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세상을 향한 진도의 지혜’… 인류 학문이 지향할 길
426. 지역학과 진도학회
2024년 12월 19일(목) 16:44 |
경상대학교 권해주 교수의 진도학회 휘호. |
지역자치 문화분권의 시대에 지역학의 선진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진도학회 모습. 박지원 국회의원실 제공 |
지난 동짓달 그믐, 국립남도국악원에서 큰 잔치가 열렸다. 진도학회 창립 4반세기 기념 국제학술난장, 학회 설립을 주도했던 이토아비토 교수와 전경수 교수 두 석학이 진도군수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토아비토 동경대 명예교수, 2024년 올해까지 53년째 한 해도 거스르지 않고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를 찾았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촬영하고 기록했다. 그래서 나는 이 학술난장을 기획하며 ‘어느 외국인이 사랑한 진도사랑 반백 년’이라는 카피를 썼다. 한국과 진도 관련 저술이 많지만 그중에서 이번에 번역되어 나오는 ‘문화인류학자의 한국농촌사회 민족지 진도’를 전북대 임경택 교수가 소개했다. 오랜 역사와 두께 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으면서, 근현대의 격렬한 변화를 경험한 문명사회의 한 농촌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시각에서 기술, 조상의 토지를 지키는 속지(屬地)적인 일본 농촌과 달리, 개인적 인간관계를 중시하여 반드시 전해 내려온 토지를 고집하지 않는 속인(屬人)적인 한국 농촌의 다양한 생활상에 다가가고 있는 책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생애를 걸고 관찰을 거듭해 온 민족지의 금자탑, 잃어버린 정경, 생활문화 사진 150매 수록, 일본 문화인류학계가 세계에 자랑하는 금자탑이자 한국 연구자가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의 기초 문헌이라는 설명도 부가됐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속한 한국농촌이라는 진단이 절절한 것은, 농어촌이 허물어진 오늘날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 장차 전개될 미래를 예측하거나 재구성하는 데 더욱 긴요한 분석이기 때문이다. 이토 교수와 함께 진도학회 설립을 주도했던 서울대 전경수 명예교수 또한 반백 년 이상 진도를 찾아 연구했던 석학이다. 그이와 함께 진도를 찾았던 학생들이며 세계의 석학들, 관련 연구자들이 어느새 탁월한 연구성과를 자랑하며 연구자와 교육자로 나선 지 오래이니 어찌 고무적이라 아니 하겠는가. 그의 ‘요내기 밥 주기-진도학이 가야할 길’이라는 이번 기조발표의 부제는 ‘세상을 향한 진도 지혜’였다. 초가집 지붕의 하찮은 벌레에게 밥 주기를 하고 이들을 모아 불태워 없애는 민속의례를 통해, 지역학으로서의 진도학이 나아가야 할 길, 아니 장차 인류의 학문이 지향해야 할 길들을 밝혀주었다고나 할까. AI시대의 정령주의, 네오애니미즘의 세계에 대해서는 따로 기회를 마련해 소개하겠다. 이들의 반백 년을 넘는 지역 연구는 속살 깊은 라포를 형성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연구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과 내밀한 소통을 이루는 것, 지역의 들과 강과 바다, 언덕을 서성이던 바람과 별빛과 함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백 년 전 진도사람들이 땀 흘리며 땅을 파고 걸쭉한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이던 바로 거기에 이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 배어있음을 기억하고 주목하는 일이 필요하다.
