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 민중시인, 어둠의 시대 온 몸으로 맞서
[복간]'시인'지 통권 42호
(사)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1만5000원
2024년 12월 05일(목) 18:24
조태일 시인의 생전 모습.
지난 3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군사 독재 정권 종식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수백명의 사망자를 발생케 한 1980년 전두환의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후 무려 44년이 지난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생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워 온 한 민중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죽형 조태일 시인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무려 9번의 계엄을 몸소 경험해 왔다. 특히 1980년 신군부가 계엄령 전국 확대에 앞서 감금한 예비 검속자에 포함돼 수감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어두운 시대에 맞서 강건한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다. 1941년 곡성군에서 태어나 1999년 간암으로 작고하기까지 자연과 하나 된 순정한 정서를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인으로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시대적 정치모순과 참혹했던 사회현실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는 시를 통해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겼다. 폭압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국가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에 맞서 독재정권의 감시와 투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발과 폭로를 작품으로 소리쳤다.

억압 속에서 고뇌하는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독자들에게 저항 정신과 희망을 투영했다. 그의 이러한 문학적 행동은 강력한 목소리로 작동해 저항 담론의 정점에 서게 만든다.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그 어느 때보다 위협받는 현재. 국가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몸 바쳤던 저항시인의 정신을 다시금 기릴 시집이 복간됐다. ‘시인’지 42호는 지난 1969년 8월 월간지로 창간한 ‘시인’지의 부활이다. 그가 사망한 뒤에도 복간과 재복간을 이어가다 지난 2019년 9월 중단된 뒤 5년 만이다. 사단법인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가 펼쳐 온 다양한 추모사업에 힘입어 조태일 시인 25주기를 맞아 통권 42호로 명맥을 잇게 됐다.

이번 호에는 조태일 시인의 삶을 조명하는 특집과 한국 문단의 굵직한 현안 등을 다룬다.

‘시인’지로 등단한 박남준, 양성우 등 여덟 명의 신작 시와 광주·전남의 젊은 시인들의 좌담을 비롯해 조태일문학상 수상자 조명, 김주대, 장석남, 차창룡 시인들의 신작도 포함됐다.

또한 조태일 시인이 후학을 양성했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출신인 이은규, 이창수, 하린 시인 등 제자들의 작품도 수록돼 그를 기렸다.

조태일 시인은 광주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해 시집 ‘아침선박’, ‘식칼론’, ‘국토’, ‘자유가 시인더러’, ‘산속에서 꽃속에서’,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등을 펴냈다. 1969년 시인지를 창간한 이래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박남준 등 불굴의 시인들을 발굴했다.

그는 1989년부터 광주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편운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된 바 있다.

‘시인’지 통권 42호.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