가족, 직계가족으로 명명되던 것과 성격을 달리하리만큼 다양화를 이루고 있다. 독신가족, 동거가족, 무자녀 가족, 공동체 가족 등과 같은 개인들의 능동적 선택에 따른 유형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중이다. 맞벌이 가족, 주말부부 가족, 기러기 가족이 있는가 하면 한 부모 가족, 조손 가족, 미혼모 가족, 노인 가족, 재혼 가족, 이혼 후 재결합 가족, 입양가족, 국제결혼 가족, 동성애 가족 등으로 유형 또한 점차 다양화되어가는 중이다.

영화 ‘대(對)가족’은 이런 시대변화 앞에서 가족에 대한 고찰을 해보자는 속 뜻을 품은 영화다. 영화에서처럼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DNA를 물려주는 자식(종족보존 및 대를 잇는존재)을 고집해야 하는가? 답은 ‘아니다’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대에는 다양한 가족 유형이 있고 미래의 유형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이에서 상호 간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웃이나 지인, 교우며 회원들이 있다면, 이 또한 소중한 사회적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다른 가족 구조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인정하고 존중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져봄 직 하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