진도학회 4반세기 기념 국제학술난장의 성과
1980년대 초 진도를 필드 삼아 연구했던 영국 SOAS 대학교 명예교수 키쓰하워드(Keith Howard)는 사정상 줌으로 발표했다. 1981년부터 진도를 주목하였다. 한 지역에 대해 오랫동안 주목한 유럽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향후 국립남도국악원 등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토론에 나선 이종철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이 남한음악과 북한음악의 차이 등(북한조사 때의 경험)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하였다. 일찍이 진도를 주목했던 이들 중 이해준 공주대 명예교수가 ‘진도 역사문화 가치와 특성’에 대해 발표했다. 임진왜란을 통해 유포됐다고 알려진 여러 설화가 사실은 삼별초 시절부터 형성되었다는 등 알려지지 않은 내력들을 발표하였다. 나승만 목포대 명예교수는 ‘진도의 민요와 문화 전통’에 대해, 이경엽 목포대 교수는 ‘무형유산의 기록화와 재맥락화’에 대해, 이옥희 전남대 강사는 ‘진도의 설화와 문화전통’에 대해 발표했다. 일찍이 남동리의 당당패와 소포리 노래방에 대해 주목했던 나승만은 이번 발표를 통해 진도의 노래가 씻김의 철학을 담은 문화지형의 하나라는 점을 논증했다. 이경엽이 말한 무형유산의 재맥락화나 이옥희가 주장한 환대와 애도의 이야기하기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토론에 나선 서예협회 진도지부장 설진석은 진도 토착민으로서 시각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학술잔치를 기획하며 의도했던 바이기도 하지만 지역 외부의 연구자들이 행한 연구에 대해 지역 주민이 강평하는 구조라고나 할까. 나는 기왕의 학술회의의 형식을 넘어선 이런 시도들이 적어도 지역학의 현장에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채수정 교수는 판소리 전공자이면서 진도 당골 채정례의 굿을 완판 연행할 수 있는 비가비 당골이다. 무굿에서 판소리까지 소리의 내력을 체화된 몸으로 말해주었다. 나주국악단 윤종호 감독은 진도장악청(신청)에 대해, 계명대 박미경 명예교수는 ‘진도씻김굿 전통이 이룬 음악적 성취’에 대해 발표했다. 박미경이 평생 천착한 진도씻김굿의 근원적 가치, 바라지와 즉흥, 시나위 무대로의 발현 등에 대해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바라지와 시나위는 남도음악의 요체를 설명하는 긴요한 항목이기도 하므로 따로 설명할 기회를 마련하겠다. 목포대 송기태 교수와 전북대 이도정 교수는 진도에 남아 있는 동계(洞契) 자료들을 분석해 줬다. 1800년 전후부터 기록된 방대하고 풍성한 마을 자료들만큼 이들 소장 학자들이 이끌 지역 연구의 미래가 밝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였다. 진도학회 설립을 주도하고 이끌었던 박주언 전 진도문화원장은 진도의 유배자에 대해 발표하였다. 진도뿐 아니라 섬 문화의 정체에 대해 환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 국민대 변남주 교수의 진도 목장 발표나 미네소타 대학교 유경수 교수의 발표 등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으므로 생략한다. 박정경 국립남도국악원 원장, 박병익 진도문화원 이사, 김대현 감독 등의 토론이 지역민과 함께하는 참여형 연구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특히 국립경상대학교에서 대거 참여하여 차 시음 봉사를 하는 등 경상·전라 지역 연구 네트워크의 장을 열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장차 지역 연구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남도인문학팁
진도학회의 탄생과 ‘진도학’
김만용 전 진도고등학교 교장이 정리해 발표했다. 진도학회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제10회 학술심포지엄으로부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9월 1일, 박주언이 주도했던 제4회 진도평화제 기념행사 일환, 주제는 ‘진도문화의 국제적 이해’였다. 이 발표회를 1회로 삼았다. 2002년 11월 30일 ‘진도문화와 지역발전’이라는 주제로 제2회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그간에 진도학회설립준비위원회가 활동하였다. 전경수를 비롯하여 이토아비토, 박주언, 나승만 등이 관여했다. 나 또한 준비위원회 간사로 활동했다. 2002년 12월 1일 학회가 공식 출범했다. 군 단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되고, 매해 국제학술대회를 열거나 각 면 단위를 순회하는 절례회를 개최하는 등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된 지역학회이다. 지역자치 문화분권의 시대에 지역학의 선진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학술회의를 포함, 25년 동안 16회의 국제학술회와 31회의 절례회를 열었다. 진도의 삶과 문화를 안과 밖에서 들여다보았고 추적하거나 분석했다. 해외 연구자들은 진도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명실상부 진도가 세계에 우뚝 서는 계기가 되었다. 초대회장으로 전경수, 2대 회장 나경수를 거쳐 3대 회장 이윤선이 활동하고 있다. 도래한 지역학의 시대, 시군 단위의 지역학을 꾸리는 선봉에 서서 착실하게 터를 다진 진도학회의 사례가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에서 지역학을 꾸리고 네트워크하며 지역의 가치를 펼쳐나가는 이들에게 일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