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김명희>착한 왕
김명희 아동문학가
2024년 12월 22일(일) 17:47 |
김명희 아동문학가 |
착한 나라에 착한 왕이 살았다. 착한 왕은 사람이나 동물은 물론, 식물과 물건까지도 착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한 왕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착한 왕은 신하들에게 명하기를 착하지 않은 물건은 모두 없애라고 한다. 신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착한 왕은 오래되었거나 낡아서 보기 싫은 건 모두 착하지 않다고 모두 내다 버리라고 말한다. 침대와 책상, 의자, 옷, 자동차, 밥그릇. 이쑤시개까지도 모두 새것으로 바꿨다.
궁전도 크고 멋지게 새로 지었다. 어느 날 궁전 밖에 나간 착한 왕은 햇볕 아래에서 백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뽑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착한 왕은 잡초나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나 풀은 모두 뽑아 없애게 했다. 이제 나라에는 푸르름이 사라졌다.
착한 왕은 또 코가 비뚤어진 남자를 보고 보기 싫다며 보기 싫은 것은 착하지 않다며 사라지게 했다. 길가에서 구걸하는 거지에게도 가난은 착하지 않은 것이라며 떠나게 했다.
길을 잃은 노인과 아이, 무식한 자, 왕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모두 나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새로 들어 온 물건은 한 번만 써도 헌것이 되었다. 그래서 자꾸자꾸 새것으로 바꿔야 했고 못생긴 사람이 떠나면 그다음 못생긴 사람이 떠나야 했다. 가난한 사람, 무식한 사람이 떠나면 그다음 사람이 또 떠나야 했다. 사람들과 물건들은 매일매일 쫓겨나고 버려졌다.
어느 날 착한 왕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시커먼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림자라고 말을 하니까 그 그림자를 당장 없애라고 말한다. 그림자를 없애려면 해를 없애야 했다. 그래서 해를 없애기 위해 군사들은 해를 향해 온갖 무기를 쏘아 댔다. 그렇지만 해는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되니 그림자도 사라졌다. 캄캄한 어둠이 찾아오니까 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전등을 켜서 어둠이 사라지게 했다. 전등을 켜자 다시 그림자가 생겼다. 다시 전등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다시 솟아올랐고 그림자는 다시 생겨났다. 해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지만 해는 다시 생겨났다. 해 하나 떨어뜨리지 못하는 무능한 신하들도 다 나쁜 것이라면서 내 나라에서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이제 착한 나라는 착한 왕 혼자 남았고, 해는 여전히 솟았다 졌다. 그림자도 자꾸 생겼다가 없어졌다.
궁전에 물건은 점점 낡아 갔고 산과 들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제 착한 왕의 명령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남은 착한 왕은 거울을 보게 되었다. 거울 안에는 사람도 짐승도 아닌 이상한 것이 떡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저 더러운 자가 누구냐? 저자를 당장 쫓아내도록 하라! 하고 소리 지른다. 그러나, 착한 왕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요즘 세계 곳곳에는 이러한 착한 왕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고 빈곤에 시달려야 한다. 착한 왕은 자기 말이 오직 착하다고 말한다.
그 옛날 공자는 일찍이 인간관계의 기본이 신뢰라고 말했다. 신뢰, 신의는 거짓이 없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성실이다. 어느 날 제자인 자공이 정치에서 곧 입국의 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식(食)과 병(兵)과 신(信)이라고 대답했다. 경제와 국방과 신의를 치국의 기본으로 말한 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부득이 셋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느냐고. 공자는 병을 버리라 했다. 자공은 부득이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식을 버리라고 했다. 끝까지 버려서는 안 될 것으로 신의를 든 것이다. 신의를 잃으면 나라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국민이 위정자를 믿지 못하면 정치를 해나갈 수 없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곧지 않은 사람을 곧은 사람 위에 놓으면 국민은 위정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약속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텔레비전을 틀면 신의를 저버린 나라님을 본다. 자신의 못난 행동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어서 빨리했으면 좋겠다.
신뢰가 “황금보다 귀하다”는 영국 속담처럼 인간관계에서 신용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나라와 국민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뢰를 잃으면 발붙일 곳이 없다.
스위스의 철학자 ‘아미엘’은 신뢰는 거울과 같아서 한번 깨지면 아무리 정교하게 뜯어 맞춰도 금이 남는다고 했다.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릴 때는 땅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고, 학생이 공부할 때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신뢰는 모든 것을 앞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다.
이 시대의 착한 왕에게 말하고 싶다. 자기주장만 옳다 하고 다른 사람 생각은 틀렸다는 고집은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루빨리 옳고 그름을 구분하여 생각할 줄 아는 어린이의 모범이 되는 어른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