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가거라 나의 상념이여…금빛 날개와 함께” <나부코>
이탈리아인 애창곡·제2의 애국가
베르디, ‘오페라의 왕’으로 도약
1842년 밀라노 초연 대성공 거둬
인간 내면 갈등·심리 묘사에 중점
베르디의 <나부코>는 4막 오페라 작품으로 가족 사이에서 펼쳐지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심리를 표현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공연 장면. |
한참 성공 가도를 달리는 한 여성 배우는 인터뷰 도중 한 기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며, 받는 스트레스도 엄청날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냐는 것이다. 그녀는 이 질문에 하루에 두 번, 아침 기상과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편안히 베르디(G. Verdi, 1813~1901)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 1842>의 합창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고 알려진, ‘가거라 나의 상념이여 금빛 날개와 함께-Va pensiero, sull’ale dora’를 듣는다는 것이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자신이 가진 여러 상념을 날려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고 말했다. 이 곡을 작곡한 베르디는 당시 사랑하는 아내 마르게리타와 두 자녀를 병으로 잃고 자신이 작곡한 작품 역시 실패로 끝나자 실의에 빠져 오페라 작곡가의 삶을 관두려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상념에 빠져 길가를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 우연히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장인 메릴레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도노르소(느브갓네살)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대본을 받게 된다. 고통이 지배하는 상념으로 힘들었던 베르디는 이 대본을 받는 순간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이 대본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베르디는 창가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비친 대본 한 구절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가거라, 내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이 구절을 보게 된 베르디는 자신의 처지와 빗대어 보며 감동하게 되고 곧바로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1879년, 66세의 베르디는 자신이 이십대 끝자락에 만든 <나부코>를 회상하며 “<나부코>와 함께 내 진짜 예술 경력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기억했다. 베르디의 <나부코>는 당시 오페라 작곡가로 주목을 받지 못한 베르디를 ‘이탈리아 민족의 영웅’, ‘오페라의 왕’으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
1842년 새싹이 돋는 봄,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나부코>가 초연된다. 이 작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이듬해에는 67회나 공연될 수 있었다. 특히 이 오페라를 대표하는 3막의 조국을 빼앗기고 바빌로니아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노예로 사는 히브리인(유대인)들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합창 ‘가거라 나의 상념이여 금빛 날개와 함께’는 당시 합스부르크 왕조(오스트리아)의 압정 아래 있는 북이탈리아인들에게 큰 감명으로 다가왔다. 이들에게 큰 용기를 선사한 이 곡은 이후 이탈리아인들의 애창곡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제2의 애국가처럼 불리고 있다. 특히 베르디의 장례식 때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수천 명이 함께 노래한 사건은 이 곡의 화제성을 알 수 있게 하는 일화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표방했던 자유와 평등사상은 유럽을 뒤흔들어놨다. 당시 여러 도시 국가체제였던 이탈리아에서도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는 거셌다. 나폴레옹의 패망 이후 1815년경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주변의 열강의 세력권에 있었는데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에 남부는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었다. <나부코>가 초연되고 2년이 지나고 하나의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공동체로 자유를 갈망하며 독립과 통일을 주장하는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지배 세력이 그들을 처형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인들은 더욱 독립을 향한 열망을 불사르게 되는데, 이탈리아인에게 <나부코>의 유대인을 향한 탄압과 해방은 동질성을 느끼게 한 주제로 그들은 ‘가거라 나의 상념이여 금빛 날개와 함께’를 다 함께 부르며 투쟁을 외쳤으며 이 선율은 이탈리아 민족 그 자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
베르디의 <나부코>는 4막 오페라이다. 이 작품은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가족 사이에서 펼쳐지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심리묘사에 중점을 둔 안방 가족 사극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나부코(느브갓네살)에게는 두 딸이 있다. 노예 출신이라는 비밀을 간직한 첫째 딸 아비가일레와 바빌론의 노예로 잡혀 온 예루살렘 왕의 조카 이즈마엘레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둘째 딸 페네나이다. 솔로몬 성전을 배경으로 막이 오른다.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가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공격하고 이스라엘 신을 모욕하며 성전을 불태우라고 명령한다. 나부코의 대를 이어 왕이 될 것으로 믿고 있던 아비가일레는 궁전의 비밀문서를 통해 자신의 출생을 인지하게 되고 이어 나부코가 페네나에게 왕권을 이양한다는 소리를 듣고 분개하고 있다. 페네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를 인지한 바빌론의 제사장은 나부코의 큰딸 아비가일레를 부추겨 나부코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페네나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이스라엘을 정벌하고 돌아온 나부코는 자신이 곧 신이니 자신을 숭배하라고 명령하는데 이때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 나부코가 정신을 잃는다. 이 틈을 타 아비가일레가 떨어진 왕관을 머리에 쓰고 나부코를 감옥에 넣고 바알 신전의 사제들과 함께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 그녀는 폭거를 하게 되는데, 자신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자신의 여동생과 유대인들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나부코가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이러한 아비가일레의 계획을 무마시키고 둘째 딸 페네나와 유대인들을 구한다. 나부코는 위대한 유대 신을 찬양하고 아비가일레는 무너지는 바알 신상 아래 깔려 숨을 거둔다. 나부코의 명에 의해 유대인은 해방을 맞게 되며 막을 내린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
필자는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나부코>를 관람하였는데 저자가 만난 최고의 공연 중 하나로 생각된다. 엄청난 무대와 장대한 합창은 감동이었으며, 당일 이즈마엘레 역으로 출연한 테너 이용훈의 훌륭한 기량에 ‘국뽕’이 차오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을 보며 저자는 일제하에서 탄압받던 우리 민족의 설움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조국을 빼앗겼던 유대민족과 이탈리아 당시의 현실이 우리나라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개사하여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힘은 대단하다. 그러기에 나폴레옹을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은 오페라를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또는 <피가로의 결혼>처럼 오페라가 내세우는 시대정신으로 인해 정권의 붕괴를 두려워하며 탄압의 대상으로 오페라를 바라보았다. 이탈리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고 독립을 일궈내게 만든 <나부코>는 어찌 보면 신이 이탈리아를 축복하며 내려준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사료된다. 베르디는 <나부코> 이후 모든 작품이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반열에 오른다. 이뿐인가? 그는 민족의 영웅으로 정치지도자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민족에게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후대에까지 그를 기리고 있다.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3막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가거라, 내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는 수많은 버전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중 필자가 관전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실황 영상을 추천한다. 오페라 공연 도중 합창곡이 앙코르를 받는 특별함도 함께, 필자가 느꼈던 그때의 감동을 함께 나누길 바라며….
<가사> 가거라, 내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가거라,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향기에 찬 우리의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요르단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참배하라/ 오, 너무나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예언자의 금빛 하프여 그대는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 가슴속의 기억에 다시 불을 붙이고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해다오/ 예루살렘의 잔인한 운명처럼 쓰라린 비탄의 시를 노래 부르자/ 참을 힘을 주는 노래로 주님이 너에게 용기를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